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전에서 슛하는 DB 허웅 10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원주 DB와 수원 kt의 경기에서 DB 허웅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 이날 DB는 kt를 75-71로 제압했다. (KBL 제공)

▲ kt전에서 슛하는 DB 허웅 10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원주 DB와 수원 kt의 경기에서 DB 허웅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 이날 DB는 kt를 75-71로 제압했다. (KBL 제공) ⓒ 연합뉴스

 
코로나19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프로스포츠 현장에서 성적이라는 현실과, 선수보호라는 이상 사이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지도자의 고백이 진한 여운을 남겼다. 지난 3월 10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6라운드 경기에서 홈팀 원주 DB가 수원 KT를 75-71로 제압했다.
 
DB는 이날 승리로 3연패의 부진에서 탈출했고, 단독 6위(20승 25패, .444)를 지켜내며 7위 대구 한국가스공사(18승 24패)에 반게임차로 앞서 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다. 또한 올시즌 KT와의 상대전적에서 5승 1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했다. 반면 치열한 2위싸움을 벌이고 있는 KT(28승 15패)는 DB를 또 넘지 못하고 4연승 행진이 중단되며 현대모비스(28승 19패)에게 2경기 차이로 쫓기게 됐다.

그런데 승장인 이상범 DB 감독은 모처럼 기분좋은 승리 이후에도 기쁨을 드러내기보다 뜻밖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감독으로서 선수단 관리에 대한 고충을 호소하며 "성적과 신념 사이에서 자꾸 고민하게 된다"고 고백한 것.
 
이상범 감독 "성적과 신념 사이에서 고민"

DB는 최근 몇 년간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조기종료된 2019-2020시즌 공동 1위까지 올랐던 DB는 지난 2020-2021시즌에는 선수들의 줄부상 속에 9위까지 수직추락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실패했다. 올시즌에도 부상병동은 계속됐고 최근에는 선수단 내에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 악재도 있었다.
 
이상범 감독으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선수 가용 자원에는 한계가 있는데 시즌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며 시간은 DB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팀성적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두고 아슬아슬한 싸움을 이어가는 상황이다보니 매 경기를 포기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몸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선수들을 마냥 몰아붙이기도 어렵다. 이상범 감독이 "답답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이상범 감독의 고민은 DB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여러 구단들이 같은 딜레마에 처해있다. 팬들은 속사정을 알지 못하고 경기 자체만 보게 되지만,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참고 뛰는 경우도 많고, 감독은 성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수들의 부상과 혹사 위험을 묵인하는 경우가 현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
 
특히 몇 년전부터 등장한 코로나19라는 변수는 프로농구에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왔다. 기존의 육체적인 부상은 개인의 부상으로 끝나고 어떻게 치료하고 관리해야하는지 매뉴얼이 정해져있지만, 코로나19는 전염병이라 한 사람만 감염되어도 선수단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후유증도 더 오래 간다. 특히 많은 운동량으로 폐활량이 중요한 농구라는 종목에는 더 치명적이다.
 
설사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이라면 코로나 완치 이후 바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지만,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들은 정상 컨디션의 70~80%를 회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걸렸던 운동선수들이 완치 후에도 다양한 후유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올시즌 프로농구 코로나 대확산 사태의 경우, 시즌 중후반에 발생했기 때문에 확진자가 많았던 구단들은 선수들의 컨디션 회복만 기다리다가 시즌이 끝나버릴 상황이다. 이상범 감독은 "코로나19 여파가 생각보다 컸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다른 구단이나 의사들에게도 문의했지만 상황이 모두 비슷했다"고 고백했다.
 
계속되는 코로나, 깊어지는 고민

휴식기 이후 재개된 프로농구에서 대체로 경기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쉬운 슛을 놓치거나, 어이없는 턴오버가 속출하고 같은 경기에서도 선수들의 활약상이 들쭉날쭉하는 등 졸전이 많아졌다. 특히 주전급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팀사정상 많은 시간을 소화할 수밖에 없기에 부담이 더 크다.
 
이상범 감독은 여기서 의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10여 년간 감독 생활을 하면서 항상 선수를 먼저 생각하자는 것이 내 철학이다. 성적 때문에 선수들을 혹사시키기보다 여러 선수들이 장기적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농구를 추구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적과 소신 사이에서 자꾸 고민하게 된다"고 밝혔다.

바로 성적에 대한 욕심 때문에 감독으로서 자칫 선수들을 무리하게 몰아붙이고 있지 않은가하는 자성의 의미였다. 이 감독은 그러면서 "이렇게 힘든 시즌은 처음"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감독의 고뇌는 프로스포츠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낸다. 어떻게든 성적만 잘내면 명장으로 대우받는 국내 프로스포츠 풍토에서 종목을 막론하고 많은 유명 지도자들이 선수의 상황이나 몸상태를 무시한 '혹사'의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정작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현실을 부정하고 남탓으로 전가하는 지도자들도 부지기수다.
 
주전 의존도가 높은 구단들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역시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던 수도권 A구단의 경우, 주전급 선수들을 풀타임에 가깝게 기용하여 몇 년째 리그 개인 출장 시간 상위권을 휩쓸기도 했다. 감독의 혹사 논란에 대해서는 '선수들의 투혼이나 자발적 의지'로 미화하기 일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상범 감독은 현재 KBL 사령탑들 중에서는 그나마 선수 로테이션과 출장시간 관리에 대하여 선진적인 인식을 갖춘 지도자로 꼽혀왔다. 지난 KT전에서도 김종규(29분 43초)와 허웅(29분 17초)이 가장 오랜 시간을 뛰었지만 30분 이상을 소화한 선수는 한 명도 없고, 무려 11명의 선수가 코트를 밟았다.

사실 지난 3연패 기간 동안만 해도 이상범 감독은 승리에 대한 조급함을 보이며 다소 무리수를 둔 것이 오히려 패착이 되기도 했다. 이날의 고백은 주전들의 출장시간 안배에 실패하며 성적은 성적대로 잃고 선수들의 체력부담만 가중시킨 지난 경기들에 대한 일종의 '자기 반성'에 가까웠다.
 
어쨌든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상범 감독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선수단 관리에 대한 고민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상범 감독처럼 현실와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인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과, 그마저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성적과 선수보호의 균형 사이에서 앞으로도 지도자들과 농구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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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DB 이상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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