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투팔롱난민촌의 아이들 쿠투팔롱난민촌의 아이들이 우기에 축구 경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

▲ 쿠투팔롱난민촌의 아이들 쿠투팔롱난민촌의 아이들이 우기에 축구 경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 ⓒ Renaud Philippe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자유일뿐.
교사가 되어 가르치는 자유.
의사가 되어 치료하는 자유.
리더가 되어 평화를 가져올 자유. 
친구가 되어 나의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자유.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자유일뿐.  


방글라데시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촌, 쿠투팔롱난민캠프 (Kutupalong Refugee Camp)에 사는 로힝야인들의 삶과 애환을 다룬 캐나다 다큐멘터리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 (Wandering, a Rohingy Story)>는 이렇듯 난민촌에서 영어강사 및 통역을 맡고 있는 칼람(KALAM)의 애절한 시로 문을 연다.

아라칸주 출신인 칼람씨는 미얀마 군부의 탄압을 피해 2018년부터 쿠투팔롱난민촌에 거주하고 있다. 멜라니 카리에 (MÉLANIE CARRIER) & 올리비에 히긴스 (OLIVIER HIGGINS) 부부의 네 번째 장편인 이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내용은 칼람씨가 창작한 시와 삶의 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부드럽게 내레이션으로 전하는 건 2008년 퀘벡에 정착한 또 다른 로힝야 난민 모하메드 소피 (MOHAMMED SHOFI)씨가 맡았다. 그는 18년간 같은 캠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로힝야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이곳의 일상을 소개한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는 5월 20일 캐나다의 오스카, '캐네디언스크린어워즈'에서 최고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오는 6일 열리는 '퀘벡시네마어워즈' 최고 다큐멘터리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15여년간 남아시아 및 동아프리카 등 전세계 분쟁지역에서 삶을 이어가는 민간인들의 삶을 담아온 퀘벡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르노 필립(RENAUD PHILIPPE)도 영화 작업에 함께했다. 현재 퀘벡 국립예술박물관(MNBAQ)에서는 영화와 같은 타이틀로 필립 작가의 사진및 카리에-히긴스 감독 부부의 비디오, 칼람의 시, 로힝야 난민의 증언, 쿠투팔롱 아이들의 그림, 기타 다수 예술가들의 조각 등을 선보이는 멀티미디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의 2019년 보고서에 의하면 이 쿠투팔롱난민촌엔 약 90만의 로힝야 난민이 머물고 있으며 대부분 2017년 8월 미얀마 군부의 폭력을 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군부와 수십년간 갈등을 겪어온 이들은 2017년 대대적인 인종청소를 피해 월경했지만, 현지 난민촌에서의 인신매매도 그들에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강을 건너고 있는 로힝야 난민들  로힝야족은 미얀마에서 피난 당시 많은 강을 건너야 했고, 수많은 이들이 익사했다.

▲ 강을 건너고 있는 로힝야 난민들 로힝야족은 미얀마에서 피난 당시 많은 강을 건너야 했고, 수많은 이들이 익사했다. ⓒ MO FILMS

 
2019년 유엔난민기구에 보고된 행방불명 사건은 연 170여 건이지만 실제 사건 발생수치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인신매매는 강제 노동 및 성노예 등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난민촌에 수용된 이들의 절반 이상이 아동이기에 우려가 더 크다. 이밖에도 미얀마 정부에 의해 시민권 취득 및 여권 발행이 허용되지 않는 로힝야족은 현재 발이 묶인 상태이다. 이들은 좁은 난민촌에서 모래주머니, 대나무, 플라스틱 등을 사용해 임시로 만든 가건물에 거주하고 있다.  
 
1991년 세워진 이 임시 거주지에서 로힝야 난민들은 자신들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친구들과 축구를 하기도 하고,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겨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하고, 홀로 언덕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예쁘게 화장도 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카리에-히긴스 감독 부부는 탁월한 연출력으로 이들 삶의 고통과 기쁨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어떨 때는 풍경화처럼 멀리 거리를 두기도하고, 어떨 때는 한 편의 초상화처럼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다.
 
