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의 한 장면.

MBC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의 한 장면. ⓒ MBC

 
이야기 예능의 열풍이 '썰 스포츠'라는 새로운 장르 실험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12월 11일 첫 방송된 MBC 새 파일럿 예능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아래 세치혀) 첫 회에서는 '혓바닥 종합격투기'를 표방하며 우리 사회 각계 각층의 이야기꾼들이 풀어내는 기상천외한 사연들의 토크 배틀이 펼쳐졌다.
 
프로그램 제목인 '세치혀'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평균 약 9cm 정도인 사람의 혀를 뜻하며 흔히 관용적으로 쓰일 때는 능수능란한 말솜씨를 의미하기도 한다. 뛰어난 언변은 물론, 목소리-단어-표정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말의 기술을 통하여 100인의 관객들(썰피플)의 마음을 더 많이 움직이는 이야기꾼이 승리하는 대결이었다. 전현무가 MC를 장도연-배성재-유병재가 패널로 함께했다.
 
온라인 30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운동 크리에이터 김계란, 트렌스젠더 출신 인플루언서 풍자가 첫 대결 상대로 링 위에 등장했다. '근육 세치혀'를 표방한 김계란은 '당신이 몰랐던 헬스장의 은밀한 비밀 호구 탈출 넘버원'이라는 주제로 선공을, '마라맛 세치혀'를 표방한 풍자는 '카리스마 쎈언니 풍자의 빌런 대처법'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김계란은 헬스장 등록부터 트레이너 선택까지 헬스의 A to Z를 꿰뚫는 노하우를 소개했다. 김계란은 헬스장을 고를 때 집에서 최대한 가깝고 횡단보도 하나라도 덜 건너는 곳을 고를 것. 발라드가 나오는 곳은 피하고 신나고 활동적인 댄스 음악이 나오는 헬스장을 고를 것 등을 조언했다.
 
헬스장의 핵심은 역시 좋은 트레이너를 구하는 것이다. 김계란은 "옷을 거지 같이 입은 트레이너가 좋은 트레이너일 확률이 높다"는 의외의 노하우를 전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운동할 때 기능성만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좋은 트레이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김계란은 좋은 트레이너 판별을 위한 두 번째 노하우가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 돌연 이야기를 중간에서 끊는 '절단신공' 버튼을 눌렀다. 한창 이야기에 몰입하던 청중들의 기대치가 최고조에 있을 때 흐름을 끊는 치트키였다.
 
황당해진 MC들은 "이건 좀 열받는다." "유튜브 광고 나올 때보다 10배 더 열받았다"며 어이없어했다. 만일 김계란이 대결에서 패배하면 뒷이야기는 영영 할 수 없게 된다. 약간 다급해진 김계란은 청중들을 향하여 "내가 지면 안 가르쳐줄 거다. 좋은 트레이너를 영영 못 찾으실 거다.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라며 반 협박에 가까운 읍소로 웃음을 자아냈다.
 
듣고 있던 풍자는 "이건 강의다"라고 김계란을 디스하면서 "제 썰은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여러분들의 턱을 빠지게 할 것"이라고 예고하며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후공에 나선 풍자는 자신이 트렌스젠더 출신임을 고백하며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게 세치 혀 덕분이다. 유튜브에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상하게 빌런들이 꼬이기 시작했다"며 이야기를 풀어놨다.
 
풍자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악플러들의 욕설과 비난을 '비방용'으로 솔직히 공개했다. 방송에서는 '삐~' 처리로 넘어갔지만 듣고있던 청중들은 경악했다. 풍자는 "악플러들이 왜 나에게 욕을 하고 앙심을 품는가 했더니, '넌 트렌스젠더잖아? 나랑 급이 달라. 근데 트렌스젠더인 니가 왜 나보다 잘살아? 왜 사랑을 받아? 그래서 분해'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풍자는 그보다 더 힘들었던 순간으로 자신이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설을 했다는 거짓된 내용이 유포된 사건을 꼽았다. 알고보니 그 주인공은 다른 누군가가 풍자의 성대모사를 하면서 본인이 풍자인 것처럼 위장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풍자 본인도 '내가 언제 이런 말을 했지?' 당황할 정도로 목소리가 흡사했다고.
 
