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형들이 이번에는 칼을 제대로 갈고 나왔다. 사흘 전 올림픽대표 아우들의 호된 압박에 진땀을 흘렸기 때문에 한 번 더 밀렸다가는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아우들을 이겨봤자 본전치기밖에 안 되는 스페셜 매치 두 게임 일정이었지만 벤투 감독도 그들에게 축구 국가대표로서의 자존심이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를 일깨워준 셈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12일 오후 8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올림픽대표팀과의 스페셜 매치 2차전에서 후반전에 3골을 몰아넣으며 3-0 완승을 거두고 상징적인 우승 트로피와 1억원의 상금을 들어올려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한 성금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기부할 수 있게 됐다.

 
 12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친선경기 2차전에서 국가대표 이영재가 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12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친선경기 2차전에서 국가대표 이영재가 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이동준의 완벽한 역습 드리블, 완승의 포문 열다

하루 전 급하게 결정된 사항이지만 보기 드문 스페셜 매치에 2075명의 유료 관중들이 찾아와서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주었기에 이번 게임은 더 특별했다.  

사흘 전 1차전 흐름과 달리 이번에는 백호 무늬 새 유니폼을 입은 국가대표 형들이 깐깐한 압박 축구 전술을 들고나왔다. 노련한 오른쪽 풀백 김태환(울산 현대)이 측면을 거칠게 막아섰고 손준호(전북 현대)가 듬직하게 중심을 잡아준 덕분이었다. 김학범 감독의 올림픽대표팀은 조규성을 맨 앞에 세우고 '김대원-정승원-조영욱'을 2선에 배치하며 한 번 더 형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싶었지만 전반전에 형들이 쳐놓은 수비벽을 좀처럼 허물지 못했다. 

이에 당황한 김학범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오세훈, 엄원상'을 함께 들여보내 형들을 흔들어놓는 계획을 세웠지만 도리어 빠른 역습에 먼저 골을 내주고는 기세에 밀리고 말았다. 55분에 올림픽대표에서 월반한 두 선수가 국가대표팀의 멋진 역습 선취골의 주역이 됐다. 이동준의 빠른 공간 침투가 올림픽대표 수비형 미드필더 맹성웅을 밀어냈고 그 스피드를 믿고 나란히 뛰어들어간 이동경이 빈 골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왼발 밀어넣기를 깨끗하게 성공시킨 것이다.

조현우의 슈퍼 세이브로 지켜낸 형들의 자존심

형들의 깐깐한 압박 축구가 게임을 주도했지만 올림픽대표 아우들의 공격 능력은 그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와 때때로 빛났다. 67분에 올림픽대표의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가 자로 잰 듯한 크로스로 넘어갔고 후반전 교체 선수 오세훈의 이마가 빛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빛나는 존재는 국가대표 골문을 지키고 있는 조현우 골키퍼였다. 기막힌 타이밍으로 방향을 살짝 돌려놓은 오세훈의 헤더가 골문으로 빨려들어갈 듯 보였지만 조현우는 그 세트 피스 궤적을 미리 읽은 듯 몸을 날려 공을 쳐냈다.

85분에도 올림픽대표 공격형 미드필더 김대원의 오른발 슛이 골문 구석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날아왔지만 이번에도 조현우가 자기 오른쪽으로 훌쩍 날아올라 기막히게 공을 쳐냈다. 이렇게 조현우가 듬직하게 골문을 지켜주니 아우들은 상대 골문에서 빈 곳을 찾지 못하고 끝내 주저앉고 말았다. 두 골이 종료 직전에 몰린 것이다. 아우들의 수비 조직력이 흐트러진 빈틈을 확인한 형들이 비교적 쉽게 추가골과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88분에 국가대표의 역습 로빙 패스가 애매한 지역에 떨어지자 올림픽대표 골키퍼 안찬기가 골문을 비우고 달려나와 헤더로 걷어내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공은 멀리 나가지 못하고 국가대표 교체 선수 이주용에게 걸리는 바람에 왼발 발리슛 추가골을 얻어맞았다.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온 골키퍼 안찬기와 센터백 정태욱의 호흡이 어긋난 지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수비 조직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형들이 추가 시간에 한 번 더 가르쳐주었다. 왼쪽 측면에서 역습 패스를 노린 2게임 연속 골 주인공 이주용이 역시 후반전 교체 선수로 들어온 가운데 미드필더 이영재에게 완벽한 전진 패스를 넣어주었고 이영재는 부드러운 왼발 칩킥 실력으로 쐐기골을 확인시켜주었다. 김태현과 정태욱이 나란히 뛴 올림픽대표 센터백 간격이 자동문을 상징할 정도로 활짝 열린 순간이었다.

이제 양 팀 선수들은 짧은 소집 훈련 일정을 마치고 16일(금)부터 이어지는 2020 K리그 막바지 일정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 소속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축구 국가대표 스페셜 매치 2차전 결과(12일 오후 8시, 고양종합운동장)

올림픽대표 0-3 국가대표 [득점 : 이동경(55분,도움-이동준), 이주용(88분), 이영재(90+1분,도움-이주용)]
- 두 게임 합산 1승 1무(5득점 2실점)로 국가대표 우승

올림픽대표 선수들
FW : 조규성(46분↔오세훈)
AMF : 김대원, 정승원(46분↔엄원상), 조영욱(65분↔송민규)
DMF : 한찬희(74분↔이승모), 맹성웅
DF : 김진야, 김태현, 이상민(65분↔정태욱), 이유현
GK : 이광연(46분↔안찬기)

국가대표 선수들
FW : 이정협(71분↔김지현)
AMF : 김인성(64분↔나상호), 주세종, 이동경(71분↔이영재), 이동준(84분↔이주용)
DMF : 손준호
DF : 심상민, 권경원, 김영빈, 김태환
GK : 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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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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