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현재 세계의 패권국이자, 자유진영을 대표하여 민주주의 체제와 질서를 보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미국에게는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오히려 전 세계에서 발생한 수많은 쿠데타, 내전, 독재정권의 배후세력이 되기도 했던 모순의 역사가 공존하다. 그리고 차마 대놓고 드러낼 수 없었던 미국의 어둡고 추악한 '공작'을 음지에서 주도했던 조직이 바로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 미국 중앙정보국)이다.
 
9월 20일 방송된 tvN 역사예능 <벌거벗은 세계사> 65회에서는 'CIA의 충격적인 라틴아메리카 비밀 공작'편을 방송하여 세계 최강국 미국과 국제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했다.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 전문가인 박구병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라틴아메리카 쿠데타의 배후 CIA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라틴아메리카는 우리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오늘날 세계의 중요한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20세기는 거대한 음모와 비극적 사건들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역사를 품고 있다.
 
193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거듭된 군부 쿠데타와 내전의 연속으로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계속됐다. 그런데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쿠데타의 배후에 항상 CIA가 있었다는 것이다.
 
CIA는 미국의 대표 정보기관으로 세계 최고-최대수준의 기술과 첩보능력을 자랑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정보 수집과 특수 공작을 담당하며 사실상 세계의 정보를 틀어쥔 '비밀공작의 본산'으로도 꼽힌다.
 
그간 철저히 비밀에 싸여왔기에 현실보다는 음모론 위주로 취급되던 CIA의 존재는 1960년대부터 도입된 정보공개법과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요구에 힘입어 CIA의 비밀문서가 해제되기 시작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CIA는 전 세계를 상대로 비밀공작을 단행했고 그 과정에서 쿠데타, 마약거래, 민간인 고문과 살해 등 온갖 불법적이고 추악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 폭로됐다.

CIA는 1942년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의 승리를 위해 설립된 전략사무국(OSS)을 이어받아,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정식으로 창설됐다. 트루먼은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을 통하여 2차대전 종전 이후 냉전 시대에 돌입하며 전 세계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임했다.
 
미국이 1950년에 작성한 냉전 정책 관련 기밀문서 NCS-68에 따르면 "미국이 소련에 패배하면 미국만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 만평에서는 소련에 점령 당한 미국에서 군인들에게 학살당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그만큼 당시 냉전시대의 미국이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레드 콤플렉스(적색 공포)가 극심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하여 정보와 공작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CIA였다. 미국은 정부와 군부마다 각기 많은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었고, CIA의 국장은 미국내 모든 정보기관을 아우르는 수장이자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냉전시대 CIA의 주임무는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 지리적으로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불린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안보와 직별된 중요한 지역으로 꼽혔다. 미국은 1947년 라틴아메리카 주요 국가들과 리우 협약(미주 상호 원조 협약)을 맺고, '아메리카 국가들이 내부 혹은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아메리카 전체가 위협 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반격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이후로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 CIA의 첫 비밀공작 대상이 된 최초의 국가는 과테말라였다. 미국의 대형 과일기업인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과테말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서 생산한 바나나를 세계시장에 팔아 막대한 이윤을 누렸다. 과테말라의 토지개혁을 추진하던 당시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 대통령은 프루프 컴퍼니와 갈등을 빚었다.

이를 지켜보던 미국은 아르벤스의 정책을 보고 그가 공산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며 소련과 결탁하여 반미 정책을 추구한다는 의심을 품고 아르벤스 정부를 전복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를 주도한 것이 핵심 3인방으로 꼽히는 것이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앨런 덜레스 CIA 국장,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부 장관이다. 앨런과 존 덜레스는 형제 지간이었고, 프루트 컴퍼니의 파트너 회사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CIA는 군장교이자 친미인사인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라는 인물 내세워 반군 세력을 결성하고 무장과 훈련을 지원했다. CIA는 '해방의 소리'라는 반공선전을 표방한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 아르벤스 정권을 공산주의자이자 소련의 꼭두각시로 매도하고, 아르마스 반군은 민주주의와 정의의 편으로 미화하며 쿠데타를 선동했다.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정부가 무기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결국 아르벤스는 미국의 영향권 밖에 있는 체코에서 무기를 수입해야 했고 이를 포착한 CIA는 "공산주의가 과테말라에 침투한 근거"라는 선전에 이용했다.
 
1954년 6월 18일, CIA의 지원속에 아르마스의 반군이 결국 과테말라를 침공했다. 손발이 묶인 아르벤스는 결국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하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정권을 잡은 아르마스는 공산주의 색출이라는 명분으로 반대파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아르벤스 정부의 개혁 정책은 전면 폐지됐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만평에서는 아르마스가 존 덜레스 국무부 장관과 악수하고 그 뒤에는 앨런 덜레스 CIA국장이 서 있으며, 아이젠하워의 얼굴이 새겨진 폭탄이 가운데 위치해 있다. 미국 핵심 인사들의 모습을 통하여 과테말라 정권교체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풍자한 것이다.
 
하지만 아르마스는 불과 3년 만에 암살되었고, 이후 과테말라는 1960년부터 1996년까지 지주들을 포함한 군부세력과 게릴라 집단이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내전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2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150만 명 이상의 이주민이 발생했다.
 
CIA의 다음 목표가 된 쿠바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과테말라의 정권교체로 CIA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정치개입과 비밀공작에 한층 자신감을 얻게 됐다. CIA의 다음 목표가 된 쿠바는 본래 친미국가였으나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베라가 1959년 쿠데타로 독재정부를 무너뜨리면서 반미국가로 돌아선다.

