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긍정과 희망이 주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우리의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3월 22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럭키, 해피, 엔조이' 특집으로 이지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배우 이도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출연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이지선 교수는 과거 KBS 다큐 <인간극장> '지선아 사랑해' 편에 출연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23세에 불의의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으며 인생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좌절하지 않고 "저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있고 살아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계획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며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의지를 드러냈다. 2003년,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에세이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당시 대한민국은 '지선이 신드롬'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3년, 이지선은 이제 교수가 되어 23년 만에 모교로 다시 돌아왔다.
 
이지선 교수는 <유퀴즈> 출연 섭외를 받고 설레는 마음에 친구들을 소집하여 새 의상을 구매하고 라이브 방송을 통하여 패션을 점검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조세호와는 20년 전 <인간극장>에 출연했을 때 남희석과 함께 만난 적이 있다고 반가워했다. 이 교수는 "그때도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언제 뜨나, 언제 뜨나 하고 생각했다"며 팬심을 드러내자, 조세호도 감격하며 "고맙습니다"고 화답했다.

이지선 교수는 그녀의 인생을 180도 바꿨던 사고의 순간을 회상했다. 2000년 7월 30일, 이 교수는 당시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사고를 내고 도망가던 음주운전자의 차량과 충돌했다. 차에서 불이 나기 시작하면서 뒷좌석에 있던 이 교수의 몸에 먼저 불이 붙었다. 오빠 역시 그녀를 구하다가 화상을 입었다. 가해자는 사고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0.35%의 만취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응급실에 실려갔던 이 교수는 생명이 위독하다는 진단을 받고 오빠로부터 "좋은 동생이었다. 잘 가"라는 작별인사까지 받았다고. 하지만 이 교수는 "아직까지 안 가고 이렇게 잘 살아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웃음을 자아냈다.
 
화상이 심했던 이 교수는 수술을 받고 상한 피부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교수는 "지옥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가 이런 소리일까 싶었다"며 힘들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자신의 심각한 몸 상태, 주변에서 밤마다 세상을 떠나는 중환자들을 지켜보면서 몇 번이나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곁을 지켜주고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이 교수도 "살아서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고. 어머니 심정씨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엄마로서 낙심한 얼굴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기도가 모든 걸 감추는 역할도 했다"고 회상했다.
 
평생을 함께하고 있는 절친들도 사고 당시 이 교수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줬다. 이 교수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친구들은 병원을 찾아올 때마다 이 교수 앞에서 절대 울지말자고 약속하며 서로 마음을 다잡았다고. 이 교수는 친구들이 고등학교 시절처럼 돌아가 그 옛날의 자신과 항상 똑같이 대해줬다고 고백하며 "친구들이 올 때마다 참 즐거웠다. 웃는 게 고통을 이기지 않냐"면서 고마움을 드러냈다.
 
정작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는 이 교수를 한 번도 찾아오지도 않고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고. 듣고 있던 유재석이 오히려 한숨을 쉬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놀랍게도 가해자를 오래 전에 용서했다고 밝히며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도 견디기 어려운 거니까. 그것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라고 밝혔다. 또한 "가해자를 잊어버렸기에 제가 살아남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하며 대인배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때 보게 된 게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이 교수는 치료를 마치고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어려움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회상하며 "그때 보게 된 게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이었다. 너무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저의 피부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내 딸, 내 동생으로 지켜봐주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랑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저도 거울 앞에서 용기를 내게 됐다"고.
 
이 교수는 <인간극장>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을 밝혔다. 당시 가족들은 TV출연에 걱정이 많았지만, 이 교수는 오히려 "제 삶을 보여주면 살기 편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남들과 다른 이 교수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저를 보고 갖게 된 이해의 폭으로, 저와 같은 사람들을 지선씨처럼 오늘을 잘 살아가고 있구나 이해의 눈빛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갔다"고 고백했다.
 
