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의 염경엽 신임 LG 트윈스 감독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의 염경엽 신임 LG 트윈스 감독 ⓒ 연합뉴스

 
28년째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LG 트윈스가 선택한 다음 '우승청부사'는 염경엽이었다. 프로야구 LG 구단은 6일 공식 발표를 통해 "염경엽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장을 구단의 14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전했다. 계약기간은 3년 총액 21억이다.
 
염경엽 신임 감독은 광주제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2차 지명 2순위로 태평양 돌핀스에 지명하여 프로생활을 시작했고,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에서 2000년까지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선수 시절에는 전형적인 수비형 유격수로 활약했으며 안정된 수비력에 비하여 타격은빈약하여 KBO에서 15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중에서 통산 타율이 1할 9푼5리로 역대 최하위라는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염 감독은 오히려 은퇴 이후 프런트와 지도자로 다양한 경력을 거치며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친정팀인 현대에서 운영팀장과 2군 매니저, 수비코치를 역임했다. LG와도 이미 2008년부터 스카우트를 시작으로 운영팀- 수비코치 등을 거치며 3년간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현대를 인수하여 재창단한 히어로즈로 복귀하여 작전-주루코치를 거쳐 2012년 사령탑(당시는 넥센 히어로즈)으로 깜짝 발탁되며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염 감독은 당시만 해도 가을야구와 인연이 없던 히어로즈를 당시 첫 포스트시즌 진출(2013년)과 한국시리즈 진출(2014년, 준우승) 등으로 이끌며 구단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2017년에는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의 단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2018년 구단의 4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데이터 야구를 기반으로 한 치밀하고 합리적인 경기운영 능력으로 '염갈량'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SK 시절은 흑역사로 남았다. 2019년에는 SK의 사령탑으로 현장에 전격 복귀했으나 정규리그 막바지 충격적인 대역전극을 허용하여 두산에 1위를 내줬고, 포스트시즌에서는 친정팀 히어로즈에게 덜미를 잡히며 한국시리즈 진출조차 실패하며 체면을 구겼다.

더구나 이듬해 SK의 성적이 최하위권으로 추락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염 감독은 6월 25일 두산전에서는 경기 도중 실신해서 실려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두 번이나 건강 문제로 시즌 중 덕아웃을 비웠던 염 감독은 결국 그해 10월 자진 사퇴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로는 미국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연수 코치를 거쳤고, KBO 아카데미 디렉터와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경력을 반영하듯 지난해부터 감독과 단장이 공석이 된 팀들이 나올 때마다 염경엽의 이름이 종종 물망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이 LG 사령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LG는 최근 류지현 감독과 고심 끝에 재계약을 포기했다.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류 감독은 재임 2년간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며 정규시즌 159승, 승률 5할8푼5리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는 하위팀에게 2년 연속 업셋을 당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02년 이후 20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LG는 류지현 감독과 결별하고 변화를 선택했다.
 
LG는 당초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등 여러 유력 후보들이 물망에 올랐고, 염경엽 감독의 이름도 있었지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당초 LG는 염 감독 측에 2군 코디네이터직을 제안했지만 본인이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류 감독이 재계약 무산 소식이 알려진지 불과 이틀 만에 염경엽 감독이 돌연 급부상한 끝에 신임 사령탑으로 전격 발표되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염경엽 감독과 LG 사이에는 묘한 과거사가 있다. 염 감독에서 LG에서 프런트로 일하던 시절은 구단이 10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 실패(2003-2012)라는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던 시기였다. 프런트의 핵심 실무자인 운영팀장이었던 염 감독은 구단의 각종 정책과 쇄신작업을 앞장서서 실행해야하는 자리였지만 당시 바닥을 기던 LG의 성적과 이미지로 인해 비판의 중심에 놓였다.
 
염 감독이 프런트의 실세라는 설에서부터, 파벌을 조성하여 구단을 망쳤다는 흑막설까지, 각종 확인되지 않은 각종 루머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며 엄청난 마음고생을 해야했다. 염 감독이 프런트를 떠나 수비코치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염경엽 감독이 LG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한때는 LG 암흑기의 원흉처럼 거론되던 염 감독이 약 11년의 시간이 흘러 사령탑으로 금의환향하게 됐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염경엽 감독의 영입 소식을 들은 LG 팬들의 분위기는 의아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LG가 나름 좋은 성적을 올렸던 류지현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한 것은, 오로지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열망 외에는 설명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정작 염경엽 감독도 지도자로서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전무하다. 물론 2018년에 단장으로서 SK의 우승을 이끈 경험은 있지만 엄연히 감독과는 별개의 영역이다.
 
