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낙원의 밤>에서 재연 역을 맡은 배우 전여빈.

영화 <낙원의 밤>에서 재연 역을 맡은 배우 전여빈. ⓒ 넷플릭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임에도 최근 전여빈처럼 바쁜 배우가 또 있을까. 안방 극장에서 집요한 승부사 기질이 있는 변호사로, 동시에 삶의 끝에 몰린 소녀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빈센조>와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은 이처럼 독립영화계 신성이던 그에게 대중적 인지도를 안기는 중이다.

인기는 사실 부수적인 것이다. 지금 상황도 그가 배우로서 허투루하지 않고 차곡차곡 인정받아 왔기에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빈센조> 마지막 촬영을 앞둔 23일 온라인 인터뷰에 참석한 전여빈은 "며칠 밤을 새웠다"고 말하면서도 활기차게 자신이 참여한 작품에 성심껏 답하고 설명했다. 

<낙원의 밤>은 영화 <신세계> 등으로 한국형 누아르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 <마녀>처럼 여성 캐릭터, 그것도 어리고 보호받을 존재가 아닌 직접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가며 위기에 대처하는 인물을 그려넣었다. <낙원의 밤>에서 전여빈이 맡은 재연은 조직의 위협을 피해 제주도로 숨어들어온 태구(엄태구)를 숨겨주면서 동시에 그 조직이 과거에 자신의 가족에게 가한 폭력을 되갚을 궁리를 하는 인물이다.

"다른 영화 속 여성 캐릭터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박훈정 감독은 전여빈에게 역할을 맡기면서 영화에 깔릴 음악, 분위기, 정서를 제법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남성 캐릭터의 전유물 같았던 누아르물과 다른 결을 그리고 싶어서일 텐데 전여빈 또한 깊게 공감했다. 시한부를 선고받고 매사에 냉소적인 재연은 한때 조직내 총기 공급책이었던 삼촌에게 총기술을 배우며 복수의 날을 갈아왔다. 삶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복수의지는 가득한 독특한 정서가 재연을 통해 영화 곳곳에 깔린다. 

"재연이 자체가 <낙원의 밤>이 정통 누아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같다. 기존 누아르에선 남자와 남자 간 우정이 있다면 여기엔 남녀의 우정이 있다. 멜로를 뛰어 넘은 사랑의 감정이 태구와 재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전우애 같은 것 말이다. 시한부 인생이라고 마음이 바닥에 붙어있는 작은 친구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 이미 죽임당했기에 본인이 시한부인 걸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는 친구다. 아픈 몸이라고 해서 다른 영화 속 여성 주인공처럼 바스러지는 느낌이 들지 않길 원했다."
 
 <낙원의 밤> 스틸

<낙원의 밤> 스틸 ⓒ 넷플릭스

 
그랬기에 영화 중후반부터 등장하는 재연의 사격술 또한 중요했다. <낙원의 밤> 출연이 정해진 게 한창 드라마 <멜로가 체질> 촬영 때라 물리적으로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전여빈은 "그래도 틈만 나면 사격장에 가서 연습했고, 영화 촬영장에서도 잘 때 빼곤 항상 총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가지고 놀기도 했다"고 밝혔다. 

"재연이 외로운 캐릭터라고들 많이 보신다. 공교롭게 그간 영화에서 외로움을 간직한 역할을 몇 번 했다. 저라는 사람 안에 외로움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외롭잖나. 그걸 극복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누구나 갖고 있는 그 감정을 극대화해서 밖으로 표현했다. 당연히 외로움과 쓸쓸함이 촬영 때 많이 들겠지만 그건 배우로서 당연히 받아들일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빈센조>와 <낙원의 밤>을 동시에 선보이며 시청자분들과 만나고 있는데 전적으로 두 캐릭터는 다르다. 물론 복수심에 불타는 공통점은 있다. 하지만 되도록 전 작품마다 제가 하는 캐릭터가 독립적이길 원한다. 어떤 캐릭터를 제가 하는 다른 작품 속 캐릭터에 연결짓는 게 미안하다. <죄 많은 소녀> 영희는 영희대로 <멜로가 제칠> 속 은정은 은정대로의 인생을 살길 원한다. 보시는 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말투나, 음색, 몸짓부터 아예 다르게 연기하려고 노력한다."

 
 영화 <낙원의 밤>에서 재연 역을 맡은 배우 전여빈.

영화 <낙원의 밤>에서 재연 역을 맡은 배우 전여빈. ⓒ 넷플릭스

 
"엄태구 선배, 진짜 친구를 얻은 느낌"

물론 마냥 촬영이 우울하고 힘든 감정으로만 찬 건 아니었다. 전여빈은 <낙원의 밤>을 통해 엄태구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차승원, 박호산, 이문식 등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는 자체를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차승원 선배, 박호산 선배, 이문식 선배님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는 장면이 있다. 제 촬영은 없었는데 선배님들 모습이 보고 싶어서 촬영장에 갔다. 힘이 넘치면서도 재치가 살아있는 게 너무 즐거워서 몰래 모니터를 훔쳐봤던 기억이 있다. 실제 영화에도 그 장면을 많이 좋아하다. 그리고 극 중 태구와 재연이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만의 평온한 시간을 갖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도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재연이가 영화에선 물회를 좋아하는데 사실 체질에 잘 안 맞아서 물회는 못 먹는다. 그래도 먹방을 하듯 잘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아주 열심히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장염이 왔다(웃음). 그 후로 회도 잘 안 먹고 있는데 요즘은 다시금 물회를 먹어보고 싶기도 하다.

태구 선배와도 친구가 됐다. <밀정> 때 제가 단역이라 잠깐 인사드린 적이 있는데 정말 내성적이셨거든.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 마음이 누구보다 뜨겁고 연기 열정이 깊다는 걸 느꼈다. 감독님이 중간에서 우리와 맛집도 다니고 노력해주셨다. 서로 좋은 친구가 됐다."


최근 3년을 지나며 전여빈은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고백했다. 활발한 작품활동 덕일 것이다. 그는 "막연하게 학생 때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가 이젠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며 "한자어로 '무변광대'(無邊廣大)라는 말이 있다. 한없이 넓고 큰 상태라는 뜻인데, 배우로서 계속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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