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레이블 매직바 골드레이블 매직바의 영업 마지막주, 바를 찾은 손님들이 만원을 이뤄 만석 표지가 붙어 있는 모습.

▲ 골드레이블 매직바 골드레이블 매직바의 영업 마지막주, 바를 찾은 손님들이 만원을 이뤄 만석 표지가 붙어 있는 모습. ⓒ 김성호

 
무언가 귀한 것이 사라질 때가 있다. 사라진 것의 가치를 아는 이가 얼마 없다고 하여도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지난주 한국에서 어느 귀한 것이 마지막 빛을 발하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마술사의 마지막 숨결처럼, 훅- 하고 꺼져 버렸다.
 
골드레이블 매직바는 한국에서 유일한 마술바였다. 처음 문을 열 때는 한국에 거의 없는 마술바였고, 문을 닫을 때는 마지막 마술바가 되었다. 즉 한국은 하나 뿐인 마술바를 잃어버렸다. (관련 기사 : 한국 유일 마술바에서 칵테일 한 잔 어떠세요?)
 
마술바는 무엇인가. 그저 마술 조금 보여주는 술집쯤으로 여길 이도 있겠다.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틀리지 않은 표현이 옳은 표현인 것은 아니다. 마술바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마술에 대해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마술이란 사람을 속여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사람들은 제가 알지 못하는 기상천외함에 깊은 감명을 표해왔던 존재, 그리하여 마술은 지난 시간 동안 꾸준히 저를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방식에 몇 가지 틀이 생겼는데, 크게 무대에서 하는 마술과 사람 가까이 눈앞에서 펼치는 마술로 나눌 수가 있겠다.
 
프레스티지 포스터

▲ 프레스티지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마술의 세계가 담고 있는 치열함에 대하여

이은결과 최현우, 또 이따금 TV를 통해서 보았던 데이비드 카퍼필드 같은 이의 규모 있는 무대공연이 전자라면, 클로즈업이라 불리는 분과가 후자를 이룬다. 매직바는 이 중 클로즈업 마술의 무대가 된다. 마술사들이 동전이며 카드, 또 저마다의 도구를 활용해 찾아온 손님에게 아기자기한 놀라움을 선사한다. 규모가 작다 하여 무시할 수는 없다. 마술사와 관객의 좁혀진 거리만큼 프로그램의 짜임새 또한 대단해야 한다. 하나의 완성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마술사가 고군분투라 해도 좋을 치열함을 경주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술의 세계다.
 
<프레스티지>는 마술사의 세계가 어떤 치열함을 담고 있는지를 보인다. 인생이란 한 구절 보들레르보다 못하단 게 일본의 전설적 시인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였던가. 문학으로 인생을, 나아가 세상을 흔들 수 있다고 믿어온 글쟁이가 오로지 그 하나만은 아니었을 테다. 고갱이나 고흐 같은 화가는 제 작품세계를 목숨만큼 중하게 여겼고,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같은 위대한 음악가 또한 제 삶 전체를 갈아 넣으며 더 낳은 음악을 향해 전진하였다. 많은 예술 애호가들은 이를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이라고 말하고는 하였는데, 그렇다면 마술 또한 예술의 고전적 분과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건 아닐까.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이 된 크리스토퍼 놀란은 <프레스티지>에서 어쩌면 영화를 대하는 저 자신의 모습을 내보인 건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 <제7예술 선언>에서 촉발된 영화의 예술분과 진입논란은 어느덧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다. 그러나 놀란의 시각에서 마술은 어쩌면 7번째로 예술계에 진입한 영화보다 먼저, 혹은 그 이후에라도 예술의 영역에 들어 마땅한 장르였을지 모른다.
 
위대한 마술사가 되기 위하여
 
프레스티지 스틸컷

▲ 프레스티지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는 두 위대한 마술사의 이야기다. 로버트 앤지어(휴 잭맨 분)와 알프레드 보든(크리스찬 베일 분)은 당대 유명 마술사 커터(마이클 케인 분) 아래서 마술을 배우며 마술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야심만만한 청년들이다. 함께 무대에 올라 마술을 공연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던 이들의 관계는 한 순간 비틀리고 마는데, 커터의 도우미였던 앤지어의 아내가 수중마술 도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때문이다.

숨진 이유는 물속에서 매듭을 풀지 못한 때문으로, 손목에 매듭을 지었던 알프레드가 원인을 제공한 자로 지목된다. 분노한 앤지어가 평소 쓰던 단매듭이 아닌 이중매듭을 지었느냐고 따져 묻지만 알프레드는 그저 자기도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다.
 
시간이 흘러 알프레드와 앤지어는 당대 최고 마술사로 성장한다. 둘은 큰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본 극장에서 매일 저녁 마술쇼를 연다. 둘 모두 공연의 클라이막스는 순간이동 마술로 채웠으니 경쟁의 열기가 한껏 달아오를 밖에 없는 일이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순식간에 이동하는 순간이동의 비밀은 당연하게도 전혀 밝혀지지 않는다. 앤지어의 것과 알프레드의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뛰어난 마술이냐를 놓고 호사가들이 떠드는 가운데 둘은 저의 마술을 더 낫게 하고자, 또 상대 마술의 비밀을 풀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비밀과 반전, 영화와 마술이 공유하는 것
 
프레스티지 스틸컷

▲ 프레스티지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는 놀란의 영화가 늘 그러하듯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며 둘의 미묘한 관계를 흥미롭게 비춘다. 누군가의 죽음과 마술의 비밀이 얽힌 드라마는 <프레스티지>를 마술과 관련한 영화 가운데 아직까지 최고로 남을 수 있게끔 만들었다. 가만 보면 놀란이 이 이야기에 반한 이유는 분명하다. 관객을 속이는 마술사의 연출이 마침내 관객을 감동으로 이끄는 영화감독의 그것과 얼마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에 깃든 비기들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클로즈업 마술의 세계에도 제 삶의 상당 부분을 갈아 넣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려 매진하는 이들의 노력이 있을 테다. 이제는 마지막 영업을 마친 골드레이블 매직바는 그와 같은 마술사들이 제 실력을 선보일 몇 안 되는 장이 되어 주었다. 유튜브와 같이 마술사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장이 새로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역시 함께 숨쉬는 공간이 주는 매력을 고스란히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지막 매직바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매직바를 기다리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골드레이블 매직바를 운영해온 임홍진 마술사는 온라인을 통해 공지를 전하기를 "이전과 리뉴얼, 장소까지 모든 게 정해지진 않았다"면서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다시 장소를 마련하려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한국 마술계와 문화예술계의 부족한 자산을 메우기 위하여 부디 그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프레스티지 스틸컷

▲ 프레스티지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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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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