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티비 <파친코>포스터

애플티비 <파친코>포스터 ⓒ 애플티비

 
삶은 순간이라고, 종종 과거는 잊고 오늘을 살라고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원작 소설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시작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쳤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불운 속에 태어났지만, 삶은 오늘의 내가 바꾸기 나름이라는 긍정의 의미일까. 한편으로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로 치부하는 것 같은 뉘앙스의 문장이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역사는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살아 꿈틀대며 현재와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제대로 된 삶을 위한 출발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어필하는 것 같았다. 나의 뿌리와 역사를 잊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선자(윤여정 분)의 손자 솔로몬 백(진 하 분)은 미국 땅에서 활동하는 자본가답게 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러다 할머니 선자와 호텔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알박기 한 어느 자이니치(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할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축이 틀어진다. 두 할머니의 만남은 솔로몬이 자이니치 할머니를 설득해 집을 매입하기 위해서 선자에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설득을 좀 해주세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이제는 자식들과 미래를 보고 살아가도록 해주세요. 마치 할머니가 그런 것처럼. 그러나 할머니 선자는 미래지향적이었지만 자신의 어둡고 습한 과거와 삐쩍말랐다가 다시 푸른 열매를 영글었던 뿌리를 잊지 않았다.

그 계기로 솔로몬의 삶이 바뀐다. 위로 올라가기만 하던 삶이 옆으로 확장하기 시작한다. 뿌리를 잊고 살던 그는 비행을 멈추고 착륙한다. 찢기고 갈라진 순간의 삶 틈 속으로 역사가 비집고 들어와 맺힌다. ​솔로몬의 확장은 거대한 서사시로 펼쳐진다. 일제강점기 핍박 봤던 민초들의 누더기 같은 삶과 선자 할머니의 고국을 향한 향수 그리고 파칭코 사업 확장에 몰두하는 아버지의 열정과 자신이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당하고 있는 인종차별과 멸시가 엮이고 설킨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할머니의 넋두리가 잊어야 하는 과거, 불필요한 피해의식으로 짜여인 장막 뒤에 숨어 있다가 솔로몬의 삶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 그리고 현재 총 8개의 에피소드 중에 마지막으로 공개된 4화에서 솔로몬은 굴레를 벗어던지고, 삶이 변할 것을 암시한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거대 자본과 권력에 붙어 출세를 하겠다는 욕망이 사라지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인지하고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

누군가의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바꿀 때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도 부른다. 역사를 의식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 독립적으로 분절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극한 경쟁에서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상승하는 삶은 가벼워지려고만 한다. 이는 곧 추락할 시 날개가 없는 것과 같다. 솔로몬은 어느 순간 할머니 선자와 자이니치 할머니 간의 공감이 몰고 온 거대한 시간의 파도에서 그것을 느낀다.

자신이 잊고 살았던 것은 비단 자신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 자체였던 것이다. 회사가 자이니치 할머니와 원하는 계약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잘못된 세계를 파괴하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가 넥타이를 풀고 비를 맞은 채 뛰면서 기뻐하는 이유가 거꾸로 처박혀 허우적대던 자신을 구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

솔로몬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일본에서 파칭코를 운영하는 아들을 둔 선자의 삶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과 광복 후 조선인의 일본 생활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너무 궁금하다. ​ 모든 것이 완벽한 드라마다.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와 완벽히 재현된 세트와 생활상, 적절하게 교차 편집되어 이어지는 연출 등 보는 내내 너무 만족스러웠다.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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