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도 거스를 수 없는 게 있으니 다름아닌 세월이다. 특히 육체적인 능력 같은 경우 개인별 편차만 있을 뿐 최대치로 발휘 가능한 시기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고점에서 경쟁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운동선수라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련미를 발휘하고 몸관리를 잘한다 해도 한계점은 분명 존재한다.

전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표도르는 작은 사이즈를 놀라운 신체능력으로 커버했지만 이 같은 파이팅 스타일은 체력과 스피드가 살아 있을 때나 가능했다. 나이가 들어 육체적 하향세가 오면서부터는 상대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패턴이 잘 통하지 않게 됐다. 게다가 본래 레슬링과 클린치 싸움 등에 강점을 가지고 있지 못 했던 상태에서 주 전장이 링에서 케이지로 바뀌어간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말년에 접어든 표도르의 선택은 타격의 극대화였다. 헤비급 무대에서도 레슬러 출신들이 늘어가면서 표도르는 예전처럼 벼락같은 클린치 이후 테이크다운 전법을 구사하기가 쉽지 않아 졌다. 사이즈, 레슬링 등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갔던지라 최대한 붙지 않는 상태에서 승리를 노려야 했다.
 
 '황제' 표도르의 전성기는 2009년 브렛 로저스와의 경기가 사실상 끝자락이었다.

'황제' 표도르의 전성기는 2009년 브렛 로저스와의 경기가 사실상 끝자락이었다. ⓒ 스트라이크포스

 
상대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예전의 표도르가 타격-그래플링을 모두 경계해야 됐다면, 나이 먹은 표도르는 타격만 조심하면 됐다. 결국 상대가 패턴을 간파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무기를 더 강하게 갈고 닦는 수밖에 없었다.

한창때 표도르는 이른바 '붕붕훅'으로 불리는 러시안 훅 스타일의 펀치공격이 타격 패턴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프라이드 시절 이후에는 여기에 상당한 변화를 줬다. 빠른 핸드 스피드를 활용해 펀치를 휘두를 경우 상대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파악해 어퍼컷의 비중을 크게 하고, 제대로 된 킥을 장착하기 위해 수시로 입식강국 네덜란드를 찾았다.

전설적 복서 로이 존스 주니어를 침몰시키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데니스 레베데프, K-1 레전드 출신의 트레이너 어네스트 후스트 등과 훈련을 함께 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영리한 표도르는 당시부터 자신의 육체적 변화를 알고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각종 인터뷰를 통해 "향후 헤비급 무대는 사이즈와 기술을 겸비한 선수들이 득세할 듯 싶다"고 말했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더 이상 자신의 그래플링이 헤비급에서 통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신체능력을 활용한 변칙 타격마저 예전 같지 않아지자 거기에 따른 고심이 깊어졌던 것이다. 적어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던 '표도르의 주무기는 이러이러한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기술을 조심해야 한다'에 대한 최소한의 반전이 필요했다.

전성기 지난 '작은 황제'의 고민

표도르는 최종적으로 타격 패턴의 다양화를 생각한 듯했지만 아쉽게도 떨어진 신체능력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실제로 몇몇 경기에서는 여러 가지 펀치 기술에, 로우킥도 차보면서 변화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찌보면 그러한 올라운드식 타격은 한창 전성기 때 펼쳤어야 됐다.

나이를 먹고 순발력이 떨어지자 머릿 속에 심어놓은 다양한 기술과는 별개로 단발 카운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작은 체구의 표도르에게는 어쩔 수 없으면서도 위험한 선택이 되고 말았다. 팀 실비아, 안드레이 알롭스키, 브렛 로저스 등을 때려 눕힌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기 흐름을 읽고 빈틈을 포착하는 센스는 여전했던지라 카운터 타이밍을 잡는 능력은 탁월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승부를 가르는 카운터의 특성상 조금만 실수해도 상대의 반격에 역공을 당할 수도 있는 게 바로 그러한 전략이었다. 더불어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더 이상 '비기(祕技)'로서의 가치도 떨어지게 되었다. 아무리 날카롭고 위력적이라도 상대에게 발각된 카운터는 더 이상 카운터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국내 최대 입식격투기 단체 맥스FC 이호택 전 실장은 "전성기 표도르는 스텝이 좋아서 앞손으로 거리를 잡고 이어지는 콤비네이션이 워낙 빠르고 좋았다. 들어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허용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을 정도다. 거기에 더해 클린치 후 테이크다운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어 막아내기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무시무시한 핸드 스피드에 주목했지만 신속하고 기민한 발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그러한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며 한창때 표도르의 필승 패턴을 설명했다.

더불어 "파이터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가장 실감하는 순간 중 하나는 발이 느려지고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지는 것이다. 표도르가 그랬다. 한창때보다 현저히 발이 느려진 데다가 체력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경기 내내 끊임없이 밟아대던 스텝도 사라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발이 멈춘 것인데 이는 반응 속도와도 직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뒷손 카운터 위주 공격이 되고 미스가 많아지게 됐다. 표도르하면 스피드와 컨택능력인데 그게 사라지다보니 쉽지 않은 싸움을 하게 된 거다"라며 이후 부진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프로야구 등을 보다보면 덩치 크고 힘 좋은 거포 스타일보다 작고 날렵한 톱타자 유형이 노쇠화가 더 빨리오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사이즈나 파워에서 장점이 있는 타자들은 나이를 먹어서도 그러한 부분을 일정 부분 유지해나가면서 플레이하는게 가능하다. 하지만 스피드, 컨택 능력 등으로 다른 단점을 커버해가던 선수는 스타일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노쇠화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떨어지는 것들이 순발력, 동체시력 등이기 때문이다.

헤비급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했던 표도르 역시 야구로 따지면 톱타자 포지션에 둘 수 있다. 프라이드 시절에는 본인의 폼이 절정에 달한 데다 덩치와 힘은 좋지만 둔하고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빅사이즈 파이터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 헤비급에도 신체밸런스와 기술까지 좋은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반대로 자신의 신체능력은 하락하면서 자연스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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