카리에-히긴스 감독은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퀘벡주 출신으로 현재까지 4편의 장편 다큐를 연출했다. 몽고에서 신장, 티벳, 네팔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8000km의 자전거여행을 기록한 첫 작품 <아시뭇 Asiemut>(2006년)은 해외 영화제에서 36개가 넘는 상을 받았고 아르떼, 알자지라 등 여러 방송국을 통해 40개국에 배급되는 큰 성공을 거뒀다.

<퀘벡쿼아지 Québékoisie>(2013년)에서도 이 부부는 퀘벡시와 나타쉬콴 지역을 잇는 'Quebec Route 138' 고속도로를 자전거로 여행하며 캐나다 선주민들과 퀘벡인들의 다양한 관계를 조명했다. 퀘벡주 소재 56부족의 선주민들과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불화, 선주민 역사의 공교육 부재, 상호간의 불신과 오해, 화해를 위한 노력 등을 균형 있게 보여준 수작이다. 다수 학교에서 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주 폐막한 독일 뮌헨 소재의 국제다큐영화제 (독페스트 DOK.FEST)를 통해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를 접했다. 다음은 올리비에 히긴스 감독과 화상으로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 두분 모두 생물학을 전공한 것으로 아는데 영화작업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우리는 정식으로 영화연출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취미로 촬영을 즐겼다. 여행이나 암벽 등반 등 우리의 모험을 촬영하면서 언젠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의 첫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과 소통했던 즐거운 경험이 영화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가 됐다."
 
- 원주민들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두 장편을 연출했다. 원주민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궁금하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의 삶은 상호간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문화에 관심이 많아 해외여행도 많이 했고 고등교육도 받았으나 우리가 사는 퀘벡시티 근교의 원주민들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걸 30세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퀘벡주 원주민들의 제각기 다른 언어, 전통, 정체성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배우고자 여행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로 만나야만 같이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를 만들게 된 동기는?
"2018년 2월 우리의 친구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르노 필립의 충격적인 페이스북 포스팅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당시 쿠투팔롱난민촌에서 그가 전한 현지 소식과 강렬한 사진이 우리를 압도했다. 우리는 그를 통해 직접 이 인도주의적 위기의 심각성 및 언론의 무관심에 대해 알게되었고 그가 같은 해 10월 다시 돌아갈 때 함께 영화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비행기값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촬영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 매몰되어 살고 있다. 매일 비극적 사건이 구체적인 수치로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 언론의 빠른 보도방식과는 다르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 비극적 현실을 좀 더 가까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 수많은 통계수치를 전하는 저널리스트적 스타일을 피하고 관찰자적인 다큐 제작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관찰자적인 다큐스타일을 좋아한다.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이런 방식이 맘에 드는 것은 우리에게 영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시간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한 이미지를 오랫동안 관찰하다보면 관객이 감정을 느낄 시간이 있다. 일부 영화는 말로써 수많은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훌륭한 연출가라면 사운드와 이미지만으로도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사운드와 이미지에 많은 정보가 있기에 그 자체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빠르게 편집하면 상업성에는 도움이 되지만 많은 것을 놓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화 중에 말을 멈추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멈추는 자체에도 의미가 존재한다. 언어의 리듬에도 의미가 있다. 인터뷰를 자르지 않고 상황을 관찰하면 현실자체의 리듬, 즉 삶의 리듬을 더 느낄 수 있다. 감독이 이런 리듬을 고려해서 스크린에 옮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힝야족의 대대적인 피난행렬 미얀마 군부와 수십년간 갈등을 겪어온 로힝야족은 2017년 8월 대대적인 인종청소를 피해 약 7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 로힝야족의 대대적인 피난행렬 미얀마 군부와 수십년간 갈등을 겪어온 로힝야족은 2017년 8월 대대적인 인종청소를 피해 약 7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 UNHCR

