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다양한 표정을 지닌다. 한 사람이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처럼 여러 가지의 표정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천의 얼굴'이라고 부른다. 각자의 삶에서 한계없는 도전을 이어가는 이들은 그만큼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다양한 얼굴을 지니게 된다.
 
10월 12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164회는 '천의 얼굴' 특집으로 배우 소지섭, 코미디언 겸 배우 문상훈, 영화 제작자 장원석, 지휘자 정나래가 오늘의 '자기님'으로 출연하여 자신의 걸어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부캐 부자' 문상훈은 1타강사 문쌤, 문이병, 문상 기자 등 출연작마다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극강의 '생활 연기'를 선보이며 < D.P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여러 화제작에서 씬스틸러로 열연한 넷플릭스 1위 보증수표로 불린다.
 
문상훈은 <우영우>에서 공연한 배우 박은빈과의 일화를 밝혔다. 다이어트중이었던 문상훈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고 알리지도 않았지만, 섬세한 박은빈만이 "살 빠지셨죠?"라고 알아봐줬다는 것. 박은빈은 "보이는 모습과 실제 풍기는 기운이 너무 달랐다. '진짜 부캐를 운영하시나?'라는 생각도 들었다"며 문상훈과의 일화를 회상했다.
 
문쌤 연기를 보고 실제 인터넷 강의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안까지 받았다는 문상훈은, 캐릭터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으로 "어떤 캐릭터가 행동을 할 때 '저한테도 있는 마음'이라는 공감대를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을 웃기는 걸 좋아했다는 문상훈은 군복무 시절에 진로를 고민하다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코미디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문상훈은 여기저기 영상과 포트폴리오를 보내다가 방송인 겸 작가 유병재를 찾아가서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코미디를 시작하게 됐다.
 
문상훈은 가족처럼 자신을 챙겨주는 동료인 유병재-유규선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내며 "제가 좋아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 하는 게 꿈"이라는 소박하면서도 진심어린 바람을 전했다. 이어 문상훈은 "코미디언은 보람을 주는 직업이다. 다른 사람들을 웃겼을 때 느끼는 기쁨이나 희열은 말초적인 행복"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내며 "누구를 웃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으로도 변함없고 싶다. 코미디를 오래오래 하고 싶고 잘 만든 시트콤을 만드는 게 최종 꿈"이라는 목표를 밝혔다.
 
27세에 제작실장으로 참여한 <왕의 남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왕의 남자> <범죄도시2> 등 '천만관객 영화'를 제작한 마이다스의 손 장원석 대표가 출연했다. 최근 개봉한 <범죄도시2>는 코로나 시대 이후 첫 천 만 관객 한국영화로 한국형 히어로물의 매력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장 대표는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라며 코로나 이후 붕괴 직전의 위기를 겪었던 한국 영화계로부터도 많은 응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주인공이었던 마동석에 대해서는 '아이디어 뱅크'라고 표현하며 "24시간도 아니고 26시간 영화만 생각한다. 새벽에도 연락해서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범죄도시>의 명대사인 '아직 싱글이야', '누가 5야?' 등 극중 코믹한 씬들은 대부분 마동석의 아이디어였다고.
 
<범죄도시2>의 빌런으로 활약한 손석구도 정 대표가 직접 캐스팅에 성공한 사례였다. 당시에도 손석구는 이미 라이징스타로 한창 부상중이었고, 때마침 영화 개봉 시기와 맞물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까지 대히트하며 그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정 대표는 현장에서 손석구의 별명이 '연구원'이었다고 밝히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소통하고 쉬는 날도 쉬지 않는다"며 마치 연구원처럼 캐릭터를 깊이 연구하고 작품에 몰입하는 그의 열정을 극찬했다.
 
장 대표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의 연출부 막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화의 길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굶지만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야"라는 의지로 버텨냈다고. 27세에 제작실장으로 참여한 <왕의 남자>로 첫 천만 관객 영화를 달성했을 때, 당시 주연배우였던 감우성이 흥행 비결 중 첫 번째로 영화를 최초로 기획한 정 대표의 공을 거론하며 크게 감동했다고.
 
