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을 마친 한국 축구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 등 선수단이 2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2.7.28

일본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을 마친 한국 축구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 등 선수단이 2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2.7.28 ⓒ 연합뉴스

 
앞으로 한국축구가 월드컵으로 가는 길이 한결 편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편해진다는 것이 곧 '좋아진다'는 의미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선을 통과하는게 수월해질수록 그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본선에서의 성과에 대한 요구는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6년 캐나다·멕시코·미국에서 공동으로 개최되는 아메리카 월드컵부터 본선 출전국을 32개국으로 48개국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아시아에 주어지는 월드컵 진출 티켓은 기존 4.5장에서 8.5장으로 두 배 가까이 대폭 늘어난다.
 
여기에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지난 1일 다음 대회부터 적용될 아시아 지역 월드컵 예선의 새로운 방식을 공개했다. 아시아 예선은 먼저 FIFA 랭킹 아시아 26∼47위인 22개 팀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맞붙어 11개 팀을 가리는 1차 예선으로 시작된다.
 
한국은 아시아 1~25위 팀들이 출전하는 2차 예선부터 참가한다. 36개팀이 4팀씩 9개 조로 편성돼 조별리그(홈앤 어웨이)를 거쳐 각 조 상위 두 팀은 최종예선 진출과 함께 2027 AFC 아시안컵 본선진출권도 획득한다. 최종예선에서는 총 18팀이 3개 조로 나뉘어 경쟁하며 각 조 1~2위가 월드컵으로 직행하고 3~4위가 플레이오프를 통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얻는다.
 
한국은 이미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이번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 10회 연속 본선에 진출한 단골손님이다. 아시아에서는 최다출전(11회)이자 세계축구를 통틀어도 두 자릿수 연속 출전 기록은 브라질(22회), 독일(18회), 이탈리아(14회), 아르헨티나(13회), 스페인(12회) 등에 이어 6번째다. 여기에 월드컵 참가국 확대와 예선방식의 변화는, 대한민국같은 아시아 전통의 축구 강국들에게는 사실상 월드컵 본선을 향하는 길이 한층 넓어졌다는 의미가 된다.

아시아는 유럽이나 남미에 비하여 축구 강국이 많지 않다. 아프리카만큼 참가국이 워낙 많고 팀간 전력이 평준화되어 변수가 많은 편도 아니다. 최근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이란, 호주 등은 최근 몇 대회 연속으로 이변 없이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전통 강호들의 본선티켓 독점 현상이 두드러진 지역이다.
 
예선방식이 변경되면서 FIFA 랭킹상 한국같은 강팀들은 '톱시드'를 놓고 경쟁할 것이 유력시된다. 톱시드에 들어가면 최종예선에서 이란, 일본, 호주 등과 같은 조에서 만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든다. 톱시드를 얻지 못한다 해도 최종예선이 3개조로 늘어나면서 강팀들이 분산된만큼 한국이 어지간한 이변이 없는 이상 조 3위 이하까지 밀려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설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4위 이내에만 들면 플레이오프라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다.
 
물론 변화가 한국에 마냥 유리하기만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 이란, 일본, 호주 등 이른바 아시아 4강 중 톱시드에 떨어진 한 팀과 같은 조에 배정될 경우, '죽음의 조'가 탄생할수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월드컵 예선에서 자주 만난 이란에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였고, 최근 10년간의 A매치 전적을 보면 라이벌 일본에게도 2승 1무 4패로 열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식 축구를 구사하는 호주와는 AFC 편입 이후 월드컵 예선에서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등 전력 차와 별개로 상성에서 여러 차례 한국축구를 괴롭혔던 다크호스들이 존재한다. 아시아축구도 최근 상향평준화 조짐이 뚜렷한 것을 감안하면, 월드컵으로 가는 문이 넓어졌다고 무조건 낙관할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또한 한국축구의 월드컵 본선행 여부와 별개로 축구팬들이 우려하는 대목은, 경쟁력 약화로 인한 월드컵 수준의 질적인 하락이다. 아직은 팀간 전력차가 큰 아시아에서 출전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면, 그동안 전통 강호들에게 막혀 월드컵 무대를 밟아볼 기회가 없었던 중국이나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같은 중하위권 팀들에게는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월드컵 확대로 수준이 떨어지는 팀들이 올라오게 되면, 자연히 경쟁구도가 퇴색되며 긴장감이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시아 라이벌간 최대의 빅매치로 꼽히는 한일전이나, 한국-이란전같은 대결을 월드컵 예선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아시아팀들이 월드컵이 아니면 타대륙의 강호들과 접할수 있는 기회도 많지않은 상황에서, 지역 내 강팀들과의 경쟁마저 사라지게 된다면 대표팀 전력 강화나 A매치 흥행에도 그만큼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유럽-남미의 우승후보들이 대거 등장하는 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 2-3류팀과 만났을 때 큰 점수차의 일방적인 승부나 졸전이 속출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축구에게 월드컵 방식의 변화가 주는 진정한 의미란, 오히려 '본선 성적'에 대한 기대치는 더 높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 축구는 이미 월드컵 단골손님이 되면서 48개국 출전국 확대가 논의되기 훨씬 이전부터 '예선통과' 자체의 의미는 줄어든 상태였다.
 
과거에는 월드컵에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으로 인정 받았다면, 본선경험이 점점 늘어나면서 팬들의 눈높이가 점점 높아졌다. 이제는 월드컵 본선은 '당연히 나가야할 무대', 예선은 '본선을 위하여 거쳐가야 할 과정' 정도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익숙해졌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이끌었던 허정무 감독은 최종예선을 무패로 통과하고 본선 최초의 원정 16강이라는 성과를 일궈내고도 일부 팬들로부터 기대보다 성적이 못 미쳤다며 평가절하를 당한 바 있다.

길이 넓고 편안해진 만큼, 눈도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한국축구가 월드컵 예선을 아무리 좋은 성적으로 무난히 통과한다고 할지라도, 본선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인정받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또한 A매치 성적을 통하여 이루어진 대표팀의 피파랭킹 관리나 협회의 비즈니스 마케팅에도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축구에게는 절대 꽃길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결코 쉽지만은 않을 새로운 도전을 각오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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