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터 포스터

영화 파이터 포스터 ⓒ 파이터

 
고향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향수(鄕愁)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생생해진다. 귀향을 인간의 절대적 가치라 부르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에는 해방과 6.25전쟁 이후 월남해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과 후손들이 수백만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탈북민도 포함된다. 실향민들의 염원은 이북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여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귀향'은 인간의 절대가치

영화 <파이터>는 탈북 여성의 대한민국 정착 과정을 다루고 있다. 함북에서 태어나 군 복무를 한 진아는 아버지와 함께 탈북했다. 아버지는 중국에 있으며 진아 혼자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친 진아는 거처를 마련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처음 갖지만 앞으로 살 것이 막막하다. 의지할 사람도 없다. 오빠뻘되는 먼저 탈북한 사람이 식당일을 주선하지만 적응이 녹록지 않다. 방을 소개한 부동산업자가 수작을 걸자 피한다는 것이 상대의 얼굴을 쳐 치료비부터 감당해야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중국공안원에게 잡혔다는 소식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큰 돈'을 벌기 위해 진아는 식당일에다 복싱체육관 청소도 맡았다. 하지만 체육관에서 인생의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찾아온다. 관장이 진아의 '운동끼'를 발견하고 복싱을 권유한 것이다.
 
이에 진아는 고민에 빠진다. 복싱 하려고 남한에 온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진아의 폐쇄된 심리와 남한사람에 대한 경계와 이해부족으로 소통하거나 대화하는 데 애로를 겪는다. 체육관 코치 태수는 진아의 괴로운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둘은 따뜻한 정을 느낀다.
 
복싱선수로서 세간의 관심을 받자 진아 엄마가 체육관을 찾는다. 엄마는 12년 전 가족을 두고 탈북해 새로운 남편과 딸을 뒀다. 모녀의 만남은 반가움이 아니라 갈등과 증오를 야기한다. 진아는 포옹하려는 엄마를 내치다 계단을 구르게 한다. 그럼에도 부상당한 엄마는 진아를 용서하고 복싱 도전을 응원한다.
 
반면, 복싱관장과 코치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는 진아가 꿈을 키우고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힘이 된다. 결국 진아는 '프로복싱'에 데뷔하면서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새로운 인생을 도전하는 스토리다.
 
탈북민이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이 된 지도 20여 년이 흘렀다. 최근 코로나 위기 등으로 몇 년간 입국하는 탈북민이 급격히 줄었지만 2022년 6월 현재 탈북민 수는 3만 3834명이다. 이들 중 남한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탈북민들에게 '롤모델'이 되거나 '희망전도사'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탈북과정의 충격과 고향과 가족과의 이별로 남한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탈북민에 대한 열린 태도가 통일 앞당겨
 
 영화 파이터 시네토크에서 인사하는 윤재호 감독

영화 파이터 시네토크에서 인사하는 윤재호 감독 ⓒ 이혁진

 
요즘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고 탈북민에 대한 선입견과 사회적 편견이 심하다. 사회통합은 탈북민의 노력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남한주민의 열린 태도와 자세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이터>는 이런 인식과 시각에서 만든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윤재호 감독은 시네토크에서 "배경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상태에서 상대 입장과 다양성을 이해하면 탈북민의 사회적응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남북통일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얘기다.
 
윤 감독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남북통일에 대해 낙관적이다.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20대 시절 프랑스 유학에서 시작됐다. 타국에서 외롭게 공부할 때 누군가 "우리 같이 이야기하자"는 말에 이끌려 탈북민 사회에 천착했다고 한다. 사소하지만 포용하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유학을 통해 소수이며 약자라는 다문화와 정체성 혼란이 생각보다 덜한 것에 감명받고 이러한 의식은 향후 우리 남한의 탈북민에 대한 인식에도 그대로 안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인구절벽을 실감하는 남한으로서는 통일 이데올로기를 떠나 탈북민 세대를 포용하는 분위기가 시급하다.
 
파이터를 영화제목으로 삼은 것에 대해 윤 감독은 "유학시절 룸메이트가 복싱을 취미로 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파이터는 탈북여성의 남한정착과 도전을 상징하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복싱'은 자신과의 싸움을, '사각링'은 사람 사는 조그만 세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윤 감독은 탈북민 후계세대의 꿈과 희망에 주목하고 있다. 2~3세들의 역할이 미래통일에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3부작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파이터>는 3부작 중 하나다.
 
탈북민의 자녀, 탈북여성과 한국남성 간 자녀, 한국여성과 탈북남성 간 자녀들의 정체성 나아가 제3국에 태어난 탈북민 후세들의 고민과 방황 등이 주요 테마다. 파이터의 진아는 몸은 자유를 찾았지만 가족을 떠난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딛고 삶에 도전하는 캐릭터다.
 
탈북민들도 우리 이웃이며 형제로서 같은 동포이다. 이들의 역량과 능력을 키우고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사회적응과 통합을 넘어 미래통일로 가는 길이다. 탈북민을 '먼저온 작은 통일'이라고 하는데 통일의 축소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점에서 진아의 성공적인 정착은 사회통합과 통일로 가는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파이터는 <통일과 만남> 후원으로 지난 17일 필름포럼에서 '통일과 영화, 그리고 영화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무료로 상영됐다. 참고로 영화 파이터는 2020년 25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수상작이다.
파이터 윤재호감독 남한적응 사회통합 통일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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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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