이 교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돕는 길을 걷기로 결심했고, 고 하용조 목사를 만나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고단한 미국 유학 시절, 유재석이 출연한 <무한도전>을 즐겨보면서 위안을 얻었다고. 1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 교수는 모교인 이화여대에 교수로 돌아와 강단에 서고 있다. 이 교수는 머리를 감싸쥐더니 "교수도 직장인이다. 승진하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농담 섞인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 교수는 일간의 수술에 대한 오해도 해명했다. "'내면이 중요하고 외모는 중요하지않다더니 계속 수술을 받더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면서 "상처가 수축하는 성향 때문에 일상생활을 위해서 피부이식 수술을 받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교수는 사고가 났던 7월 30일을 자신이 다시 태어난 '두 번째 생일'로 여긴다고 밝혔다. 지금도 오빠는 그날이 올 때마다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내준다고.

이 교수는 '사고를 당했다'는 표현 대신 '사고를 만났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피해자로만 살고 싶지 않았다. '만났다'라고 말한 순간부터 이 사고와 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교수는 "불행을 만났을 때 자기 자신에게 다시 쓰기가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이 저를 환자나 장애인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로 봐준 것이, '오늘살이 이지선'으로 다시 쓰기를 할 수 있는 힘이 됐다"라고 고백했다. 또한 이지선 교수는 갑작스러운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밝혔다.

"지금 당장의 상황은 암울하고 절망적일지라도 우리 인생이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만은 않을 것이다, 동화같은 엔딩은 아닐지라도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힘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다보면, 분명 그날이 올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지시길 바란다."
 
덧붙여 이 교수는 "혹시 마음에 의구심이 드는 날이 오면 그때 저를 떠올려주시길 바란다. 제가 사고가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저 사람 인생 끝났지, 무슨 미래가 있겠어' 했을 텐데, 다 망가진 것 같아도 오늘이 있다. 우리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내 인생이 꽤 괜찮다'라는 마음을 가지시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송혜교, 연기적으로 너무 완벽하게 잘 만들어주셨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드라마 <더 글로리>를 통하여 대세 배우로 부상한 이도현이 출연했다. 이도현은 캐스팅 당시 김은숙 작가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겁이 났었다. 내가 이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엄청난 걱정이 많았다"면서 당시 김은숙 작가가 "망하더라도 다른 데 가서 망하는 것보다 내 작품으로 망하는 게 나을 걸?"이라며 호탕하게 격려를 해준 게 큰 힘이 됐다고. 또한 함께 공연한 송혜교에 대해서도 "제가 뭘 하지않아도 될 정도로 연기적으로 너무 완벽하게 잘 만들어주셨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한때 농구선수를 꿈꾸던 이도현은 영화 <해바라기>에 큰 감명을 받고 재수를 거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이도현은 <호텔 델루나>에서 1300년간 한 여자만 사랑하는 호위무사 고청명 역을 맡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함께 연기한 아이유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은 게 큰 힘이 됐다고. 이도현은 "마음가짐을 한 부에 한 신만 네가 성공한다고 생각하고 작품에 임해라"던 아이유의 조언을 떠올렸다.
 
이후 이도현은 <스위트홈> < 18어게인 > <오월의 청춘> 등의 화제작에 잇달아 출연하며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았다. 초심을 지키기 위하여 지인들에게 자신이 거만해지면 뺨을 때려달라고 부탁했던 일화가 언급되자 이도현은 "그래서 이런 이야기만 하면 안 된다. 시도때도 없이 때리니까"라고 깊은 후회를 드러내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도현은 <오월의 청춘>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발달장애 동생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혔던 수상소감은 큰 화제가 됐다. "동생이 밝고 순수하다. 그래서 동생이랑 같이 있으면 허물이 다 벗겨진다고 할까. 고집 세고 먹는 걸 좋아하지만 거짓말을 못 하는 순수한 아이"라며 애틋한 형제애를 드러냈다.
 
