23.09.07 17:27최종 업데이트 23.09.0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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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에 발생한 해병대 고 채 모 상병 사망사고를 수사하다가 항명 등의 혐의로 군검찰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4일 오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 해임 집행정지 신청 1차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박 전 수사단장이 해병대 사령관을 상대로 낸 보직 해임 집행정지 신청 1차 심문 출석하는 자리에는 과거 군 사망사고 유가족과 해병대 예비역 동기생들이 응원하기 위해 함께 했다. 박정훈 대령 옆에는 김정민 변호사. ⓒ 유성호

 
가을의 발자국이 성큼 다가온 9월 4일 오전 수원지방법원 북문 앞. 김정민 변호사가 취재진 앞에서 보직해임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취지를 설명하고 기자들 질문에 답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빨간 티를 입은 해병 전우들이 박정훈 대령 옆에 나란히 섰다. 

소송 당사자이자 '항명' 파동의 주인공인 박 대령은 침묵의 천형(天刑)이라도 받은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다. 변호사의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사흘 전 영장심사를 받으러 국방부 군사법원에 출석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고(故) 이예람 중사 유족 등 역대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이 종이 팻말을 들고 군당국을 비판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법정 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기에 카메라 기자들은 법원 밖에 대기하거나 현장을 떠났다. 보직해임 신청과 관련된 심리가 열릴 512호 법정 앞 복도는 시끌벅적했다. 

박 대령의 해병 동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기자들은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기사를 작성했다. 법정 밖에서 박 대령을 응원했던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기자들에게 이번 재판의 의미와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하이톤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해병대 사령관 진술에 대한 박 대령의 생각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심리 예정시각인 오전 11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따로 떨어져 앉아 있는 박 대령에게 다가갔다.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된 몇몇 동기가 내게 아는 척했다. 내가 인사를 하자 박 대령이 일어서서 경례했다. 일면식도 없지만, 사실 그와는 군으로 얽힌 인연이 있다. 그가 웃으면서 "'오마이TV' 잘 보고 있다"고 했다. 

옆에 앉아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현직을 떠난 프리랜서 기자이기는 하지만, 취재도 하고 보도도 하니 언론인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화의 형식이나 내용에 비춰 이날 박 대령과 나눈 얘기는 언론 인터뷰라기보다는 지인과의 담소 정도였다. 실제로 박 대령은 언론 접촉을 피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는데, 대화 도중에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 

가장 궁금한 것이 상관인 해병대 사령관의 진술에 대한 박 대령의 생각이었다. 군검찰(국방부 검찰단)이 작성한 구속영장에는 해병대 사령관의 진술이 곳곳에 인용돼 있는데, 박 대령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 

영장에 따르면, 해병대 사령관은 첫 진술에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으나, 2, 3회 진술 때는 수사단장인 박 대령에게 경찰에 수사자료를 송부하는 시기를 늦추라는, 이른바 "이첩 보류" 지시를 여러 차례 했는데 박 대령이 따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령관으로부터 VIP가 관련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박 대령 주장도 부인했다. 

이에 대해 박 대령은 "사령관님, 참 좋은 분"이라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씀하는 게 아니겠냐"고 했다. 내가 "두 사람 간 신뢰가 있지 않으냐"고 묻자 "그렇다"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군검찰이 박 대령에게 적용한 혐의는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두 가지다. 전자는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의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혐의(반항, 불복종)이고, 후자는 장관이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 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박 대령은 8월 11일 KBS에 출연해 "7월 30일 오후 장관에게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결과를 보고할 때 장관이 '사단장도 처벌 대상이냐'는 취지로 물었다"고 주장했다. 박 대령에 따르면, 그 자리에 동석한 해병대 사령관이 장관의 질문에 "사단장에게 과실 혐의가 있고 관련 증거가 있으니 경찰에 넘겨 입건 여부를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박 대령이 8월 28일 군검찰에 제출한 자술서에도 담겼다. 하지만 군검찰은 이를 거짓으로 판단했다. 장관이 그런 발언을 한 적 없다고 부인한다는 게 이유다. 해병대 사령관을 비롯해 동석한 다른 관계자들로부터도 장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영장에 기록했다.  