분노한 풍자는 응징을 결심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결국 사칭범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가짜 풍자'의 충격적인 정체를 공개하기 직전, 풍자는 절단신공 버튼을 누르며 이야기를 중단했다. 경쟁자인 김계란조차 풍자의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에 몸서리를 치며 웃음을 자아냈다.
 
썰피플의 투표 결과는 81대 19로 풍자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 풍자가 고백한 가짜 풍자의 정체를 공개됐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불과 만 11살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풍자로 위장하고 욕을 하는 방송을 통하여 BJ로 돈을 벌고 있었던 것. 풍자는 처음에는 분노와 허탈함에 속이 뒤집어졌지만, 소년이 가정이 불우하고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소년은 본래 풍자의 방송을 애청하던 열혈팬이었고, 풍자를 사칭한 이유도 바로 "자신도 풍자처럼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 어른과 친구들, 아무도 자신을 신경써주지 않을 때 풍자의 성대모사로 처음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 소년은 "누나, 죄송해요. 벌받을게요"라며 눈물을 흘렸고, 풍자는 소년의 진심어린 '반성문'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풍자는 소년을 용서해주고 "10년 후에 방송할 마음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격려하며 대인배의 모습을 보였다.
 
결국 풍자의 빌런 대처법이란 복수가 아니라 용서와 포용이었던 것. 풍자는 "남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나를 사랑하셨으면 좋겠다. 제가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만큼 여러분의 인생도 당당해지시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2라운드는 '불륜잡는 세치혀' 양나래 이혼 전문 변호사와 '탈북 세치혀' 윤설미의 대결이었다. 양나래는 '불륜도 트렌드가 있다. 당신의 배우자, 아직 믿으세요'라는 주제로, 윤설미는 '탈북하다 잡혀봤니? 지옥같은 교도소에서 살아남은 필살기는?'이라는 주제로 썰을 펼쳤다.
 
트렌드에 민감한 '트민녀'를 자칭한 양나래는 날로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불륜의 기술을 폭로했다. 양나래는 배우자의 불륜이 의심될 경우 자동차를 확인해볼 것을 주문했다. 물론 노련한 프로 불륜러라면 블랙박스나 내비게이션 삭제는 기본일 것이다.

여기서 양나래는 대처법으로 '블루투스 연결목록 확인'이라는 비장의 비법을 공개하며 "불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공유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양나래는 연기자 뺨치는 연기력으로 불륜러들의 모습을 재연하고 "놀고들 있죠?"라는 마무리로 청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양나래는 불륜 검거를 위하여 최신 장비인 드론(법적으로는 불법)까지 동원한 사례를 소개했다. 또한 최근 유행하고 있는 '오픈 채팅방'이 기혼자들의 불륜을 모의하는 창구로 변질되고 있는 사례를 고발했다. 이러한 채팅방에 입장하려면 결혼사진이나 가족사진 등으로 신분을 인증해야 하고, 심지어 성관계 스타일까지 공유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하며 청중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숙생(같은 사는 배우자)', '육봉(육아봉사)' '집밥(부부간 성관계)' '마트가서 시식(모텔에서의 불륜 성관계)' 등 오픈채팅방에서만 통하는 불륜러들의 은어도 소개됐다. 양나래는 7년 차 불륜전문 변호사인 자신도 경악하게 만든 '기기 커플'이 있다고 소개하는 대목에서 절단신공 버튼을 누리며 궁금증을 높였다.
 
후공에 나선 윤설미는 7년간의 탈북 여정에서 인신매매-북한 교도소 수감 등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던 파란만장한 인생을 고백했다. 두 번의 북송과 세 번의 탈북을 거쳐 대한민국에 왔다는 윤설미는 "북한 전역을 봐도 혓바닥으로 저를 이길 사람은 없다"고 너스레를 떨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MBC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의 한 장면.