장 대표는 대박 작품을 고르는 비결로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세대-직업을 망라하는 일반인 예비 관객들에 먼저 시나리오를 검증받는 시스템을 통하여 철저한 객관화 과정을 거쳐서 제작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 대표는 그럼에도 흥행 영화의 예측이 어렵다면서 "영화 역사에는 절대 강자가 없다. 그래서 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계속 반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제작자의 가장 중요한 일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여러 사람들의 작품에 담긴 염원이 제게는 큰 중압감"이라고 밝혔다. 공들여 준비한 영화가 개봉하는 것을 집앞에 소포가 온 것에 빗대어 "이게 폭탄인지 내가 바라는 선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조건 뜯어봐야 안다" 면서 개봉을 앞둔 제작자의 심경을 토로했다. 또한 장 대표의 영화가 흥행했다는 의미에 대하여 "돈은 곧 가치다. 기꺼이 볼 가치가 있으면 사람들은 돈을 쓴다. 관객이 지불한 가치 만큼 만족하는 영화,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가장 아름다운 아리랑'으로 독일 청소년 합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 지휘자 정나래가 다음 자기님으로 등장했다. 정나래가 지휘를 맡고 있는 합창단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대표 합창단으로 13~16세의 소년 소녀들로 구성되어있다. 성악을 전공했던 정나래는 독일 유학 중 합창에 관심이 생겨서 합창단 부지휘자로 경력을 시작했고, 아시아인으로 도르트문트 합창단 지휘자의 자리까지 올랐다.
 
정나래는 아이들에게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애국가 대신 아리랑을 배경음악으로 등장했던 장면을 보여주면서 아리랑의 의미를 설명했다. 역시 분단국가였다가 통일된 독일의 아이들에게 "우리가 아리랑 불러서 한국도 독일처럼 될 수 있게 바라주면 좋겠다"는 정나래의 이야기에 아이들도 흔쾌히 동참했다고.
 
정나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아이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듣는 분들도 감동을 받아야 하니까"라고 설명했다. 가사를 넘어 아리랑의 정서를 배운 아이들은 아름다운 무대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정나래는 사람들로부터 "아리랑을 들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꼭 사람의 인생 같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하며 "우리 나라의 역사가 궁금해졌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독일 한인회의 초청으로 독일 광복절 행사 공연을 했을 때는 1960년대 독일로 파견왔던 간호사-광부 출신 한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외국에서 아리랑을 듣다니"라며 감사의 인사를 받았던 일화를 전했다. 정나래는 "저는 그분들에게 감사했다. 그분들이 잘살아주셨기에 후세에 독일에 온 사람들이 '한국인은 성실하다', '믿음이 간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편으로 정나래는 외국인으로서 독일어가 모국어인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게 쉽지 않았다며 신뢰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유독 자신을 믿지 않던 한 학부모에게 정나래는 "내년까지만 시간을 달라, 그때까지 좋은 공연을 선보이지도 아이들의 애정도 얻지 못 한다면 제 발로 떠나겠다"고 약속한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부단한 노력 끝에 정나래는 점차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인정받고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정나래는 "진심은 언젠가 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잘해낼 거라 확신했다"고 회고하며 "이제는 아이들이 고맙게도 '나래는 가족'이라고 이야기해준다"라고 고백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없었다면 노래의 즐거움을 알지 못 했을 것"이라며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정나래가 이끄는 합창단은 최근 합창대회 1등으로 공식적인 주 대표 합창단의 자리에 올랐으며, 새로운 한국 노래로 '달아달아 밝은달아'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하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28년차 소간지가 '천천히 내려오고 싶은' 진짜 이유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명불허전 '소간지' 소지섭이 마지막 자기님으로 등장했다. 소지섭은 '천의 얼굴'특집이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저는 천 원짜리 얼굴 아니냐"라고 자진신고하여 웃음을 줬다. 소지섭은 천 원권 지폐의 주인공인 퇴계 이황을 닮은 얼굴로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소지섭은 연예게 데뷔 전 수영선수이자 수구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고3 때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수확하며 대학 진학이 확정됐던 소지섭은 쉬는 기간에 친구의 제안으로 우연히 응모했던 모델 선발대회에 합격하면서 인생의 진로가 바뀌었다. 당시 소지섭의 경쟁 상대가 바로 원빈과 송승헌이었다고.
 
