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카타르 자심빈하마드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20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 울산 현대와 빗셀고베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울산 선수들과 김도훈 감독이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카타르 자심빈하마드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20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 울산 현대와 빗셀고베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울산 선수들과 김도훈 감독이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All or Nothing(올오어 낫띵)', 우리말로 표현하면 '모 아니면 도', '양자택일' 정도의 의미가 된다. 말 그대로 세상을 다 가지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없거나. 승부의 세계에서 1인자와 2인자간 큰 차이를 의미하는 말로도 자주 쓰인다.

2020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을 앞둔 울산 현대의 상황이 바로 이와 같다. 동아시아 대표인 울산은 오는 19일 서아시아 지역에서 최후의 생존자가 된 이란의 페르세폴리스와 대망의 우승을 향한 마지막 일전을 펼친다. 울산은 김호곤 감독이 이끌던 2012년 첫 정상에 오른 이래 8년 만에 우승을 노린다.

울산에게 이번 ACL 결승은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울산은 올해에만 K리그1와 FA컵에 이어 세 번째 정상에 도전한다. 하지만 국내 무대에서는 전북 현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만일 ACL 무대에서조차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한다면 K리그 역사상 전대미문의 '준우승 트레블'이라는 희대의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동안 울산이 보여줬던 노력과 과정은 모두 잊히고 용두사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구나 이번 ACL 결승은 김도훈 감독이 울산 지휘봉을 잡고 치르는 사실상 '마지막 경기'이기도 하다. 올해를 끝으로 울산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김 감독은 이미 ACL 결과와 상관없이 지난 K리그와 FA컵 우승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을 물러날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아직 울산 구단은 김 감독의 거취나 후임 감독 문제에 대하여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결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 감독은 2017년 울산 지휘봉을 잡은 이래 이번 ACL이 벌써 6번째 우승 도전이다. 부임 직후 꾸준히 울산을 상위권으로 이끌었지만 정작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은 부임 첫해였던 2017년 FA컵 우승이 유일하다.

이후 K리그 정상과 두 번의 FA컵 결승전에 더 도전했지만 4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조현우-이청용-주니오-원두재-김태환-비욘 존슨 등 막대한 투자로 초호화멤버들을 구축했던 울산 구단으로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성과였다. 김 감독에 대하여 이번 ACL 무대는 지도자로서의 명예회복과 울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분위기는 울산 쪽에 좀 더 유리하다. 울산은 이번 대회에서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한동안 중단되었던 ACL 대회 일정이 11월 카타르에서 재개된 이후로는 파죽지세로 전승 행진을 이어갔다. 울산은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합쳐 지금까지 9경기에서 21골을 터뜨리며 대회 최다득점(2.3골), 전경기 멀티골(2골 이상) 행진으로 최강의 화력을 과시중이다. K리그1 득점왕(26골)인 골잡이 주니오와 비욘존슨이 나란히 5골로 팀내 득점 공동 선두이고 미드필더 윤빛가람이 4골로 그뒤를 잇고 있다.

수비력도 9경기에서 불과 6실점(0.67골)만을 허용했다. 무실점 경기가 세 차례 있었고 2골 이상 내준 경기는 전무하다. 특히 주전 골키퍼였던 조현우가 국가대표 합류 이후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불참하는 전력누수에도 불구하고 백업 골키퍼 조수혁이 기대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며 철벽수비를 이끌고 있다.

울산은 지난 2012년 첫 우승때도 ACL 역사상 최초의 무패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당시 울산은 2012년 조별리그부터 토너먼트(당시는 홈앤 어웨이)까지 12경기 연속 무패(10승 2무)로 '퍼펙트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는 코로나10로 토너먼트 일정이 단판승부가 줄어들면서 울산은 9경기 연속 무패(8승 1무)를 기록중이다.

상대팀인 페르세폴리스는 조별리그에서 3승 1무 2패, 토너먼트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며 결승까지 올라왔다. 득점은 불과 8골밖에 넣지 못했지만 최소실점(5실점)을 기록한 수비력의 힘이 돋보인다. 16강 알사드, 8강 파크타코르에선 무실점으로 승리를 따냈고, 4강에서 알나스르에 1실점하긴 했지만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로 결승행에 성공했다. 페르세폴리스 간판 공격수 이사 알레카시르가 인종차별을 이유로 징계를 받아 출전이 불발됐다는 것은 울산에 큰 호재다.

결승전은 양팀의 스타일상 마치 한국과 이란의 국가대표팀 A매치의 대리전을 떠올리게 한다. 이란은 카를로스 케이로스 전 감독이 이끌던 2013년 이후 객관적인 전력과 점유율에서 늘 한국보다 뒤졌지만, 끈끈한 수비와 역습, 그리고 '침대축구'를 바탕으로 일격을 가하는 패턴이 반복되곤 했다. 한국은 케이로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동안 이란에 2무 4패에 그치며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결승전도 울산의 우세가 예상되지만 방심하다간 허를 찔릴 수 있다. 페르세폴리스의 득점루트를 보면 대부분 역습 상황에서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울산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빌드업 과정에서 불필요한 실수를 줄이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다.

어쩌면 결승전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김도훈 감독의 용병술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그동안 K리그 파이널라운드와 지난 ACL 토너먼트 등 중요한 경기마다 이해할수 없는 변칙적인 전술을 구사했다가 오히려 자충수가 된 경우가 많았다.

바로 지난 경기였던 13일 고베와의 4강전도 비슷한 경우였다. 8강전까지 승승장구했던 울산은 고베전에서 주전인 원두재와 김태환, 존슨 등을 빼고 신진호와 정동호를 깜짝 기용했다. 원두재와 김태환이 준결승 전까지 경고를 한 차례씩 받아 고베전에서 또 옐로 카드를 받을 경우,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서 뛸 수 없게 된다는 점 등을 고려한 선수기용이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울산은 고베전에서 이번 대회 들어 가장 저조한 졸전을 펼쳤다. 후반에 선제골도 고베에게 먼저 허용하며 끌려갔고, 신진호의 아찔한 실수로 추가골까지 내줄뻔 했지만 비디오 판독결과 취소되는 장면도 있었다. 결국 김도훈 감독은 후반들어 다시 주전 선수들을 투입해야했다.

결과적으로는 연장 혈투 끝에 2-1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내용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만일 그대로 경기를 뒤집지 못했다면 고베전은 김도훈 감독의 커리어에 또한 번의 흑역사로 남을뻔 했다. ACL 결승진출에도 불구하고 울산 팬들이 여전히 김감독의 리더십을 못내 불안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울산과 김도훈 감독에게 이번 ACL은 K리그와 FA컵 우승좌절로 입었던 상처를 치유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제 울산에게 더 이상의 준우승이나 '졌잘싸(졌지만 잘싸웠다)'같은 위안은 의미가 없다. 4년간의 다사다난했던 동행을 해피엔딩으로 마감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우승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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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현대 ACL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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