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번 시즌엔 건강문제로 아직 팀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현존하는 여자프로농구 최고의 선수는 단연 KB스타즈의 '국보센터' 박지수다. 2016-2017시즌에 데뷔해 프로에서 6시즌을 소화한 박지수는 두 번의 챔프전 우승을 달성했고 세 번의 정규리그 MVP에 선정됐다. 그리고 그 중 두 번은 기자단 투표에서 몰표를 받은 '만장일치 MVP'였을 만큼 박지수가 WKBL에서 보여준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외국인 선수 제도가 폐지됐던 지난 두 시즌에는 리그에 박지수를 제어할 선수가 없었다. 박지수는 지난 두 시즌 동안 득점과 리바운드, 2점 야투 부문 1위를 놓치지 않았고 윤덕주상(최고 공헌도)과 베스트 5, 정규리그 MVP까지 휩쓸었다. 박지수가 이탈한 이번 시즌 KB가 초반 7경기에서 1승6패의 부진에 빠진 것만 봐도 박지수가 KB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차지했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박지수의 이탈은 다른 선수들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박지수라는 '절대자'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나머지 선수들, 특히 박지수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하던 각 팀 센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베테랑 배혜윤은 득점(21.71점)과 공헌도(254.3점) 1위, 2점 야투 2위(60.2%), 리바운드 5위(7.57개)를 달리며 초반 최고의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긴 슛 거리와 넓은 시야로 주목 받은 센터
 
 20대 시절 여러 팀을 옮겨 다니던 배혜윤은 30대가 된 후에 비로소 전성기를 맞았다.

20대 시절 여러 팀을 옮겨 다니던 배혜윤은 30대가 된 후에 비로소 전성기를 맞았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지난 시즌이 끝난 후 강아정이 은퇴하면서 현재 2007년 신인 드래프트 출신 중에서 아직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는 김단비(우리은행 우리WON)와 배혜윤 밖에 없다. 숭의여고 출신의 배혜윤은 고교 시절 숭의여고를 전국대회 2관왕으로 이끌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강아정과 김단비 같은 포워드 자원에 밀려 전체 5순위로 신한은행 에스버드에 지명됐다가 곧바로 신세계 쿨캣으로 트레이드 됐다.

배혜윤은 루키 시즌 25경기에서 평균 17분27초를 소화하며 5.04득점 3.72리바운드의 준수한 활약으로 신인왕에 선정됐지만 양지희,허윤자 등 선배들에 밀려 2, 3년 차 시즌에는 긴 출전시간을 가져가지 못했다. 결국 배혜윤은 2010년 4월 트레이드를 통해 우리은행으로 이적했고 우리은행에서 두 시즌 연속 주전으로 활약하며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은행은 1할대 승률에 허덕이던 WKBL 최약체였다.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가 부임한 2012-2013 시즌 꼴찌에서 우승팀이 되는 기적을 연출했지만 외국인 선수 제도가 부활하면서 배혜윤은 졸지에 주전자리를 잃고 말았다. 2012-2013 시즌이 끝난 후 우리은행과의 계약에 실패하며 은퇴여부를 두고 방황하던 배혜윤은 2013년8월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생명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배혜윤에게 삼성생명은 '기회의 땅'이 됐다.

배혜윤은 삼성생명 이적 후 주전으로 꾸준히 기회를 얻었지만 배혜윤이 처음부터 삼성생명의 토종 에이스로 활약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삼성생명 이적 후 처음 다섯 시즌 동안 배혜윤이 두 자리 득점(10.14점)을 기록했던 시즌은 단 한 번(2016-2017 시즌)에 불과했다. 애초에 배혜윤은 외국인 선수들과 골 밑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하면서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득점을 올리는 터프한 유형의 센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배혜윤은 서른을 앞둔 2018-2019 시즌부터 생존을 위한 본격적인 변신을 시작했다. 힘든 몸싸움을 위해 억지로 골 밑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긴 슛 거리를 이용해 페인트존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중거리슛을 시도했다. 그리고 프로무대에서 쌓인 노하우를 통해 얻은 넓은 시야를 활용해 동료들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혜윤은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리그에서 주목 받는 센터로 도약했다.

박지수 없는 시즌에 득점-공헌도 1위 질주
 
 현재 WKBL 전체에서 경기당 평균 20득점 이상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배혜윤 밖에 없다.

현재 WKBL 전체에서 경기당 평균 20득점 이상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배혜윤 밖에 없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2017-2018 시즌 3.37개에 불과했던 평균 리바운드를 2019-2020 시즌 6.54개까지 늘린 배혜윤은 외국인 선수 제도가 폐지되자 더욱 적극적으로 골 밑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배혜윤은 힘보다는 위치선정과 요령으로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페인트존 득점의 비중을 늘렸다. 그리고 배혜윤이 14.59득점 7.31리바운드 4.24어시스트 1.28스틸을 기록한 2020-2021 시즌 삼성생명은 우리은행과 KB를 연파하며 15년 만에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생명은 2020-2021 시즌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후 챔프전 MVP 김한별(BNK 썸)을 트레이드하며 과감한 리빌딩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리빌딩 계획에 주장 배혜윤은 포함되지 않았다. 선수단이 대폭 젊어진 삼성생명은 2021-2022 시즌 6개 구단 중 5위에 머물렀지만 배혜윤은 26경기에 출전해 15.54득점(8위) 8.04리바운드(5위) 5.12어시스트(4위)를 기록하며 삼성생명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삼성생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WNBA 출신의 혼혈 선수 키아나 스미스를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하면서 더욱 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7경기에서 5승 2패를 기록하며 선두경쟁을 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에이스는 여전히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35세가 되는 베테랑 센터 배혜윤이다. 배혜윤은 이번 시즌 초반 득점과 공헌도 부문 1위, 2점 야투 2위, 리바운드 5위를 달리며 삼성생명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배혜윤은 지난 20일 KB와의 경기에서 박지수가 없는 KB의 골 밑을 휘저으며 무려 31득점을 퍼부었다. 이는 배혜윤의 프로 데뷔 후 최다득점 타이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또한 삼성생명의 시즌 첫 경기였던 지난 10월31일 하나원큐전에서는 19득점과 함께 16개의 리바운드를 걷어내면서 상당한 위력을 선보였다. 실제로 현재 리그에서 평균득점 20점을 넘기고 있는 선수는 배혜윤이 유일하다.

현재 삼성생명 선수단에서 1980년대에 태어난 선수는 1989년생 배혜윤이 유일하다. 그만큼 배혜윤은 팀의 맏언니로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동생들을 잘 이끌어 가야 한다. 그리고 배혜윤은 이번 시즌 팀의 주장으로서 뛰어난 리더십으로 삼성생명을 상위권으로 이끌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성적에서도 득점 1위를 포함해 주요 부문 상위권을 달리며 30대 중반의 나이에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낼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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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3개 부문 1위 배혜윤 신한은행 2022-2023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 블루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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