 
- 이 영화 촬영과 편집시 어려웠던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이 영화 촬영은 약 한달 걸렸고 편집은 1년 반이나 걸렸다. 우리는 난민촌에 머물 수가 없었기에 매일 편도 1시간 반 거리를 작은 툭툭 (오토바이차)를 타고 이동했다. 새벽 5시부터 밤 8시까지 촬영 후 귀가했는데 캠프가 미로처럼 복잡하고 길이 적어 교통체증도 많아 어떨 땐 한참을 걷기도 했다. 몬순의 끝무렵이라 비로 고생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수시로 계획을 변경해가며 촬영을 이어갔다. 
 
심적 부담이 가장 컸다. 장소와 무관하게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건 항상 쉽지 않다. 아기들이 살해당하고 집을 불사르는 등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다보면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느끼게 된다. 나는 촬영을 완성해야하는 목표가 있고 시간은 부족한데, 인터뷰하는 난민들이 감정을 쏟아내고 있으면 중간에 중단하기가 어려웠다. 매 순간 나는 왜 이 영화를 만드는지,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 무슨 의미를 전달할지 등 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쉬운 답은 없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아이들이 우는 장면 등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과 센세이셔널리즘 사이의 간극은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내 영화에 나오는 분들이 한 인격체로 존중받았다고 느끼시길 희망할 뿐이다.     

편집할 때는 로힝야 언어가 문자 없이 구두로 소통하는 언어여서 무척 애를 먹었다. 이제 막 문자로 표기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내레이션을 집에서 소피씨와 녹음했는데 즉석에서 통역하고 바꾸느라 무척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한 자신의 지나온 삶이 연상되어서인지 소피씨는 녹음 중에 감정에 복받쳐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워할 때도 있었다."  
 
- 짧은 체류기간에 난민들의 사적인 인생 스토리와 감정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언어장벽으로인한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로힝야 난민 칼람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8년 2월 필립 작가는 첫 캠프방문시 칼람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그를 신뢰해 우리 촬영팀의 가이드및 통역 역할을 맡겼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칼람의 개인사와 그가 쓴 시들이 너무 인상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영화의 내레이션으로 만들게 되었다. 칼람이 지인들에게 연락했고 우리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질문도 해서 촬영에 큰 도움을 주었다."

- 르노 필립 사진작가의 웹사이트 글을 보니 2018년 난민촌에서 약 4만 8000명의 아기들이 태어났는데 5살 미만의 ¼ 이상이 영양실조, 적절한 의료지원과 교육 부족에 시달렸다. 한마디로 제 삼자의 관점에서 보면 아동의 미래가 어둡다. 그런데 퀘벡에 정착한 로힝야 난민 모하메드 소피씨가 18년간 그 캠프에서 보낸 유년시절이 그립다고 하니 좀 놀랍긴 하다. 
"소피씨는 1991년에서 2008년까지 쿠투팔롱난민촌에 머물렀다. 그 당시 캠프는 작은 규모였다. 2017년 불과 몇 달사이 약 70만명의 난민이 갑작스레 이 캠프에 유입되면서 세계 최대 규모가 되었다. 아이로 캠프에서 생활했던 그는 학교 수업도 없었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한다. 성인으로 성장한 후에야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달았지만 유년시절엔 친구들과의 우정과 주변인들의 사랑으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난민촌에서 미얀마 군부의 공중 폭격과 살상을 그리고 있는 아이 "SOS Children" 단체는 매일 50-100명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노래, 그림 그리기등 취미활동을 유도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 공중 폭격과 살상을 그리고 있는 아이는 "본인이 본 모든 기억을 다 표현하기엔 도화지가 적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 난민촌에서 미얀마 군부의 공중 폭격과 살상을 그리고 있는 아이 "SOS Children" 단체는 매일 50-100명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노래, 그림 그리기등 취미활동을 유도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 공중 폭격과 살상을 그리고 있는 아이는 "본인이 본 모든 기억을 다 표현하기엔 도화지가 적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 Renaud Philippe


