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지시하는 김남일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김남일 성남FC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작전 지시하는 김남일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김남일 성남FC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를 풍미한 레전드 스타에게도 '감독'의 무게는 버거웠다. 프로축구 성남 FC의 김남일 감독이 8월 24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김 감독은 구단을 통하여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은 김 감독 체제에서 현재 K리그1 최하위인 12위(승점 18, 4승 6무 17패)에 그치며 다이렉트 강등위기에 몰려있다. 김 감독이 물러난 성남은 당분간 정경호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 예정이다.

김남일 감독은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축구의 전설이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상대 에이스들을 꽁꽁 묶는 빗장수비로 4강신화에 기여하며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가대표 주장으로도 오랫동안 활약하며 월드컵 본선 3회, A매치 98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클럽무대에서는 K리그 전남-수원-인천-전북, 네덜란드(엑셀시오르)와 러시아(톰 톰스크), 일본(비셀 고베, 교토) 등 해외무대도 다수 경험했다. 특유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카리스마와 상남자 이미지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은퇴후에는 중국 장쑤 쑤닝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2018 러시아월드컵을 경험했으며 K리그 전남 드래곤즈를 거쳤다. 그리고 2019년 12월에는 성남FC의 지휘봉을 잡고 마침내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이루지 못한 '버터타카'의 꿈

"'빠따가 아니라 버터같은 축구를 하겠다." 김남일 감독이 성남 지휘봉을 잡고 첫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포부다. 사실 김남일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강성 이미지가 뚜렷했다. 김 감독은 2017년 7월 당시 감독교체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빠져있던 대표팀 코치직에 취임하면서 "선수들이 간절함이 부족하다. 마음 같아서는 빠따(방망이, 구타나 기합을 의미하는 은어)라도 치고 싶은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라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물론 문맥상 진짜 내용은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 가까웠고, 김 감독 본인도 "그땐 답답해서 한 소리였다"고 해명했지만, 오해의 여지가 있었던 경솔한 발언이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많은 팬들의 반응도 웬지 '김남일이라면 진짜로 빠따타카를 하고도 남을 것 같다'는 게 그의 대중적 이미지였다. 김 감독은 당시 발언에 대하여 후회와 반성의 속내를 내비치며, 라임이 비슷한 '버터'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던 것.

실제로 김남일 감독은 성남에서 재임기간 내내 자신의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는 진중한 이미지가 돋보였지만, 함께했던 선수들이나 코치진, 프런트, 팬들 사이에서는 겉보기와 달리, 권위보다는 편안하고 친근한 소통을 강조하며 외강내유-겉바속촉의 버터 리더십으로 다가갔다는 평가다.
 
김 감독만의 스타성과 흡인력은 선수들을 성남으로 이끄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성남을 거쳐간, 나상호, 권경원, 권완규, 김민혁, 마상훈 등은 모두 김 감독이 직접 나서서 선수와 구단을 설득하고 영입이나 재계약을 주도한 선수들이다. 이적 조건을 저울질하다가 김 감독의 설득에 마음을 돌린 선수들도 있었다.
 
또한 김 감독은 재임기간 국내-외국인 선수들을 막론하고 지도방식이나 리더십을 둘러싼 트러블이 전혀 없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강한 이미지로 알려졌던 김 감독이 오히려 다른 지도자들보다 훨씬 부드럽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간적인 매력을 두고 '김남일표 페로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김남일호의 시작은 좋았다.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늦었던 2020시즌 5월, 김 감독이 이끄는 성남은 1라운드 광주전 2대 0 승리로 감독 데뷔전에서 첫 승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4경기 무패행진(2승 2무)을 달렸다. 김 감독은 정식 감독 데뷔와 동시에 K리그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디에고 시메오네(아르헨티나)를 연상시키는 김남일 감독 특유의 '올블랙' 패션도 화제가 되며 '남메오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버터타카의 꿈은 이루어지 않았다. 성남은 오래가지 않아 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2020시즌(승점 28, 7승 7무 13패)과 2021시즌(승점 44, 11승 11무 16패)을 연이어 10위로 마감했다. 김남일 감독이 첫 목표로 제시했던 상위스플릿 진출에 실패했고, 두 시즌 연속 치열한 승강전쟁 끝에 간신히 1부리그에서 살아남는 데 만족해야했다. 심지어 2022시즌에는 초반부터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추락하며, 달콤한 버터축구는 고사하고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초보 감독' 김남일에게 어려웠던 환경

김남일 감독에게는 내내 운이 따르지 않았다. 성남은 K리그 우승 7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의 빛나는 역사를 지닌 명문팀이지만, 2010년 이후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면서 김 감독이 부임할 무렵에는 이미 과거의 영광은 추억이 된 지 오래였다. 성남의 라인업에는 현재 국가대표급 선수를 찾아보기가 어렵고, 외국인 선수들 역시 평범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성남 선수단의 몸값은 약 60억으로 K리그1 12개 구단 중 11위에 불과했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전 구단주였던 이재명 전 성남시장 시절의 후원금 유용의혹으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신상진 현 시장은 성남FC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구단 매각설과 연고지 이전설에 불을 붙이는 등 팀 분위기도 이래저래 어수선했다.