MBC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의 한 장면. ⓒ MBC

 
윤설미는 교도소에 수감된 첫 날부터 사체를 운반중이던 우마차와 '도주는 자멸의 길이다"라는 살벌한 경고문구를 목격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윤설미가 수감된 감방에는 원룸 만한 크기에 100~15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2층에 걸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고. 생필품이 보급되지 않다 보니 사망한 수감자의 옷을 찢어서 휴지로 써야 했고, 위생과는 거리가 먼 감방 안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빈대가 우글우글했다.

수감된 여성들은 강제로 벌목을 해야했다. 수감자들은 극심한 배고픔을 견디기 위하여 뱀을 잡아먹거나 사람의 배설물을 먹고 자란 쥐를 잡아먹어야 했다. 수감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수감자들의 우두머리인 감방장으로, 실세인 그의 눈밖에 한번 나게 되면 목숨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윤설미가 감방에서 살아난 비법은 세치 혀였다. 윤설미는 감방장의 지시로 대한민국 노래를 불러야 했다. 북한에서는 대한민국을 우상화하는 금기되어 있기에 남한의 유행가들은 '썩은 노래'라는 은어로 불린다고. 윤설미는 '총맞은 것처럼'을 열창하는가하면, 북한에도 알려진 유명 드라마 <대장금>의 줄거리를 특유의 이야기 솜씨로 맛깔나게 재연하며 감방장과 죄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윤설미는 드라마 이야기를 한창 풀어놓다가 교도소 내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교도관에게 현장에서 적발 당하고 말았다. 북한에서는 교도소 내에서든 일반 사회에서든 '대한민국 드라마 유포죄'는 사형 처벌을 받는다고. 교도관이 한 걸음씩 자신에게 접근해오며 긴장감이 절정에 달한 대목에서, 윤설미는 절단신공 버튼을 눌렀다. MC들은 마치 "북한판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며 남다른 몰입감에 감탄했다.

박빙의 썰 대결 승부는 윤설미의 승리였다. 윤설미는 "10명중 3~4명만 살아나오는 교도소에서 많은 동료들을 보냈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언젠가 알리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혀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윤설미의 후일담이 공개됐다. 살벌한 표정으로 다가온 교도관이 건넨 말은 "그래서 대장금 그 에미나이는 어떻게 됐어?"였다. 윤설미의 반전의 뒷이야기를 전하며 교도관의 속사정을 전했다.
 
"북한은 계급사회라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다. 한 번 교도관이 되면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서 죄인들만 봐야 한다. 보안 문제로 교도소 외부 출입도 통제된다. 교도관들은 죄수들에게 '우리는 무기징역인데, 너희는 5년 뒤에 나가지 않느냐'고 한다"면서 "그래서 그들은 외부 사회가 너무 궁금했고, 정보에 목마른 것을 해소하려고 나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본래 죄수들의 도주 방지를 위하여 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하는 교도관들은, 윤설미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총을 나무에 걸어두고 윤설미 대신 노역을 해주기도 했다고. 교도관들도 번호에 따라 순환근무를 하기에 아무 때나 윤설미를 만날 수가 없었고, 모두가 그녀와의 만남을 고대했다. 윤설미는 "모두가 '윤썰미'를 만나기만 기다렸다. 주말 드라마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제 입에서 <대장금>은 300부작이 됐다 "고 너스레를 떨었다.
 
윤설미는 그렇게 세치혀로 버텨내며 5년의 지옥같았던 복역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윤설미는 "MBC 대장금 동무 이야기를 해서 살아남았는데, 신기하게 지금 MBC 무대에서 그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남다른 인연을 고백하며 훈훈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MC와 청중들은 감탄하며 파란만장한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그녀의 용기와 재치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 탈북 여성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북한의 또다른 이야기가 청중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세치혀 MBC 스토리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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