이에 대해 박 대령에게 안 물어볼 수 없었다. 

"장관은 '사단장' 발언을 한 적 없다고 부인하고, 군검찰은 허위사실로 상관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는데요." 

"사단장 혐의가 적힌 내용을 보고하는데, 관련해서 장관이 물어보지 않았겠습니까?" 

박 대령이 에둘러 말했다. 일종의 간접화법이다. 해병대 1사단장은 수사결과보고서에 피의자로 언급된 8명 중 최고위직이다. 박 대령 주장은,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장관이 사단장 혐의에 관해 물어보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2020년 '윤석열 검찰총장' 사례와 비슷하지 않냐" 물으니...
 

지난 9월 4일 보직 해임 집행정치 신청 1차 심문이 열린 수원지방법원 512호 앞에서 박정훈 대령을 만났다. ⓒ 조성식


1사단장은 지난해 여름 수해 때 윤석열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그해 9월 윤 대통령은 해병 1사단이 있는 포항에 내려가 수해복구와 관련해 대민지원에 애쓴 장병들을 격려하고 이를 지휘한 사단장을 치하했다. 

내가 더 질문을 이어갔으나 박 대령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거 인터뷰로 나가면 안 된다"면서 난감해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영장심사 때 판사와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내가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 이건 인터뷰가 아니다. 잘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령이 가족처럼 아끼는 부하들의 안부를 물어봤다. 군검찰은 애초 박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죄로 입건했다. 수사단장인 박 대령의 지시를 받고 8월 2일 경찰에 수사자료를 이첩했던 제1광역수사대장 등 그의 부하들도 피의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이후 군검찰은 어떤 이유에선지 슬그머니 '집단항명'을 '항명'으로 바꿨다. 박 대령은 "부하들은 다 혐의를 벗었기 때문에 괜찮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복직해서 직책을 가져야 부하들도 챙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20년 11월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언론사주와 부적절한 만남' '주요 사건 재판부 불법 사찰' '측근 비리 감찰 및 수사 방해' 등의 이유로 직무집행정지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징계를 추진했다. 다음날 윤 총장은 행정법원에 직무집행정지를 취소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12월 16일 법무부는 윤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의 징계를 의결했다. 하지만 그달 24일 법원이 직무집행 정지 취소를 결정하면서 윤 총장은 업무에 복귀했다. 

내가 "지금 박 대령의 보직해임 취소 신청이 2020년 윤석열 검찰총장 사례와 거의 똑같다. 그때는 법원이 받아줬다"고 하자 박 대령이 눈빛으로 공감을 표시했다. 옆에 다가와 선 그의 동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법원 직원의 호출에 따라 우리 일행과 몇몇 기자가 법정으로 들어갔다. 직원이 "당사자와 변호인 외에는 참석할 수 없는 게 원칙"이라면서 "재판장에게 물어는 보겠으니 일단 나가들 계시라"고 했다. 박 대령을 비롯해 일행 모두 다시 나왔다. 얘기를 이어갔다. 

8월 2일 오전 10시 30분, 그리고 10시 51분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에 발생한 해병대 고 채 모 상병 사망사고를 수사하다가 항명 등의 혐의로 군검찰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4일 오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 해임 집행정지 신청 1차 심문에 출석하며 자신을 위해 응원 나온 과거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해병대 사령관은 8월 2일 오전 10시에 박 대령으로부터 "예정대로 오늘 오전 10시 30분에 경찰에 수사자료를 이첩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박 대령의 지시를 받은 1광수대장 등 군사경찰 관계자들은 이날 아침 일찍 1사단 주둔지인 포항에서 경북경찰청이 있는 안동으로 출발한 상태였다. 

