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멋진 아침>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멋진 아침>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1.
5년 전 남편과 사별한 산드라(레아 세이두 분)는 홀로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영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녀는 각종 회의에서 실시간 오디오 번역 일을 하는, 때로는 미군 참전용사들의 행사에서 연설을 번역하는 통역사로서의 삶도 갖고 있다. 남편을 떠나 보낸 이후 사랑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틈을 파고들며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클레망(멜빌 푸포 분)과의 관계도 그녀에겐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녀의 곁에는 치매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기억을 잃고 시력에 잘못된 정보를 보내는 시각 장애를 일으키는 벤슨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버지 키엔츨러(파스칼 그레고리 분)도 있다. 평생을 대학 교수로만 지내다 은퇴한 그의 곁에는 이제 전처가 된 아내(니콜 가르시아)가 아닌 5년 된 애인 레일라(페리아 델리바 분)가 있지만 여러 사정에 의해 산드라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2016), <베르히만 아일랜드>(2022) 등의 작품들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감각적이면서도 단순하게 표현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미아 한센-러브 감독. 그의 신작 <원 파인 모닝>은 그의 전작들이 가진 장점들을 그대로 이어받아 섬세하면서도 정교하게 한 인물의 삶을 파고 들고자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물으면서도 반대로 그를 위해 자신은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되묻는 방식이다. 이에 반응하며 자신만의 대답을 행동을 통해 드러내는 영화 속 인물의 모습은 그동안 감독이 보여준 것과 동일하다.

02.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산드라가 현재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 키엔츨러와 관련된 일이다. 병세가 점차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가족이 돌아가며 하루에 두 세번 관심을 쏟으면 되던 일이 이제는 부족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군가 전담하여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자신의 일과 생활도 이어가야 한다. 그의 오래된 애인 레일라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곁에 항상 머물고 있을 수는 없다.

대안은 시설의 돌봄을 받게 하는 것인데 그마저도 좋은 환경인 시설의 경우에는 가격이 비싸 아버지가 평생 모아 놓은 교직원 월급과 퇴직금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버지가 입원한다고 해서 끝나는 간단한 상황은 아니다. 시설에 들어간 뒤에도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처분을 비롯하여 그가 평생을 모아온, 그의 삶과도 같은 수많은 책을 처분할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집을 정리한다고 하면, 이 책들을 당장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도 큰 문제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멋진 아침>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멋진 아침>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자신의 직업적인 커리어를 유지하는 일과 딸 아이를 키우는 일에 아버지의 문제까지. 산드라에게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감정적인 부분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둔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자신의 삶에 새로운 사랑은 이제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도 같은 이유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모습이 다소 냉정하고 독립적인 것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부터 그녀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녀는 현재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하는 것은 그녀의 삶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면서부터다. 남편의 오랜 친구이자 이제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클레망(멜빌 푸포 분)이다.

그의 등장은 산드라에게 결정적인 문제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과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완전히 포기하고 있던 사랑의 영역마저 산드라의 관심을 요구해 오기 때문이다. 클레망이 아직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 역시 그녀의 삶을 갉아먹는 요소가 된다. 처음에야 반가운 재회에 이은 낭만적인 감정이지만, 이 감정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가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충족은 시킬 수 없는 문제가 되어 관계 속에 침전하기 시작한다. 사랑하지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는 남자와 이해하지만 자신의 자리가 계속해서 공허해 지고 마는 여자의 이야기로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산드라의 삶에는 불완전한 것들뿐이다. 그리고 불완전한 것들은 불안정하다. 그것이 포기하고 있던 사랑의 감정이 다시 시작되면서부터 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영화의 초반부에서와 달리 중반부와 후반부를 지나며 (공교롭게도) 산드라는 더 많은 감정적 시험에 놓이게 되고 훨씬 깊은 감정적 좌절을 느끼게 된다. 

04.
아버지와의 이혼으로 엄마마저 가정을 떠나고, 남편을 사고로 잃고, 어쩌면 아버지 키엔츨러의 존재는 산드라에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병으로 인해 그의 기억력이 점차 나빠지기 시작하고 홀로 생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만, 적어도 그가 산드라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때까지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아버지와의 관계 사이에서도, 클레망과의 관계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심리적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아버지가 자신을 만나러 온 산드라가 누구인지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애인 레일라만을 찾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드라의 일상은 병을 앓는 아버지와 아직 어리기만 한 딸, 재회에 이어 연인 관계로 발전한 클레망 사이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 어떤 관계에서도 산드라 자신의 존재는 전면에 내세워지거나 두드러지지 못한다. 언제나 누군가의 그늘, 누군가의 감정 아래에 놓이게 된다. 후반부에서 산드라의 수동적인 면모는 – 아버지의 상황에 모두 맞춰 움직여야 하고, 클레망의 연락을 기다리기만 하는 – 처음에 우리가 알고 있던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것과 분명히 다르다. 물론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어떤 면은 다소 이면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각각의 관계에서 두드러지는 배우 레아 세이두의 연기는 이를 지워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멋진 아침>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멋진 아침>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미아 한센 러브의 작품 속에서 언제나 눈에 띄었던 것은 문학과 고전에 대해 그녀 자신이 갖고 있는 존경과 사랑이었다. 어떤 작품에서는 영화의 중심에 놓여 소재로 활용되면서 직접적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또 다른 작품에서는 극중 인물들을 완성해내는 과정에서 문학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고전의 극이 그러하듯이, 모든 인물들의 행위에 감독의 온전한 의도가 녹아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하던 산드라가 딸에게 건네는 대사는 이번 영화의 핵심이 담긴 정수와도 같다.

"시설에 계시는 할아버지의 육체보다 서재와 책에서 그 존재가 더 크게 느껴져. 육체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고 책은 그의 영혼에 더 가까우니까. 물론 책이 할아버지 그 자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책들은 할아버지가 살아 생전에 직접 선택한 것들이고 고른 것들이니까."

감독은 이번 작품을 두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쩌면 이 작품이 전작 <다가오는 것들>의 '리버스 숏'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 <어느 멋진 아침>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다. 물론 이 영화의 이야기는 분명히 산드라의 것이지만, 그녀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던 아버지라는 이름의 크기를 생각하자면 어떤 말인지도 알 것 같다.

06.
영화의 처음에서 산드라의 할머니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묘한 말을 남긴다. 영화가 끝나고 새삼 그 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우리 모두의 삶, 현재는 과거의 어떤 지점과 비교 하느냐에 따라 또 어떤 기준의 소망과 견주어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갖게 된다. 대상이나 시점과 무관하게 비교가 되는 순간 좋은 시기와 나쁜 시기라는 흑백의 판단 속에 갇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극중 산드라의 삶은 지금은 어떻게 판단될 수 있을까? 점차 나빠지기만 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꾀병을 부리는 딸, 결국 마음을 내어 주고만 유부남까지. 최악이라고 이야기해야 이 상황이 정확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 정말로 그렇다면 그녀에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이란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금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간에 삶은 어떻게든 지속된다. 그리고 그렇게 지속된 삶은 또 한번 나빠지기도 나아지기도 하며 다시금 나아간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산드라는 행복해 보였다고 믿는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랬으리라 믿는다.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도록 하라던 할머니의 말씀에는 그런 뜻이 담겨있었던 게 아닐까? 짧지만 매일 반복해서 돌아오는 아침을 멋지다고 표현한 이 영화의 타이틀 <어느 멋진 아침>, One fine morning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어느멋진아침 레아세이두 미안한센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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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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