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주인공만이 아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활약하는 숨은 조연들이 있기에 어쩌면 주인공이 더 빛날 수 있는 것이다. 12월 14일 방송된 tvN 토크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172회 '어텐션' 편에서는 축구스타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김상규 SBS 시사교양팀 배차담당 기장, 걸그룹 뉴진스가 이날의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김상규 기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사고발 프로그램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하여 '전설의 기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 완성되는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이 필요하고, 출연진-제작진의 차량 이동을 돕는 운전 기장들도 그중 하나다. 김상규 기장은 2010년부터 업무를 시작했고 그중 대부분을 <그알>과 함께했다.
 
지난주에 출연했던 이동원 <그알> PD는 김상규 기장을 사실상 '한 팀'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전국에 모르는 경찰서가 없고, 원하는 지역을 내비게이션 없이도 찾을 정도이며, 차량 블랙박스를 이용하여 제작진의 촬영까지 돕는다는 김 기장의 무용담은 방송가에서 전설로 회자될 정도다.
 
김 기장은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데가 없다고 고백했다. 많이 이동할 때는 하루에만 1200Km 이상, 1년에는 10만km 이상을 운행하기도 했다. 인질을 납치하여 도망가는 범인을 상대로 영화같은 자동차 추격전을 벌인 일도 있고, 마치 만물상처럼 차량에 여러 가지 장비를 구비해놓았다가 필요할 때 제작진에게 적재적소에 제공하기도 한다고.

심지어 김 기장은 <그알>에서 판사, 경찰, 범인 등 재연 배우로 활약한 적도 많다고 고백했다. 김 기장에서 현장에서 위험한 촬영을 하다가 종종 위협을 당하기도 하던 제작진을 보호하기 위하여 나선 일도 있었다.
 
김 기장은 <그알>에 참여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 취재를 꼽았다. 당시 PD가 "만일 제가 연락이 안되면 112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할만큼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김 기장은 미제사건이나 살인사건 등, 위험한 취재를 할 때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차를 집 쪽으로 대서 블랙박스나 휴대폰 촬영준비를 미리 해놓는다거나, 호신용 도구를 준비해놓고 바깥에서 대기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고.
 
김 기장은 "방송 후 사회적인 제도에 변화가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고백하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염상사 사건'을 언급했다. 육군 염순덕 상사가 머리를 맞아 살해된 미제사건으로 <그알>은 군 수사기관의 사건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데 김 기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돌연 눈물을 보였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염 상사의 노모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식을 잃은 피맺힌 한을 털어놓았다고. 제작진도, 김 기장도 피해자들의 아픔에 함께 울고 분노하고 깊이 공감했다.

다행히 <그알> 방송 이후 국가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고, 17년 동안 받지 못한 연금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알>은 이 에피소드로 많은 상을 수상했고, 김 기장도 제작진의 배려로 '서재필 언론문화상'을 수상했다. 김 기장은 이제는 자신도 PD처럼 시청률을 신경쓰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많이들 봐주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미소를 지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최근 4세대 신흥 걸그룹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뉴진스(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가 출연했다. SM의 아이돌 콘셉트를 기획하던 민희진 크레에이티브 디렉터가 이적 이후 처음 제작진 걸그룹인 뉴진스는, 지난 7월 데뷔와 동시에 '어텐션', 'hype boy' 등을 히트시키며 음원차트와 광고계를 접수했다. 뉴진스의 데뷔앨범은 미국의 유명 음악지 <롤링스톤스>가 뽑은 올해의 베스트앨범 톱100 중 46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원 10대로 구성된 뉴진스는 무대에 오르기 전 '샌드위치'라는 고유의 의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팀들이 일반적인 파이팅을 외는 것과는 다르게, 서로의 눈을 맞추면서 손을 맞잡고 힘을 모은다는 생각으로 누르는 동작이라고. 리더인 민지는 중학교에서 춘천에서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미모의 전학생'으로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쑥쓰러워했다.

멤버들은 대표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가 "즐기면서 하라"였다고 밝혔다. 멤버들은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하면 보는 사람도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데뷔를 앞두고 스페인에서 첫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멤버들은 드디어 열심히 준비한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행복해하며 "와, 진짜 즐겼다"는 생각과 감정을 처음 체감했다고.
 
민지는 "즐기려면 많은 준비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는 성숙한 소감을 밝혔다. 수많은 아이돌의 흥망성쇠를 지켜봐왔던 민 대표는 "즐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원초적 즐거움은 한계가 있기에 즐거워서 시작한 일을 더 즐기려면 프로폐서널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돈과 성공도 좋지만 즐기지 않으면 괴롭다. 멤버들이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속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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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한국축구의 슈퍼스타 손흥민을 키워낸 '사커 대디' 손웅정 유소년 축구 감독이 이날의 마지막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손 감독의 녹화가 진행되던 당시는 카타르월드컵 조별예선이 진행중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안면골절 부상을 당한 손흥민은 마스크를 쓴 채 월드컵에 출전했다. 아들의 얼굴이 함몰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손 감독은 부상을 당하자마자 부자가 동시에 든 생각이 "아, 월드컵은?"이었다고 고백했다. 손흥민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손 감독에게 "어떻게든 월드컵은 가야 한다.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고.
 
