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 참석하는 류중일 감독 류중일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이 9일 오후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명단 발표를 위해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AG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 참석하는 류중일 감독 류중일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이 9일 오후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명단 발표를 위해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태극마크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나라를 대표하여 국제무대에 나서야 하는 국가대표 선수라면 실력은 기본이고 인성과 태도에 있어서도 그에 걸맞는 책임감이 요구된다. 최근 몇년간 국제경쟁력 하락-선수 선발 공정성- 선수들의 자질과 태도 문제 등으로 매번 도마에 올랐던 야구 국가대표팀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명예회복이 절실한 상황에 놓여있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 나설 야구대표팀 명단이 발표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6월 9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류중일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과 조계현 전력강화위원장이 참석하여 최종 명단과 선발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그동안 프로 최정예 선수들이 선발되었던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이번 류중일호에서는 만 25세 이하, 프로 입단 4년 차 이하와 3명의 와일드카드(만 29세 이하)까지 총 24명으로 구성됐다. 투수 12명, 포수 2명, 내야수 7명, 외야수 3명이다.
 
투수는 고우석, 정우영(이상 LG), 박영현(KT), 원태인(삼성), 나균안, 박세웅(이상 롯데), 곽빈(두산), 문동주(한화), 장현석(마산용마고), 이의리, 최지민(이상 KIA), 구창모(NC)가 이름을 올렸다. 포수 중에는 김동헌(키움)과 김형준(NC), 내야수는 박성한(SSG), 김혜성(키움), 문보경(LG), 강백호(KT), 김주원(NC), 김지찬(삼성), 노시환(한화)이 선발되었으며, 외야수는 최지훈(SSG), 이정후(키움), 최원준(상무)가 발탁됐다.
 
이 중 와일드카드 3인은 투수 박세웅과 구창모, 외야수 최원준이다. 구단별로는 키움-LG-NC가 3명, SSG-KT-KIA-삼성-롯데-한화가 각 2명, 두산이 1명, 아마추어와 상무에서 각각 1명씩 배분됐다.
 
한국야구는 시범종목으로 치러진 1990년 대회를 제외하고 7번의 대회 중 5번이나 금메달을 차지한 최다우승국이다. 남은 2번도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0년 광저우 대회부터는 3회 연속 정상에 오르며 디펜딩챔피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은 그동안 한국야구 선수들에게는 무엇보다 '병역혜택'의 지름길로 인식되어온 측면이 강하다. 야구 국제대회에서 아시안게임의 위상은 미미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올림픽에서 야구 종목이 퇴출된 가운데 야구선수들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국제대회가 되면서 비중이 높아졌다. 아시안게임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라이벌 일본이나 대만에 비하여, 한국은 1998년 방콕 대회부터 프로 최정예 선수들로 팀을 꾸리기 시작했고 이들 대부분이 병역 미필자였다.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와 추신수를 비롯하여 다수의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병역혜택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아시안게임의 의미와 야구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국내 프로 2군 수준 이하의 아마추어-세미 프로급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대회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프로 최정예 멤버들을 내보내어 차지하는 아시안게임 우승의 가치가 점점 퇴색하기 시작했다.
 
2010년 우승 이후 더 이상 국가대표 소집에 응하지 않은 추신수, 2014년 부상 은폐 의혹에 휩싸였던 나지완, 2018년 병역미필자 오지환-박해민의 선발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등에서 보듯,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을 둘러싼 잡음은 4년마다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그저 아시안게임을 손쉽고 합법적인 병역혜택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듯한 야구계의 집단이기주의와 도덕불감증은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KBO는 야구대표팀을 둘러싼 더 이상의 논란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향후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의 주축이 될 선수들을 적극 육성한다는 취지로 이번 대표팀부터 선수구성 과정에서 '나이 제한'을 도입하며 개혁에 나섰다.

201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안게임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된 류중일 감독은 "대표팀이 젊어졌지만, KBO 리그 소속팀에서 주축으로 뛰는 선수들이나 벌써 성인 대표팀을 경험한 선수가 절반 가까이 된다. 그만큼 한국 야구가 전망이 밝고 이번 대회를 통해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계현 위원장은 이번 대표팀의 화두를 "공정과 투명"으로 규정했다.

이번 류중일호는 병역미필자 안배나 공정성과 관련된 논란은 줄어든 반면 선수구성의 효율성 면에서는 여전히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대표팀의 최대 취약 포지션으로 꼽혔던 포수 포지션에는 KBO리그에서 3시즌을 뛴 김형준(NC)과 올해 데뷔한 신인 김동헌(키움)이 발탁됐다. KBO리그 통산 159경기 타율 .227 5홈런 22타점 OPS .609를 기록한 김형준이 주전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김형준은 2022년 상무 시절 수술과 재활을 거쳤고 올시즌 퓨처스리그 5경기에만 나서서 타율 7푼7리에 그치고 있어서 우려를 자아낸다. 김동헌도 프로에서 39경기 101타석 출전에 불과하다.
 
포지션 불균형과 부상 리스크 역시 불안요소로 지적된다. 이번 대표팀은 외야수를 단 3명밖에 뽑지않았다. 대회 기간 중 부상자나 부진한 선수가 발생할 경우, 대체자원이 없다. 이에 류 감독은 포지션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내-외야를 겸할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들을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밝혔다. 구창모와 곽빈같이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을 장담할 수 없는 투수들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대회까지 충분히 회복이 가능하고, 부상이 길어져도 대회 전날까지 엔트리 교체를 결정할 시간이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으로 류중일호가 짊어져야 할 부담감은 단순히 금메달이나 이전 아시안게임과의 비교만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아시안게임 대표팀 발표를 앞둔 시기에, WBC 대표팀의 '음주파동'이 터졌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김광현, 정철원, 이용찬 등 선수 3명이 대회 기간에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며 빈축을 샀다.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 참사에 이어 지난 WBC에서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과 한일전 참패 등의 수모를 당했던 야구대표팀으로서는 또다시 국민적인 실망감을 안기며 이미지가 나락까지 떨어진 사건이었다. 세 선수는 논란이 일어나자 모두 공개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상태로 지난 7일 KBO 상벌위원회로부터 사회 봉사 40~80시간 제재금 300만~500만 원 수준의 징계를 받았다.
 
WBC 이후 한국야구가 맞이하는 첫 국제대회가 바로 아시안게임이다. 자연히 류중일호 역시 성적도 성적이지만, 대회 기간 중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강관리와 사고방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최근 성인 대표팀의 국제대회 부진과 각종 논란이 반복되면서 야구 내외적으로 차세대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올바른 육성'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류중일 감독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큰 책임을 느끼고 송구스럽다"며 음주파동을 언급하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조계현 위원장은 "국가대표는 책임감 있고 무거운 자리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국가대표에 대한 자부심, 자긍심, 책임감이 부여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당부하며 국가대표 선수들을 향한 메시지를 던졌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대표팀을 바라보는 국민정서가 가장 달라진 부분은 더 이상 '국제대회 성적이 국위선양'이라는 국가주의적인 발상이 많이 약해졌고, 결과보다는 '과정과 절차의 공정성-투명성'을 더 강조하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아무리 잘 나가는 슈퍼스타나 실력이 출중한 선수라고 해도, 국가대표에 걸맞는 자격과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팬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류중일호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그동안 선배들이 저지른 과오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고 '진정한 국가대표'로서의 명예회복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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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호 야구대표팀명단 항저우아시안게임 WBC음주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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