더구나 염 감독은 지장 이미지와 알려진 것과 별개로 단기전에 강했던 감독이 결코 아니다. 히어로즈와 SK를 거치며 가을야구에 총 5번 진출했지만 유일하게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2014년을 제외하면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하위팀에게 업셋(2013, 2019년)만 두 번이나 당했다. '가을야구 청부사'라면 몰라도 우승청부사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LG는 최근 10년간 7번이나 가을야구에 진출했으나 이 기간 한국시리즈 진출은 제로(0), 하위팀 상대 가을 업셋만 3번이나 당한 팀이다. 일부 LG팬들은 '이럴거면 왜 류지현을 보냈나'라며 의문을 표하고 있다. 
 
또한 염 감독은 이런저런 구설수도 많았던 편이었다. 일단 감독으로서는 앞서 설명한 단기전 운용능력을 비롯하여 투수 혹사 논란으로도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았다. 히어로즈 시절 데이터 야구를 한다는 이미지에 가려졌지만 오히려 염 감독은 감에 의존하는 작전구사나 높은 불펜-주전 의존도 등에서 오히려 올드스쿨에 더 가까운 타입이었고, 이러한 단점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 바로 2019년 후반-2020년까지 이어진 SK 시절의 부진이었다는 평가다. 염 감독 본인조차도 '자신의 SK 시절은 실패'였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전 소속 구단을 떠나는 모양새도 하나같지 좋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LG 1기 시절인 프런트와 코치 시절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당했다는 재평가도 나오지만, 히어로즈 시절 막바지에는 재계약과 이적 문제로 구단과 일년 내내 심각한 갈등을 빚으며 여론전을 펼쳤다. "인간의 도리상, SK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결국 SK 단장을 거쳐 감독까지 취임하며 '말바꾸기 논란'에 휘말린 일화도 유명하다.
 
SK 시절 역시 단장으로서는 몰라도, 감독으로서는 디펜딩 챔피언이던 팀을 하루아침에 몰락시키고 떠나버렸다는 이미지 때문에 그 뒤를 이은 현 SSG 팬들에게도 인식은 썩 좋지 않다. LG를 비롯해 그동안 염 감독이 거쳐간 팀들 중 팬덤 사이에서 우호적인 이미지로 남은 적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결코 간단히 볼 문제만은 아닌 것이, LG는 프로 10개구단 중에서도 팬덤의 목소리가 강한 편이고, 이는 지지층이 거의 없는 염 감독이 LG에서 조금만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올리거나 과정이 좋지 않아도 곧바로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K 시절 성적 부담과 팬들의 비판에 대한 스트레스를 못이겨 두 번이나 쓰러지는 아찔한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던 염 감독의 건강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물론 과거의 실패 경험이 지도자에게 있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프로 1세대 지도자인 김성근 감독은 OB(현 두산), 삼성, 쌍방울 등 여러 구단의 사령탑을 거치면서도 우승경력이 없다가 2007년 SK에서 첫 우승을 거두며 6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감독인생의 뒤늦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민감독' 김인식 감독은 "감독은 이겨야 하지만, 많이 지기도 해봐야 한다. 승리보다 패배에서 더 많이 느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지론을 펼친 바 있다.
 
염 감독은 히어로즈, SK에 이어 3번째 기회를 잡았다. 현재 프로야구 10개구단 사령탑을 통틀어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현대 야구에서 과거처럼 두 팀 이상을 넘나들며 감독경력을 오래 이어가는 지도자를 찾아보기기 힘들어진 시대다. 연차로 따져도 염 감독 다음으로 오랜 시간 프로팀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올해 4년 차인 이강철 kt 감독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 현장과 프런트를 넘나들며 꾸준히 여러 팀의 부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염 감독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염 감독이 이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어 지도자로서 더 진화한 야구를 보여줄수 있다면, 그만의 풍부한 연륜은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암흑기였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우승권 전력을 갖춘 팀이 된 LG와의 재회는 염 감독에게도 위기인 동시에, 명에회복을 위한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염 감독의 이전에 지휘봉을 2019년의 SK와 다가오는 2023년 LG의 공통점은, 모두 '윈나우', 즉 우승이라는 목표에 방점이 찍힌 팀이라는 것이다. 당시 SK에 전년도 챔피언으로 우승에 익숙한 팀이었다면, LG는 28년째 우승에 굶주린 팀이라는 차이는 있다. 우승을 못하면 무조건 실패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부담감은 마찬가지다. LG와 염 감독의 2번째 만남은 과연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염경엽 LG트윈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