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택의(KB손해보험) 선수... 2019-2020시즌 V리그 경기 모습

황택의(KB손해보험) 선수... 2019-2020시즌 V리그 경기 모습 ⓒ 한국배구연맹

 
겨울철 프로 리그 양대 산맥인 프로배구와 프로농구를 통틀어 올 시즌 '공식 연봉 1위'는 남자 프로배구 황택의(1996년생·190cm) 선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V리그 최초로 '한 시즌 최고 연봉 금액'에서 프로배구 선수가 프로농구 선수를 앞선 사례로 뒤늦게 확인됐다. 리그 최고 연봉 선수의 연봉 금액은 여러 측면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남자 프로농구를 주관하는 한국농구연맹(KBL)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매년 시즌별 최고 연봉 선수와 연봉 총액(보수)을 일목요연하게 공개해 왔다. 프로배구를 주관하는 한국배구연맹(KOVO) 측에 시즌별 자료 비교를 요청한 결과, 황택의는 V리그 사상 최초로 한 시즌 최고 연봉 금액에서 프로농구 선수를 앞선 사례로 확인됐다. 또 하나의 역사적 기록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매년 '공식적인 연봉 발표'에서 프로배구 최고 연봉 선수가 프로농구 최고 연봉 선수의 금액을 넘어선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크게 뒤져 왔다. 지난 시즌만 해도 2배 차이가 났다. 2019-2020시즌 프로농구 최고 연봉 선수는 DB 김종규(29세·205cm)로 순수 연봉과 인센티브를 합친 연봉 총액이 12억 7900만 원이었다. 프로배구 최고 연봉 선수는 대한항공 한선수(36세·189cm)로 순수 연봉 6억 5000만 원이었다.

올 시즌인 2020-2021시즌은 상황이 크게 변했다. 프로배구와 프로농구가 공식 발표한 '최고 연봉 선수'는 남자 프로배구 황택의 7억 3000만 원(연봉 7억3천만+옵션 0), 남자 프로농구 김종규 7억 1000만 원(연봉 5억1천만+인센티브 2억)이었다. 이어 여자 프로배구 양효진 7억 원(연봉 4억5천만+옵션 2억5천만), 여자 프로농구 박혜진·김정은·박지수·안혜지 공동 3억 원(연봉 3억+인센티브 비공개) 순이었다.

봄-가을철 프로 리그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최고 연봉 선수의 연봉 금액이 더 높다. 2020시즌 프로야구 최고 연봉 선수는 이대호(롯데)로 연봉 25억 원이다. 2017년에 받은 계약금 50억 원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1년 연봉은 37억 5000만 원에 달한다. 프로축구 최고 연봉 선수는 김진수(전북 현대)로 14억 3500만 원이다. 프로축구는 최강 팀이자 모기업이 투자에 적극적인 전북 현대가 국내 선수 연봉 1~5위와 외국인 선수 연봉 1위를 싹쓸이했다.

실제 '연봉 총액', 황택의보다 높은 선수들도 있다
 
 .

. ⓒ 김영국

 
KOVO는 지난 6월 30일 남자 프로배구 연봉 상위 10위권 선수들의 명단과 순수 연봉 금액, 그리고 여자 프로배구 전체 선수의 연봉 총액을 공식 발표했다.

KOVO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남자배구는 올 시즌과 2021-2022시즌까지 '순수 연봉'만, 여자배구는 올 시즌부터 전체 선수의 '연봉 총액'(순수 연봉+옵션)을 모두 발표한다. 남자배구는 2022-2023시즌부터 여자배구와 마찬가지로 연봉과 옵션 금액을 모두 공개하고, 검증과 위반시 징계 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옵션 금액도 비록 조건이 걸려 있긴 하지만, 사실상 연봉에 해당한다. 팀에 필요한 주전급 선수의 경우 옵션 계약 금액을 대부분 받을 수 있도록 조건(옵션) 자체를 쉽게 설정할 수밖에 없다.

황택의 연봉이 발표된 이후 배구계가 적지 않게 놀랐다. 일각에선 '리그 톱급 선수들보다 연봉이 높고, 그것도 1위는 과하다'도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 비판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황택의 연봉에는 옵션 금액이 없기 때문이다.

KB손해보험 구단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황택의는 순수 연봉만으로 계약했다. 옵션 금액은 0원"이라고 밝혔다. 결국 남자 프로배구도 남자 프로농구, 여자 프로배구처럼 옵션을 포함한 실제 연봉 총액을 전원 공개했더라면, 황택의는 연봉 1위가 될 수 없었다. 5위 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 황택의보다 연봉 총액이 높은 선수가 몇몇 있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구단 관계자들도 상당수 인정하고 있다.