- 미얀마정부는 로힝야족의 출생 및 사망, 결혼 등록도 제한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도 로힝야족을 차별한다는 필립 사진작가의 글을 읽었다. 2014년 방글라데시 의회는 로힝야족과 방글라데시인과의 결혼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이는 7년 감옥행을 선고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기본적으로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인들과의 사회 통합을 원하지 않는다. 난민촌에서는 아예 방글라데시 언어도 가르치지 않는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로힝야 난민이 몰래 캠프를 이탈하는 것이 두려운 것 같다."  
   
-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는 난민이 겪는 비극 자체 뿐만 아니라 이와 대조되는 삶의 기쁨도 함께 보여준다. 인간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삶의 작은 기쁨을 찾는 놀라운 적응력을 가진 것 같다.
"나는 이런 비극과 삶의 대조를 이 영화의 강한 특색 중 하나로 여긴다. 우리는 로힝야족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 뿐만 아니라 캠프내에서의 일상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2시간가량 아이들이 축구하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곤 한다. 난민촌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들에겐 당연히 미소, 슬픔, 사랑등 다양한 감정이 공존한다." 
 
- 미얀마 군부의 공중 폭격과 살상을 그렸던 아이가 본인이 본 모든 기억을 다 표현하기엔 도화지가 작다고 말했다. 이 아이가 언덕에서 구슬프게 부르던 노래의 가사도 인상적이었다. 로힝야의 유명한 전통 포크송인지 궁금하다. '당신은 꿀 대신 제게 독약을 주었어요. 왜 저는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나요? 행복의 집을 지을 희망이 있었는데 당신은 행복대신 제게 슬픔을 선사했어요. 왜 저는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나요?'라는 가사가 얼핏보면 남녀의 러브송같지만 왜 나는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냐고 국제사회에 되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벵갈리의 전통적인 러브송인데 로힝야어로 번역되어 다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들었다. 남여간의 사랑에 관한 노래여서 보수적인 로힝야족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인기를 얻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같이 공존하려고 노력했는데 당신은 나를 불에 집어 넣었다'에선 로힝야족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읽을 수 있다."

-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느끼길 바라는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우리가 난민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길에서 난민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그가 겪은 개인적인 고통과 삶의 여정을 다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이런 대규모의 비극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비극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누가 다음 피해자일까?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어야할까?

나는 물론 관객들이 내 영화를 통해 로힝야족의 상황을 알게 되길 바라지만 동시에 내 영화가 외적 상황을 바꿀 것이라고 여기진 않는다. 내 영화는 로힝야족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넓은 바다의 한 방울의 물일 것이다. 내게 있어 영화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는 매개체다. 우리 부부가 영화를 만드는 중요한 이유는 '인생은 어느 개별 분자의 특성이 아니라, 분자들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Life is a relationship between molecules, not a property of any one molecule)'라고 말한 노벨화학상&노벨평화상 수상자 리누스 칼 파울링의 지혜에 그 답이 있다."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를 연출한 멜라니 카리에 & 올리비에 히긴스 감독 부부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는 5월 캐나다의 오스카, ‘캐네디언스크린어워즈’에서 최고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6월 6일 개최될 ‘퀘벡시네마어워즈’에서도 최고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를 연출한 멜라니 카리에 & 올리비에 히긴스 감독 부부 <원더링 로힝야 스토리>는 5월 캐나다의 오스카, ‘캐네디언스크린어워즈’에서 최고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6월 6일 개최될 ‘퀘벡시네마어워즈’에서도 최고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 mofilms_vignette

원더링로힝야스토리 멜라니카리에 올리비에히긴스 미얀마 로힝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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