박 대령에 따르면, 사령관은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내가 너에게 '중지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박 대령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 직권남용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답하자, 사령관은 "알았다"고 했고, 박 대령은 사령관실에서 나왔다. 

10시 51분,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장 인계를 멈춰라!" 박 대령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중앙수사대장에게 1광수대장과 연락할 것을 지시했다. 잠시 뒤 중수대장은 "광수대장이나 수사관이나 다 통화가 안 된다"고 말했다. 진작에 궁금했던 문제라 박 대령에게 물어봤다. 

"만약에 사령관이 10시 51분이 아니라 9시나 10시에 그런 지시를 내렸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명령이라면서."

"명령이라면 따라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박 대령은 항명 혐의에 대해 "장관과 사령관의 수사지휘 자체도 부당하지만, 이첩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명확하게 받은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내가 "정말 다행인 것 같다. 만약 이첩하기 전에 사령관이 명확히 지시했다면 따라야 했을 테니 말이다"고 하자 박 대령이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관이나 부대 지휘관은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 수사기관에 일반적 지휘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2021년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개정돼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군사법원법은 성폭력 사건, 군인 사망사건(사망의 원인이 된 범죄), 입대 전 범죄의 경우 이런 지휘권을 배제한다(228조 3항). 

군에서 자체 판단하지 말고 범죄 혐의를 인지하는 즉시 민간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는 취지다. 대통령령('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7조 1항)과 국방부 훈령('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훈령' 7조)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조항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법원'은 민간법원이다. 물론 인지를 하려면 군 수사기관의 1차 조사가 필요하다. 경찰, 검찰 등 외부 수사기관은 이를 넘겨받아 정식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또 한 가지 궁금증. 그 시각 박 대령의 부하들은 왜 통화가 되지 않았을까? 

"부하들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으니 일부러 전화를 안 받은 게 아닐까요?" 

"아마도 인계 절차를 밟느라 경황이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 대령의 동기들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에 발생한 해병대 고 채 모 상병 사망사고를 수사하다가 항명 등의 혐의로 군검찰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4일 오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 해임 집행정지 신청 1차 심문에 출석하며 응원 나온 해병대 예비역 동기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그의 동기 한 명이 "박 대령 살이 많이 빠졌다. 이거 어디서 보상받아야지?" 하자, 다른 동기가 "맞아"라고 맞장구쳤다. 내가 "평소 체중이 얼마나 나가냐"고 묻자 박 대령이 수줍게 말했다. "군사기밀입니다." 다들 한참 웃었다. 

이윽고 또 다른 동기가 "박 대령은 정복을 입을 때가 정말 멋있다"며 보직해임 상태를 안타까워하자 다른 동기들이 보탰다. 나도 공감을 나타내며 동기애를 거론했다. 

"이번에 박 대령 동기들의 뜨거운 우정을 보면서 감동한 국민이 많은 듯싶어요. 이런 일에 이렇게 나서주는 동기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 생업도 제쳐두고.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권력과 맞서는 일이니, 피해를 볼 수도 있는데." 

박 대령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에 있는 동기 손을 슬며시 잡았다. 동기 한 명이 "근데 죄짓고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웃었다. 

알려졌다시피 그의 아들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다. "아들이 걱정되지 않으냐"고 묻자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아들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끝으로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된 얘기를 나눴다. 

"그날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박 대령 수감장소를 두고 이런저런 예측이 나왔던 모양이에요. 다들 구속을 기정사실로 여겼으니까." 

"예. 기적 같은 일이었지요."

"국민의 성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어요."

"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오전 11시 조금 넘어 법원 직원이 다시 나와서 박 대령과 변호인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국방부 쪽에서는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듣자 하니, 국방부에서 민간 법무법인과 계약해 그쪽 변호사들이 군검찰단에 합류했다고 한다. 이례적인 일이다. 

박 대령의 동기들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태세였다. 나는 오후에 예정된 '오마이TV' 방송 준비 때문에 법정을 나섰다. 가을 햇살이 따뜻하고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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