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경기. 흥국생명 선수들이 잇따른 팀 실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흥국생명은 세트 스코어 0-3으로 IBK기업은행에 패배했다.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경기. 흥국생명 선수들이 잇따른 팀 실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흥국생명은 세트 스코어 0-3으로 IBK기업은행에 패배했다. ⓒ 연합뉴스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이 이재영-이다영의 학폭 논란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있다. 흥국생명은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펼쳐진 2020-21 V-리그 IBK기업은행과의 5라운드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0-3(21-25 10-25 10-25)으로 완패했다.

이날 패배로 흥국생명은 올시즌 첫 4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시즌 성적 17승 7패(승점 50)로 1위 자리는 지켰지만 2위 GS칼텍스(15승 9패·승점 45)와의 격차가 크게 좁혀지며 선두 수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규시즌 종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자칫 플레이오프까지 나쁜 흐름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흥국생명은 올시즌을 앞두고 '배구여제' 김연경의 복귀로 막강 전력을 구축하며 일찌감치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흥벤져스'(흥국+어벤져스)같은 신조어가 나오는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전승 우승-무실세트 우승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장및빛 기대가 넘쳐났다.

하지만 흥국생명의 팀 분위기는 지난해 12월 불거진 팀내 불화설을 기점으로 뚜렷한 하락세를 타고 있다. 이다영이 개인 SNS를 통하여 팀 선배와의 갈등을 암시하는 글을 잇달아 올리며 논란에 휩싸였고 덩달아 본인도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외국인 선수 루시아 프레스코가 부상으로 하차한 뒤 대체 선수로 영입한 브루나 모라이스의 경기력도 기대 이하였다.

최근에는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논란이 제기되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쌍둥이 자매는 결국 학폭 사실을 인정했고 흥국생명과 대한배구협회 등은 이들에게 잇달아 무기한 출장정지-대표팀 자격박탈 등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학폭에 민감한 여론은 이들 자매의 배구계 영구 퇴출을 요구하는 등 분위기가 냉랭하다. 현재로서 이들의 소속팀 복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나머지 흥국생명 선수들도 좀처럼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도로공사전에서 무려 33점차의 패배를 당했던 흥국생명은 기업은행전에서는 다시 34점로 완패하며 역대 한 경기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을 2경기 연속 경신했다.

리그 4위에 그치고 있는 기업은행은 1∼4라운드까지만 해도 흥국생명에 전패는 물론 단 한 세트도 뽑아내지 못했을 정도로 일방적인 열세를 보였던 팀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정반대로 오히려 흥국생명이 압도당했다. 흥국생명은 김미연을 레프트에 배치하고, 김다솔과 박혜진에게 번갈아가며 세터를 맡겼지만 쌍둥이 자매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브루나는 외국인 선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고작 1득점, 공격성공률은 7.7%에 그쳤다. 김연경이 홀로 12득점하며 분전했지만 팀의 완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쌍둥이 자매의 학폭 논란 이후 선수단이 안팎에서 거듭되는 의혹과 소문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최근 쌍둥이 자매의 엄마이자 전 배구선수 출신 김경희씨가 팀 훈련을 참관하고 경기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이라며 "프로배구단이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또한 "잘못한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선수들에게 너무 과중한 부담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박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단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 말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애초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에는 흥국생명 구단과 박미희 감독의 관리 실패 책임도 있다. 흥국생명 구단은 학폭 논란 이전에 이다영이 무분별한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킬 때나, 심지어 선수들의 입을 통해 팀내 불화설을 공개적으로 인증하는 순간까지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쌍둥이 자매의 학폭 논란과 별개로, 박 감독과 흥국생명 구단이 팀의 기강과 원칙을 바로 세웠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도, 비상식적인 의혹들이 쏟아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흥국생명 선수들의 프로의식도 다소 실망스럽다. 물론 핵심선수 2명이 빠졌고 외국인 선수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선 결과를 떠나 과정도 중요하다. 배구는 팀스포츠이고 흥국생명은 김연경과 쌍둥이 자매만 있는 팀이 아니다. 팀원 모두 연봉을 받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하는 프로 선수들이다. 주전들의 부상이나 공백은 비주전들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 4연패 기간 동안 흥국생명은 아마추어같은 모습으로 일관했다. 끝까지 포기하지않으려는 투지도, 1점에 대한 간절함도 보이지 않았다. 학폭 논란으로 쏟아지는 여론의 관심에 흥국생명 선수단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팬들이 비판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가해자이나 구단 측이지 모든 흥국생명 선수들이 아니다.

이제 흥국생명에 현재의 순위나 지금까지 거둔 성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쌍둥이 자매는 사실상 없는 선수가 되었고, 남은 선수들끼리 똘똘 뭉쳐 위기를 헤쳐나가야한다. 김연경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그녀 혼자만으로 팀을 구해낼 수는 없다. 선수들 각자가 '누가 대신 나서주겠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코트 위에서 주인의식을 가져야한다. 지금이야말로 매 경기와 1승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줘야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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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4연패 김연경 박미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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