'36년 무관' KB손해보험... 대변화 첫 단추 '황택의 지키기'

그럼에도 KB손해보험이 황택의에게 예상을 뛰어넘은 연봉을 안긴 건 사실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구단이 본격적으로 배구단에 투자를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측면이 있다. KB손해보험은 그동안 남자배구 강팀인 현대캐피탈, 대한항공, 삼성화재 등과 크게 비교됐다. 배구단 역사가 매우 오래됐고, 모기업의 규모도 현대캐피탈, 대한항공, 삼성화재 못지않은 데도 투자에 소극적이고, 대어급 선수를 놓치기만 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 결과 KB손해보험은 '믿기 어려운'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KB손해보험 배구단은 1976년 6월 '최초 전신'인 금성통신 배구단 창단식부터 무려 4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배구 겨울 리그의 시작인 1984년 제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부터 2019~2020시즌 V리그까지 36년 동안 '겨울 리그'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자그마치 '36년 무관'이다.

OK저축은행은 모기업 총수가 배구단에 높은 관심을 갖고, 세계 최정상급 외국인 선수인 시몬(206cm·쿠바)을 영입하는 등 엄청난 투자를 단행하면서 창단 후 불과 2년 만에 2시즌 연속(2014-2015, 2015-2016)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다. 여자 프로배구 한국도로공사가 2017-2018시즌에 팀 사상 최초로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이처럼 프로에서 '적극적 투자'는 전력 상승의 제1 조건이다. 지난 16년 동안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팀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모기업 총수(구단주)의 스포츠 팀에 대한 애정과 적극적 투자, 구단 프런트의 프로다운 운영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 여실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강팀과 전력 평준화는 신인 드래프트, 샐러리캡(팀별 연봉 총액 상한선) 같은 오히려 투자에 발목을 잡는 제도들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이 제도들은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KB손해보험 구단도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내년에 FA(자유계약선수)가 되는 황택의를 다른 강팀들에게 뺏기지 않도록 '선제적 방어벽'을 구축했다. 팀의 미래 핵심 자원이기 때문이다. 황택의는 남자배구 대표팀 최정예 멤버가 출전한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아시아 예선전에서도 한선수와 함께 대표팀 세터로 발탁돼 활약했다.

KB손해보험은 황택의 연봉 구성을 옵션을 0원으로 하고, 전액 순수 연봉으로 채웠다. 그래야 내년 FA 방어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행 KOVO 규정상 FA 이적 선수에 대한 보상금은 해당 선수의 직전 시즌 '순수 연봉'만을 기준으로 200%(보상선수가 있을 경우) 또는 300%를 영입 구단이 지불해야 한다. 옵션 금액은 보상금과 관계가 없다. 이 또한 황택의가 순수 연봉 1위가 된 주요 배경이다.

KB손해보험 구단 관계자는 황택의 연봉과 관련해 "FA 방어 성격이 있는 것도 맞다"며 "무엇보다 구단이 이번에 전임 단장제를 도입하고, 프런트도 수원시 배구단 체육관으로 다 이전을 했다. 발전 TF 팀까지 꾸려서 많은 고민을 했다. 앞으로는 배구단을 잘 만들어보겠다는 회사의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고, 그 첫 번째 단추가 황택의였다"고 설명했다.

인기·연봉 상승, '프로리그 진화' 동반될까
 
 .

. ⓒ 김영국

 
​남녀 프로배구의 샐러리캡과 연봉이 전반적으로 대폭 오른 것은 인기 상승과 위상이 커졌기 때문이다. 남자 프로배구는 V리그 정규리그 전체 '1경기당 케이블TV 평균시청률' 부문에서 2014-2015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0.8%~1%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케이블TV 시청률 1%대는 '대박'으로 평가된다.

여자 프로배구는 지난 시즌 V리그 정규리그 전체 '1경기당 케이블TV 평균시청률'이 1.05%를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프로야구(0.88%)를 넘어섰다. 그러면서 평균시청률 부문에서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배구, 프로농구 등 국내 프로 스포츠 전 종목을 통틀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프로야구와 여자 프로배구의 몇몇 차이점을 감안해도 한국 프로 스포츠 현실에서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관련기사 : '찬밥 신세'였던 여자배구, 시청률 대박난 이유).

프로배구 구단들도 높아진 인기에 걸맞은 운영, 스타 마케팅을 통한 수익 창출 등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아울러 연봉이 높아진 건, 리그 발전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어린 유망주와 부모들이 해당 종목을 선택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배구 연봉 프로농구 프로야구 KB손해보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