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승윤의 '너의 의미'가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한 여운을 남겨서일까. 다시 토요일 저녁 6시, 주변을 최대한 고요하게 만든 다음 TV 앞을 지킨다. 아니 지킬 수밖에 없었다. '불후'라는 타이틀을 엄중하게 생각한다고 했지만 어쩌면 <불후의 명곡>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 김창완의 노래들을 또다시 만날 수 있기에 말이다.

히트곡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곡이, 너무 무궁무진해서 단 2번의 무대로 '김창완이나 산울림'의 노래들을 정의한다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후배 가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의 노래에 새로운 빛깔의 날개들을 달고 행복에 찬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김창완 노랫말의 힘
 
 KBS2 <불후의 명곡>의 한 장면.

KBS2 <불후의 명곡>의 한 장면. ⓒ KBS2

 
이번주에도 5곡의 노래와 더불어 다섯 팀의 경연자들( 공소원, 김재환, 잠비나이, 포레스텔라, 그리고 크라잉 넛 까지)이 무대에 섰고 유례없이 김재환과 포레스텔라에게 공동우승을 안기며 경연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 두 주에 걸쳐 펼쳐진 무대는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내게도 어쩌면 원곡자인 산울림과 김창완에게도 말이다. 그동안 산울림과 김창완의 노래들을 들을 때면 '가장 순수한 음악성이 빚어내는 무한한 자유로움'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었다.

어쩌면 이마저도 갇힌 틀이 될 거 같아서 차라리 넋을 놓고 듣는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산울림과 김창완의 노래들은 비 정형화된, 수식할 수 없는 '유일무이 성'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이 <불후의 명곡>을 통해 다시 한번 변주된 그들의 노래는 '독보적'이지만 '고집스럽지는 않은' 천진난만함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이런 깨달음이 그리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건, 후배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내내 예의 함박웃음을 잃지 않는 김창완의 모습을 통해 확신으로 다가왔다.

사연이 있는 노래, 스토리 텔링을 실은 노래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노래의 날갯짓은 새의 그것보다 어쩌면 더욱 힘차고 강렬하다. 많은 이들이 대중가요 가사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사에 나오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모두 내 이야기가 같아서, 내 마음을 읽고 쓴 것만 같아서, 그 어떤 음악보다 쉬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노랫말이 중요한 이유다.  

산울림과 김창완의 노래들이 우리 대중가요의 역사 속에서 유독 독창성과 더불어 대중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데는 바로 이 노랫말의 힘이 크다. 오늘 무대에 올려진 노래들만 봐도 그 납득의 이유가 충분하다. '백혈병 소녀'의 사연이 담긴 '안녕' 은 굳이 유사한 병증이 없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고할 때 듣게 된다면 제 아무리 강퍅한 가슴을 지닌 이라 할지라도 심장이 아리고, 뇌의 회로들이 일시 정지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 없이 직접적인가 싶다가도, 많은 은유를 내포하고 있어 가사를 곱씹게 된다. 그의 노래 가사들이 시구 같다는 느낌은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하고 있다. 적절한 메타포를 여기저기에 숨겨두고, 듣는 이들과의 밀고 당기기를 한다. 이쯤 되면 고수다. 밀당의 고수.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고, 하나의 장르로 묶기에는 너무나 자유로운 음악. 그래서 무한 변주가 가능하다. 후배들이 앞다퉈 그의 노래들을 리메이크하고, 커버하기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지난 두 주의 시간이 충만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김창완은 김창완을 연주한다'
 
 KBS2 <불후의 명곡>의 한 장면.

KBS2 <불후의 명곡>의 한 장면. ⓒ KBS2

 
하나의 사연은 노래가 불릴 때마다 두 개에서 네 개로, 다시 10개에서 백개로...... 셀 수 없는 세포분열을 하며 성장한다. 유기적이고 끈끈한 각각의 역사는 노래의 밭에서 뿌리를 내리고 단단해지고, 때론 생각지도 못한 열매를 맺기도 한다. 노래는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시대를 자양분 삼아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김창완의 '산할아버지'가 '헤비메탈'이 되거나 '재즈'로 변용되는 순간을 떠올려보라. 혹은 k-pop 아이돌들의 신명 나는 몸짓에 얹혀 언젠가는 세계인들을 단숨에 매료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이미 포레스텔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로부터 그 가능성을 봤다). 꿈꾸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김창완은 김창완을 연주한다. 그가 곧 장르이기 때문'이라는 글로벌 크로스 오버 밴드 잠비나이의 말에서 김창완을 향한 찬사의 끝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 '청춘'의 이음동의어, 그가 김창완이다.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하나의 장르로 우뚝 솟아 대한민국 대중 가요사에 영원히 빛날 이름 김창완 그리고 산울림.

범접하기 힘들 것만 같았던 그래서 김창완을 10년이나 망설이게 했던 '불후'라는 단어가, '명곡'과 함께 나란하게 자리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그리고 그의 노래들처럼 그의 미소 또한 스물의 언저리에 늙지 않은 채 머물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ggotdul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산울림 김창완 불후의명곡 너의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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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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