미국은 1961년 4월 덜레스 CIA 국장의 주도하에 반카스트로파로 구성된 쿠바 망명인 세력을 모아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자파타 작전(쿠바 상륙작전)'을 실행했다. 그러나 이를 사전에 눈치챈 카스트로의 반격으로 쿠데타는 처참하게 실패했고, 오히려 쿠바가 소련과의 동맹까지 맺게 되면서 당시 존F 케네디 대통령은 덜레스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CIA의 라틴아메리카 비밀공작의 역사는 계속됐다. 브라질, 영국령 가이아나 등 여러 나라들이 CIA의 공작으로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정권이 교체됐다. 그 후유증으로 다당제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잡은 미국과 북미 지역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는 공산주의 국가는 없었지만 대신 친미 독재국가들이 대거 들어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1960년대는 CIA 공작의 전성기로 꼽힌다.
 
1970년대에는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이끄는 칠레가 CIA의 새로운 타깃으로 떠올랐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린 아옌데는, 경제적 착취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강조하며 칠레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은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리처드 헬름스 CIA 국장의 주도로 CIA가 '퓨벨트' 프로젝트를 통하여 칠레의 경제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를 꾸민다. 1973년 CIA의 후원을 받은 당시 참모총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결국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켰다.
 
아옌데는 도주하거나 망명하는 대신 대통령궁에서 마지막 국영 라디오 방송 연설을 통하여 "저들은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지만 어떤 범죄행위와 무력으로도 사회의 진보를 막을 수 없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그 역사는 국민들이 만들어간다. 칠레여 영원하라. 국민들이여 영원하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 연설은 아옌데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고 그는 얼마 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다. 이로서 칠레의 사회주의 정부는 3년 만에 막을 내렸다.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피노체트는 이후 17년간 칠레를 철권통치하며 잔혹한 독재자로 등극했다. 피노체트 집권기간 살해 당한 칠레 국민의 숫자만 3200여 명, 고문당한 이들은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훗날 공개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통화 내용에는 칠레의 쿠데타 성공을 자축하며 아옌데 정권을 공산주의자로 폄하하고 조롱하는 표현들을 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자신들의 초래한 타국의 비극에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합리화하는 두 사람의 소름끼치는 모습은 마치 할리우드 범죄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간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닉슨은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몰락하는데, 당시 불법도청에 동원된 것이 FBI나 CIA 출신 요원들, 그리고 자파타 작전의 가담자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1974년 닉슨은 결국 불명예스럽게 사임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CIA의 활동도 한동안 크게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왜곡된 권력의 사유화와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마약과 테러 조직 후원한 미국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1980년대 레이건 정권의 출범과 함께 CIA는 다시 부활한다. 레이건은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막강한 정보력과 비밀공작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갖춘 CIA에 다시 힘을 실어줬다. 니카라과의 1979년 쿠데타로 사회주의를 표방한 산디니스타 정권이 들어서면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12월, CIA 주도로 니카라과에 대한 비밀공작을 추진하는 기밀문서를 승인한다.
 
CIA는 반군단체 콘트라를 후원하여 산디니스타 정부에 맞섰다. 콘트라는 친정부 세력으로 의심되는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대량학살하는가 하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마약사업에까지 진출하는 등 여러 가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미국 정부는 이를 알고도 콘트라를 사실상 묵인했다.
 
심지어 콘트라는 라틴아메리카에 마약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미국에 코카인을 밀반입하여 유행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레이건이 공공연하게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뒤에서는 마약과 테러 조직을 후원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다.
 
보수주의자에 반공주의자였던 레이건의 본심은, 마약보다 공산주의를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미 의회는 레이건의 콘트라 후원 정책에 제동을 걸려고 했지만, 레이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레이건은 방송출연과 캠페인을 통하여 콘트라를 "자유의 투사",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같은 존재"라고 미화하며 후원을 독려했다. 1986년에는 결국 레이건의 의지 대로 콘트라에 대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법이 미 의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같은해 11월, 레바논의 한 신문사인 <아쉬 시라>의 보도를 통하여 "미국이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판 돈으로 콘트라를 후원한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 정부는 30여 명의 민간인이 헤즈볼라군에 생포된 사건을 계기로, 인질석방을 위하여 헤즈볼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란에게 접근한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었던 이란은 미국에 무기판매를 조건으로 제시했고 레이건은 이를 수락했다.

이는 레이건이 "테러국가와 협상은 없다"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고 이란에 무기를 지원했으며, 여기서 얻은 자금이 다시 콘트라 반군에게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란-콘트라 게이트다.
 
레이건은 이 사건으로 한때 탄핵위기까지 몰렸으나 "자신은 모르게 수행한 활동"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고, 결정적 증거가 밝혀지지 않아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정직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잃고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레이건은 그럼에도 여전히 니카라과에 대한 공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산디니스타 정권을 반대하는 정당 및 시민단체들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원조기금이라는 명목하에 450만 달러를 지원했다.

1990년 산디니스타 정권의 정적인 비올레타 차모로가 니카라과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비로소 레이건 정권과 CIA의 집요한 비밀공작은 막을 내렸다. 또한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반공을 명분으로 했던 CIA의 비밀공작 규모도 크게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니카라과를 비롯하여 CIA가 개입했던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후로도 정치적 혼란속에서 사회 성장이 늦어지면서 많은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CIA의 공작은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체제로부터 민주주의 질서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실체는 오로지 미국의 국익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정치공작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발전에 큰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핵물리학자 조지프 로트블렛은 "냉전은 끝났지만 냉전적 사고는 살아남는다"는 어록을 남겼다. 21세기 현대사회가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은 미국의 역할과 지나간 역사가 주는 교훈은 지금 우리에게 생각해볼 여운을 남긴다.
CIA 라틴아메리카 냉전 반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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