놀랍게도 데뷔 당시만 해도 소지섭은 "연기하지 말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장동건, 한재석, 송승헌 등 쌍꺼풀 짙고 서구적인 미남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에 오디션에서 외모를 보자마자 "넌 안돼"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소지섭은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같은 화제작에 연거푸 출연하며 보란 듯이 배우로서 성공가도를 열었다. 특히 '미사폐인'들을 만들어내며 마니아 드라마의 원조가 된 <미사>에서 보여준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라는 명대사들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소지섭은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 영화 <영화는 영화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 등를 통하여 성공적인 복귀를 신고했고 연기에 대해서도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됐다. 2018년 <내 뒤에 테리우스>로는 데뷔 23년 만에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소지섭은 "초반에는 많이 불편했다. 시작했을 때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니었다.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서 불편한 사람이어서 주변에서도 연기를 오래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텨낸 이유에 대하여 "첫번 째 목적은 가장으로서 돈을 버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환경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했다. 그런게 지금도 조금 남아있다"고 고백했다. 책임감은 소지섭을 지탱한 원동력이었다.
 
소지섭은 본업 외에도 영화 투자, 힙합 앨범 발매 등 여러 분야에 도전했다. 소지섭은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보면서도 독립영화 수입 및 투자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하여 "제가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관객들에게도 좋은 영화를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덕분에 좋은 영화를 봤다'라는 이야기를 듣는게 가장 좋다"라고 설명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무려 9집까지 발매한 힙합 앨범에 대해서 주변의 반응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더라"고 솔직히 고백하면서도 "앨범을 낸 이유는 정확히 있다. 팬들을 만나는 공간에서 다른 분의 노래가 아닌 저만의 노래로 팬들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지섭의 의도와는 달리 "다른 분의 노래를 부를 땐 좋아하더니, 제 노래를 하니까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 자폭하며 노래 가사처럼 "제가 제 발등을 많이 찍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소지섭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소간지'라는 별명에 대하여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너무 좋고 사랑하는 별명이 됐다"고 고백했다. 별명을 의식하여 옷차림을 지나치게 신경쓰다가 오히려 마법사 패션 등 '괴랄한' 스타일이 나온 적이 많다는 흑역사도 공개됐다.
 
과거에 방송인 정선희의 소개로 홍진경과 소개팅을 한 적도 있다는 깜짝 에피소드도 소개됐다. 소지섭은 올리비아 핫세가 이상형이라고 밝혔는데 정선희가 뽀빠이의 여자친구 올리브로 착각하는 바람에 닮은 꼴인 홍진경을 소개시켜줬다고. 소지섭은 소개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뒤로 잘 기억이 안 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추전을 먹다가 통화가 연결된 홍진경은 소지섭에게 "왜 정선희 전화를 안 받으시냐. 선희 언니는 잘못이 없다. 제가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뒤늦은 진실을 고백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소지섭은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51을 꼽았다. "100%는 없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 49와 51은 2% 차이지만 승패를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51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자"는 자신의 철학을 전했다. 배우로서 자신의 직업 만족도에 대해서는 '50.1%'라면서 "50%를 넘겼지만 51%보다는 부족한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현재 소지섭의 최대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고. 소지섭은 유재석에게 "젊을 때는 시야가 좁은 경주마처럼 달려갔다면 나이가 들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오히려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냐?"고 질문했다. 유재석은 "저는 반대였다. 젊을 때는 많이 시야가 벌어져 있다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좁아졌다"고 답했다. 소지섭은 "28년 차가 되면서 새로운 게 없이 했던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라는 고민을 드러냈다.
 
소지섭은 앞으로의 목표로 "(정상에서) 최대한 천천히 내려가고 싶다"고 고백하며 그 이유로 "저로 인해서 같이 작품을 했던 배우나 감독님들이 잘됐으면 좋겠다. 제가 신인 감독들이랑 특히 많이 했다. 제가 좋은 기운을 나눠드리고 잘되는 모습을 봤을 때 굉징히 행복하다.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라는 마음을 밝혔다.

소지접은 2018년 대상 수상 소감 당시 "좋은 배우는 아직 잘모르겠다.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어록을 남긴 바 있다. 젊은 시절의 잘생긴 외모에만 기대던 청춘 스타를 넘어, 더 좋은 사람-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성찰했던 그 책임감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소지섭이라는 배우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일 것이다.
유퀴즈 소지섭 정나래 범죄도시 문상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