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화원> 영화 포스터

▲ <지옥의 화원> 영화 포스터 ⓒ 찬란


압도적 격투 능력만 있다면 최강의 여직원으로 칭송받는 세계. 미츠우지 상사도 개발부의 안도 슈리(나나오 분)가 이끄는 슈리파, 영업부의 사타케 사오리(카와에이 리나 분)가 이끄는 사타케파, 제조부의 칸다 에츠코(오오시마 미유키 분)가 이끄는 칸타파가 회사 최강의 자리를 놓고 대립한다. 

군웅할거의 혼란 속에서 평범한 회사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던 영업부의 타나카 나오코(나가노 메이 분)는 새로 입사한 호조 란(히로세 아리스 분)과 우연한 계기로 친해지게 된다. 란이 뛰어난 싸움 실력으로 사내 파벌을 평정하고 서열 1인자에 오르자 그녀는 곧바로 전국의 다른 회사 파벌의 표적으로 찍힌다. 란과 함께 취미를 나누던 나오코 역시 거대한 영역 싸움에 휘말리고 만다.
 
<지옥의 화원> 영화의 한 장면

▲ <지옥의 화원> 영화의 한 장면 ⓒ 찬란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이 조폭 못지않은 파벌을 나눠 서열 싸움을 벌이는 '학원액션물'은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은 만화 장르다. 1990년대엔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짱> 같은 잡지 연재만화가 인기를 얻었고 최근엔 <외모지상주의> <쇼미더럭키짱!> <약한 영웅> <독고> 등 웹툰을 통해서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기실 한국의 학원액션물은 일본의 학원액션물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일본에서 학원액션물은 흔히 '양키물'로 불린다. 1970년대 오사카 난바의 미군기지 주변에 형성된 아메리카촌에서 구입한 화려한 알로하 셔츠나 통이 큰 바지를 입으며 미국풍 패션으로 꾸민 젊은이들을 '양키'라고 지칭하던 것이 1980년대부터 불량청소년 전반을 일컫는 단어로 발전하였고, 이후 불량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틀어 양키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만화 <크로우즈> <상남 2인조> <도쿄 리벤저스>, 게임 <사립 저스티스 학원>이 대표적인 양키물이다.

영화 <지옥의 화원>은 양키물을 비틀어 배경을 학교에서 회사로, 주인공을 남자 고등학생에서 여자 회사원으로 바꾼 기발한 발상이 돋보인다. 각본은 일본에서 화려하지 않은 천재, 오오기리의 달인으로 불리는 멀티 엔터테이너 바카리즈무가 썼다. 메가폰은 퍼퓸, 호시노 겐, 요네즈 켄시 등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여 주목을 받았고 드라마 <내일도 분명 너를 사랑해>(2016)를 연출한 바 있는 세키 가즈아키가 잡았다.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2021)로 제45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가노 메이, < 7인의 비서 >(2020), <사랑 따위 진심으로 해서 뭐해?>(2022)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일본을 이끄는 루키로 주목받는 히로세 아리스, 드라마, 영화, 무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실력파 배우로 평가받는 코이케 에이코, AKB48의 전 멤버로 현재는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카와에이 리나 등 출연진도 탄탄하다. 악역 이미지로 유명한 엔도 켄이치는 여성으로 분장하여 뻔뻔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지옥의 화원> 영화의 한 장면

▲ <지옥의 화원> 영화의 한 장면 ⓒ 찬란

 
<지옥의 화원>은 양키물을 변형한 작품답게 만화(또는 중국 무협) 같은 액션을 보여준다. 캐릭터, 대사, 연기, 비주얼, 패션도 만화답기 그지없다. 여성 직원들은 영화 <크로우즈 제로> 시리즈처럼 야쿠자 스타일의 액션으로 사무실 복도나 회사 옥상에서 싸운다. 격투신은 처절함을 보여주기보단 웃음을 주는 형태로 연출되었다. 지상 최상의 여직원 오니마루 레이나(코이케 에이코 분)가 등장한 다음부턴 CGI를 활용하여 만화 <드래곤볼>처럼 싸우는 황당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나오코의 입을 통해 창작물 속의 등장인물이 자신이 등장하는 작품 자체에 대해 언급하는 '메타발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오코는 흡사 독자의 시점처럼 양키물의 관습을 따르거나 전복하는 영화 속 전개, 캐릭터, 설정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평한다. 예를 들면 자신이 "만화 영웅의 평범한 친구"라는 식이다.

<지옥의 화원>은 시대를 반영한 시각과 시대착오적인 태도가 공존한다. 양키물을 여자 회사원으로 비튼 건 장르적 유희인 동시에 사무실 여성들의 강인함과 여성 연대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이다. 대부분 캐릭터는 여성으로 채워졌고 남성들의 역할을 일부에 불과하다. 

후반부에 이르러 지상 최강의 여직원이 되기 위해선 전화 응대를 잘하고 복사기 사용에 능하며 커피 심부름을 잘해야 한다는 식의 퇴행적 태도는 무척 당혹스럽다. 남자친구를 얻는 것이 최강의 여직원이 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중반까지 여성의 역할 확대를 옹호하던 영화가 종국에 진보적인 한 방을 날리기는커녕 일본 사회의 가부장적 가치를 강화하는 태도로 돌변해버린 셈이다.
 
<지옥의 화원> 영화의 한 장면

▲ <지옥의 화원> 영화의 한 장면 ⓒ 찬란

 
<지옥의 화원>은 양키물, 만화적 상상력을 좋아하는 팬들에겐 확실한 재미를 보장한다. 메타 유머도 재미있거니와 슬랩스틱, 소년만화, 중국 무협물, 슈퍼히어로 장르 등의 다양한 재미가 녹아 있다. 만화 같은 상상력이 가득한 액션신도 탁월하게 그렸다. <지옥의 화원>은 장르의 팬이라면 분명 즐거울 시간이다. 반면에 페미니즘의 눈높이로 본다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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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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