손흥민은 예정보다 수술 일정을 앞당겼고, 부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빼려고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계속 얼굴에 얼음을 대놓을 만큼 월드컵 출전을 위하여 사력을 다했던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손 감독은 "축구선수들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다. 국가대표는 국민들이 기대하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흥민이도 월드컵을 너무나 가고 싶어했다"며 책임감 때문에 더 절실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손흥민은 수술 이후 SNS에 "단 1%의 가능성만 있다면 그 가능성을 보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앞만 보며 달려가겠다"는 글을 올려 팬들을 뭉클하게 했다.
 
손 감독은 아들과 대한민국 대표팀의 월드컵을 지켜보는 소감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넘어서, 사력을 다한다고 표현하고 싶다"면서 "그만큼 국민 여러분이 엄청난 성원과 사랑을 보내주시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도 더 동기부여가 된다"고 밝혔다. 선수들과 팬들의 열정은 결국 12년 만의 16강진출이라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포르투갈전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역전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손흥민이 마스크를 내던지고 눈물을 흘리며 포효하는 모습은 월드컵 최고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아들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낸 손 감독은 정작 자신은 "삼류 선수였다"고 겸손하게 고백했다. 손 감독은 1980년대 프로무대에서 4년간 활약하면서 37경기에 출전했으나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고 28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손 감독은 "어떻게 보면 그래서 흥민이을 다르게 훈련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결과를 바꾸려면 원인을 바꿔야 한다. 제가 삼류선수였기에 흥민이를 제가 했던 그대로 훈련시켰으면 저같은 선수밖에 안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흥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자유로운 양발 사용, 페널티박스 양쪽에서 감아차는 '손흥민 존' 등은 모두 손 감독의 철저한 연구와 훈련을 통해서 탄생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손 감독은 젊은 나이에 은퇴 이후 막노동, 헬스 트레이너,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시설 관리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손 감독은 원래 손흥민에게 축구를 시키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어린 아들이 재능이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손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자연스럽게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줬다고 고백했다.
 
손 감독은 "자유라는 연료가 타야 창의력이 나온다"는 어록을 통하여 아이들이 운동을 접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자유롭게 풀어놔야 스스로 좋고 싫음에 대한 판단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손 감독은 아들이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하자 '기본'을 강조하며 하루에 두 시간씩 초3 때부터 중3 때까지 매일같이 6시간씩 기본기 훈련만 시켰다고 밝혔다. 어떤 상황이 와도 공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이었다.
 
여기서 손 감독은 축구계에 쓴 소리를 날렸다. "축구인들에게 손가락질 받더라도 이야기하겠다. 걸음마도 못하는 애에게 100미터 달리기를 시킬 수는 없다. 지금 기본기을 해야 되는 아이들을 '기본'을 무시하고 '경기'를 시킨다. 경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 '성적'을 요구한다"고 질타했다.
 
손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너무 혹사당하다보니 정작 프로에 진입해야 할 18~19세가 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손흥민도 슈팅 연습을 시작한 게 함부르크에 입단한 18살 이후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어린 애들이 멀리, 강하게 때리는 건 절대 안 한다. 관절과 근육이 여리기 때문이다. 낼 수 있는 힘 이상을 반복적으로 내면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모른다"며 성적지상주의에 휩쓸려 성장기 어린 선수들의 신체 보호에 무관심한 축구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손 감독은 축구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을 위하여 '인무원려 필유근우(멀리 보지 않으면 가까이 근심이 생긴다), 인무원려 난성대업(멀리 보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라는 사자성어를 통하여 "내 자식이 축구를 하는데 멀리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손 감독은 아들에게 워낙 혹독한 훈련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당하기도 했고, 명절에도 친척 집에도 보내지 않고 훈련 시간을 지켰던 일화를 소개했다. 손 감독은 "가장 중요한 건 흥민이의 행복이었다. 흥민이가 축구를 하면서 행복하면 된다. 그 대신 행복하려면 자기가 축구를 잘해야 한다"며 묵묵히 아들을 혹독하게 단련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힘든 과정에 한 번쯤 불만을 표할만도 했지만, 낙천적인 손흥민은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나도 금세 훌훌 털고 "아빠" 하면서 스스럼없이 다가왔다고. 손 감독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열정이 나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 감독은 손흥민의 독일 진출 이후에도 '손부삼천지교'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아들의 개인코치에서 매니저 역할까지 자처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며 온갖 궃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돈도 집도 차도 없고 언어도 안되니까 몸으로 때워야 했다"라면서 아들과 함께 유럽에서 자리잡기까지 온갖 고생을 함께했던 손 감독은, "유럽에 들어가면서 사느냐 죽느냐였다. 제가 엄격한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가 그렇게 함으로써 흥민이가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속내를 밝혔다.
 