냉정히 말해 지금의 성남은 이름값 있는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비선호 팀으로 꼽힐 만큼 위상이 떨어졌다. '초보 감독' 김남일에게는 하나에서 열까지 어려운 환경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구단의 대내외적인 상황과는 별개로, 김남일 감독 역시 기대에 못 미친 부분이 많았다. 성남구단의 투자가 다른 빅클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첫 시즌을 제외하면 2021년과 2022년은 어느 정도 김 감독이 원하는 선수들을 데려오며 지원을 해준 편이었다. 하지만 팀성적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곤두박질쳤고, 전술이나 조직력 면에서도 팀이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김 감독의 한계였다.
 
김남일호의 색깔은 이른바 선수비 후역습 축구로 요약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방에서의 압박이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져서 2, 3선과의 간격이 벌어지고 측면 공간 허용에 의하여 실점을 내주는 빈도가 높았다. 정작 공격은 정교한 패턴없이 선수들의 개인기량에 의존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2021시즌 공격의 핵으로 활약한 뮬리치가 부진하자 곧바로 팀공격력 전체가 추락한 올시즌이 대표적이다.
 
김남일 체제에서 빈공은 성남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2020시즌 27경기 24골-2021시즌에도 38경기 34골로 경기당 1골도 제대로 넣지 못했다. 2022시즌도 27경기에서 25골을 넣는 동안 실점은 두 배가 넘는 53골을 내줬다.
 
성남 다음으로 많은 실점을 내준 수원FC(44실점)보다도 9골이나 더 내줬다. 그나마 수원FC는 다득점(43골)이라도 터뜨렸기에 득실마진은 -1에 불과하다. 성남과 리그 최소득점을 기록한 수원 삼성(25득점, 33실점)의 득실마진이 -8로 바로 성남(-2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데 무려 20골이나 차이가 난다.
 
한마디로 공격과 수비도 안 되는 성남이 올시즌 왜 압도적인 꼴찌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최근 경기에서는 사실상 역습마저 실종되며 중하위권 팀들을 상대로도 승리는 고사하고 그저 지지 않는 데 치중하는 텐백축구로 버티다가 결국 무너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김 감독은 이미 지난 5월에도 성적부진으로 사퇴의사를 보였다가 구단의 만류로 반려한 바 있다. 성남은 25~26라운드에서 인천과 제주를 상대로 모처럼의 연승을 거두며 잠시 반등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8월 들어 승강권 경쟁팀이라고 할 수 있던 김천과 수원에 연이어 3골차로 대패한 것이 치명타였다. 성적이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팬들의 비난 여론까지 높아지자 김 감독은 결국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감독의 사퇴가 성남의 분위기 반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성남은 1부리그 생존권인 9위 수원 삼성(승점 30점)과는 무려 12점차이고, 불과 한 계단 위인 김천과도 8점차나 된다. 아직 하위스플릿에서 파이널라운드가 남아있지만 이대로라면 다이렉트 강등은 확정적이다. 여기에 구단 매각설까지 터지면서 선수단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가운데, 감독이 물러난다는 것이 어떤 동기부여가 될지 의문이다.
 
성남은 팀의 1부 승격을 이끌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어가던 남기일 전 감독과 결별한 이후, 스타성과 이름값을 믿고 검증되지 않은 초보 김남일 감독을 선택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감독보다도 장기적인 구단의 운영전략 부재와 소극적인 투자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김남일 감독도 아직 사령탑으로서 여러모로 경험 미숙을 드러냈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심판판정에 강하게 항의해 퇴장을 당해서 팀을 난처하게 하거나, 섣부르게 감독직을 걸고 사퇴-반려-다시 사퇴를 거듭하는 등 감정적인 행보도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도 아직은 젊고 지도자로서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는 김남일 감독이기에 성남FC에서의 실패를 거울로 삼는다면 언젠가 더 성숙한 지도자가 되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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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성남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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