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한국 영화 중 실화를 바탕으로 이토록 건조한 시선에서 눅진한 욕망을 다룬 영화가 있었을까. 올해 한국 영화를 새삼 돌이켜 보았다.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는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어느 때보다도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극장 개봉작 중 드디어 구원투수가 등장한 것 같은 예감이다.
 
<서울의 봄>은 10.26 사건으로 촉발된 12.12 군사반란을 다루고 있다. 미디어로는 드라마 <제5공화국> 이후 20여 년 만에 수면 위로 오른 소재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빠른 컷과 편집은 일촉즉발 상황을 손에 땀을 쥐고 관찰하게 한다. 
 
가져본 적 없어 더 아련한 '찰나'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은 계엄법에 의해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된다. 전두광은 권력을 탐하는 욕망의 아이콘이었다. 권력을 얻겠다는 집념 하나로 하극상, 권모술수는 물론, 소리소문 없이 하나회를 집결해 반란을 모의하고 있었다. 모든 정보가 손안에 들어오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나. 준비는 완벽했고 뜻맞는 세력을 모아 군사반란을 일으킨다.
 
한편,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의 부탁으로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된 이태신(정우성)은 세력을 키워 오던 사조직에 의해 무참히 짓밟힐 위기에 처한다. 군인의 의무와 신념이 우선이던 이태신은 전두광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지만, 전방을 지키는 9사단까지 불러들인 노태건(박해준)까지 합세하자 힘에 부친다. 일진일퇴. 지휘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고군분투가 무색하게도 속절없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간다.
 
단 9시간 동안 일어난 그날 밤의 이야기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은 짧았던 때를 뜻한다. 1979년 10월 26 사건으로 유신 체제가 무너지자 위태로웠던 12월 12일의 밤을 지나, 1980년 5.17 비상계엄령 확대까지의 약 7개월을 말한다. 그중 영화는 오랜 독재(겨울)를 끝내고 따스한 민주화(봄)를 꿈꾸었었을 국민을 더한 혹한으로 밀어 넣었던 9시간의 상황을 재현했다. 
 
단 9시간 동안 일어난 그날 밤의 이야기를 영화적 상상력에 빗대 만들었다. 군인의 사명과 명문으로 막아내려 했던 한 남자의 처절한 시선으로 진행된다. 마치 그 공간으로 들어간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과 선악 대비가 뚜렷하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팽팽한 대립은 그날의 현장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언제나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한 사건을 두고 쿠데타와 혁명으로 달리 불리게 되는 데는 이겼다는 명분이 바탕이다. 그래서 역사는 철저히 승자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다만, 훗날 제대로 된 평가로 바로잡을 수 있을 뿐이다. 12.12 군사반란은 진압군 쪽의 분위기, 작전 등이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공란이었던 역사를 철저히 상상으로 그려낸 까닭이다. 이게 바로 영화가 해야 할 일이자 사명이다.
 
가장 어두웠던 그때 그 사람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당시의 무거운 공기마저도 카메라에 담겼다. 중요 역할과 대사가 있는 남성 배우만 68명에 이른다. 연기 배틀의 장(場)이 된 스크린은 혈흔과 불꽃이 튀지 않을 뿐, 서로 엉키고 풀어지면서 시너지를 발산한다. 누구 하나 버릴 것 없는 독립적 캐릭터의 향연이자 앙상블이 빛난다. 대머리 분장(분장하는데 4시간이 걸렸다고 한다)을 한 황정민은 간사하고 교묘한 뱀의 인간화로 그려진다. 대척점에서 버티는 정우성을 보면 우직한 황소가 떠오른다.
 
김성수 감독은 19살 한남동에 살며 어렴풋이 총성을 들었던, 역사 현장의 목격자다. 44년 만에 어릴 적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해 자신만의 관점으로 그때 그 사람들을 조립해 보기로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다가간 결과다.
 
하지만 계급, 출신을 방패 삼아 세력을 키우는 대한민국의 조직 문화는 여전해 씁쓸함을 남긴다. 실존 인물이 떠오르는 외모와 이름 탓에 이와 같은 전율은 배가 된다. 극장을 나서며 역사를 곱씹어 보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따뜻한 분위기의 영화보다 진지하고 묵직한 드라마를 원한다면 <서울의 봄>을 택할 것 같다. 감독 개인에게는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치유의 시간이자 관객에게는 아픈 역사를 재확립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역사 고증, 배우 연기, 실화의 힘, 긴장감과 통쾌함 등 흥행 요인을 두루 갖추고 있다. 주제와 의미, 재미까지 갖춘 웰메이드가 오랜만에 등장해 극장가 훈풍이 예고된다. '극장의 봄'이 머지않은 것 같다. 
서울의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