손흥민이 함부르크에서 18세에 프로 데뷔 첫골을 넣던 뜻깊은 날, 손 감독은 오히려 "사실 그날 너무너무 두려웠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고백했다. 아들이 팬들의 반응을 보고 자칫 도취될까봐 손흥민의 노트북을 가져가서 감추며 "며칠 동안 흥민이가 망각증에 걸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또한 손 감독은 지금도 자신의 하루일과는 오로지 손흥민의 뒷바라지를 위한 루틴에 철저히 맞춰져있으며 개인 휴대폰도 저장해놓은 번호가 없고 꼭 필요한 연락처는 외우고 다닌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손 감독은 "저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다. 하지만 혹시나 흥민이 아버지라고 해서 원치 않는 일에 엮일 수 있기 때문에, 제 초심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를 엄청 채찍질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돈을 받으면서 일하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든 고생이지만 손 감독은, "부모고, 자식이 하니까 해야하는 것"이라며 담백하게 답했다.
 
손흥민이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하게 된 과정의 뒷이야기도 전했다. 레버쿠젠이 손흥민의 이적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다니엘 레비 토트넘 회장은 마지막 최종 협상을 앞두고 "이번에 안 되면 이적이 힘들다"고 통보했다. 당시 레버쿠젠 감독은 손흥민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고. 이적이 간절했던 손웅정 감독은 레버쿠젠의 단장과 부단장을 직접 만나 협상을 간절히 호소한 끝에 겨우 토트넘행이 성사될 수 있었다. 손흥민의 축구인생이 바뀌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이었다.
 
한편으로 손 감독은 자신이 손흥민의 일에 대하여 지나치게 간섭하고 좌지우지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억울함을 드러냈다. 손 감독은 "제가 결혼한 큰 아들의 집에도 가본 적이 없다. 흥민이의 생활에 침범하지 않는다. 흥민이가 축구에 있어서는 '공만 찰 수 있게' 해주고픈 것"이라고 해명했다.
 
올시즌 초반 손흥민은 득점 가뭄으로 다소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손 감독은 "8경기가 아니라 16경기 연속 골이 안 나오면 어떠냐. 흥민이한테도 항상 이야기한다. 경기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축구 행복해서 했잖아? 오늘 행복하게 경기하고 와'라고" 이어 손 감독은 "흥민이가 본인이 좋아하는 축구를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게 저는 가장 좋다"며 애틋한 부정을 드러냈다.
 
손 감독은 "지금도 축구하고 흥민이만 본다. '흥민이가 한 번 주어진 인생인데 행복하게 살아야지' 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월드클래스'라는 찬사에 대해서도 한사코 부정하며 "흥민이의 축구가 항상 10% 더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성기'란, 내려가라는 신호다. 단, 내려갈 때 아름답게 내려가야 한다. 흥민이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팬들도 허무하실 수 있다. 축구는 젊어서 잠깐이다. 거기에 도취되면 안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손 감독은 손흥민이 은퇴하고나면 평범한 삶을 살 것이라고 강조하며 "은퇴하면 누가 흥민이 이름을 불러주겠나. 은퇴하면 기억도 안 하지 않나. 교만 떨고 할 게 아니다"며 끝까지 겸손과 절제를 강조했다.
 
손 감독은 "흥민이가 어린 나이에 유럽에 진출해서 행복하고 좋아하는 축구를 하는 게 부모로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고생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놈에게 제가 고맙다. 흥민이가 은퇴할 때가 되면 '그동안 고생했다. 네 꿈도 이루고,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루어서 나는 너한테 고맙다'라는 이야기는 할 것"이라면서 아직 못 다 전한 속마음을 털어놨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계약은 2025년 6월에 끝난다. 손 감독은 손흥민의 계약이 만료되면 "그동안 고생했으니 네가 정말 살아보고 싶은 도시, 공 차보고 싶었던 구단에 가서 행복하게 공 차다가 은퇴하는 게 내 바람"이라고 전하면서 "그 결정 또한 흥민이가 할 것이다. 흥민이가 축구로 행복하고, 은퇴 후에도 행복한 삶을 항상 살았으면 하는 게 저의 가장 큰 바람"이라고 전했다. 손흥민에게 최고의 축구 친구이자 인생 멘토가 되어준 아버지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를 느끼게 한 손 감독의 고백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유퀴즈 손웅정 손흥민 뉴진스 그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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