어릴 적에 고생하는 부모님을 돕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도현은 배우로서 성공하면서 가족을 위하여 새 집을 장만해주는 데 성공했다. 이도현은 '가족 중에 혼자 일하는 게 목표'라고 밝히며 "부모님은 저 때문에 본인들 인생을 못 사시지 않았냐. 앞으로는 부모님이 각자의 인생을 즐기겼으면 좋겠다"며 남다른 효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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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쇼팽의 귀환'으로 불리우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마지막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조성진은 피아노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쇼핑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부상했다. <뉴욕타임스>는 조성진의 연주를 "기적같다"고 극찬했고 지휘장 사이먼 래틀은 "위대한 건반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조성진은 "1년에 100번 정도 연주를 한다. 적게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체력이 될 때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었다"라며 바쁜 일정으로 외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연주자의 삶을 고백했다. 어린 시절의 조성진은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도 잘 했지만 의외로 게임과 소설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영재로 불리우며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았던 조성진은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음악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대회 내내 미스터치가 한 번도 없는 완벽한 연주로 화제가 된 데 대하여 "콩쿠르 때 연주해온 곡들은 어렸을 때부터 친 곡들이 많아서 몸에, 손에 배어 있었다"고 회상하며 "음이 너무 많으니까 미스터치는 매번 나온다. 하지만 그게(정확한 터치)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먼저 들려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조성진은 "음 하나하나보다는 좀더 큰 그림을 보려고 한다. 거의 모든 음악에는 클라이맥스가 존재한다. 아름다운 부분을 계속 아름답게만 표현하면 나중에 중요한 순간에 아름답게 느끼지 못 한다. 내가 특별하게 살리고 싶은 부분을 아낀다고 해야할까? 그게 클래식 음악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콩쿠르 최종심사 채점표가 공개되면서 조성진에게 1점을 준 심사위원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성진은 우승을 차지했다. 조성진은 "만약 그분 때문에 2등이 되었으면 화가 났겠지만, 그냥 그런 의견도 있다고 받아들였다"고 성숙한 반응을 보였다.
 
'럭키, 해피, 엔조이'는 우승 직후 조성진의 소감이었다. 막상 우승직후에는 실감을 못했다는 조성진은 귀국 후 보쌈집에서 전 서비스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유명세를 실감했다며 엉뚱한 면모를 드러냈다.

조성진은 20대 후반까지 일정한 성과나 수준에 도달하지 못 하면 음악을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는 뒷이야기를 밝히며 쇼팽 콩쿠르 이후에야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음을 고백했다. 한편으로는 "음악계에서 나는 이제 막 태어난 사람이구나. 어떻게 하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많았었다"라고 고백했다.
 
조성진은 이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빈 필하모닉 등와 잇달아 협연하며 자신의 오랜 꿈을 이뤘다. 빈 필하모닉과의 공연에서는 대타로 깜짝 섭외되어 난이도가 높기로 악명 높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소화하기 위하여 호텔 로비를 구하여 밤샘연습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조성진은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협연을 마치고 라닉 지휘자와 포옹하면서 울컥했던 감동적인 순간을 떠올렸다.
 
조성진은 "연주 많이 하고 돌아오면 집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쉬는 걸 좋아한다. 정말 단순한 삶"이라며 연주자의 애환을 토로했다. 연주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손을 보호해야 하는 만큼 운동이나 다른 취미를 가지기도 어렵다고. 조성진은 "취미로 뭘할까 생각하는 게 취미다. 뭘 할까 고민하다보면 투어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시간이 많아 없다보니 먹는 게 유일한 취미가 됐다"고 고백했다.
 
조성진은 "하루종일 음악 생각만 하다보니까 직업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주변에서는 음악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그냥 저는 음악할때가 가장 좋다. 거의 전부인 것 같다"면서 "음악 외에 열정을 쏟을 만한, 좋아하는 일을 아직 못 찾았다"며 뼛속까지 음악인의 면모를 드러냈다.
 
지금껏 해왔고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평생 천 번에 가까운 연주를 해왔지만 "아직 자신이 완벽히 만족할 만한 연주는 10번도 되지 않는다"는 조성진은 "앞으로 그 횟수를 늘리는 게 제 마음"이라며 새로운 목표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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