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리버풀FC가 마침내 고대하던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리그 선두를 달리던 리버풀은 2위 맨체스터 시티가 26일 런던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첼시와의 2019~20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에서 1대 2로 패하며 잔여 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리버풀은 31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28승 2무 1패, 승점 86을 기록중이었으며 2위 맨시티는 20승 3무 8패, 승점 63을 기록했다. 맨시티가 남은 7경기를 모두 승리하고 리버풀이 모두 패하더라도 양팀의 승점차를 뒤집을 수 없다.

맨시티를 잡은 4위 첼시는 16승6무9패(승점54)가 되어 3위 레스터시티(승점55)를 1점차로 바짝 추격하며 4위까지 주어지는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다만 국내 축구 팬들에게는 반갑지만은 않은 나비효과다. 손흥민의 소속팀인 7위 토트넘(12승 9무 10패, 승점 45)과의 승점차는 무려 9점으로 벌어졌다. 불과 7경기만을 남겨놓은 가운데 뒤집기가 쉽지 않은 격차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리그 중단 기간 동안 손흥민-해리 케인무사 시소코-스티븐 베르흐베인 등 부상 선수들이 모두 복귀하며 마지막 대반전을 노렸던 토트넘은 리그 재개 이후 1승 1무를 기록했지만 첼시와의 격차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토트넘 입장에서는 맨시티가 첼시를 잡아줘야만 그나마 희망이 생기는 상황이었다.
 
 토트넘의 EPL 재개 첫 경기에 출전한 손흥민

토트넘의 EPL 재개 첫 경기에 출전한 손흥민 ⓒ AP/연합뉴스

 
다음 시즌 토트넘이 UCL 진출권을 놓친다면 주축 선수들의 이적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축구선수로서 전성기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아직 프로무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한 번도 들어올리지 못한 손흥민으로서는 앞으로의 커리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된다.

한편 리버풀의 우승은 1989~1990 시즌 이후 무려 30년 만이다. 잉글랜드 1부리그가 1992년부터 현재의 프리미어리그 체제로 재편된 이후로는 첫 우승이다. EPL 이전을 포함하면 리버풀의 1부리그 우승은 이번이 통산 19번째로 최다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회)에 이어 역대 2위의 기록이다.

리버풀은 리그 무관의 세월을 보내던 30년 동안 다사다난한 시간을 거쳤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두 차례(2004~2005, 2018~2019) 우승했지만, 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첼시 등 부자 구단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며 어려움을 겪었고, 한때는 중위권팀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티븐 제라드(스코틀랜드 레인저스 감독)는 선수시절 말년 미국프로축구 시절을 제외하면 내내 리버풀의 원클럽맨으로 활약했으나 번번이 리그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리버풀은 지난 시즌도 맨시티와 역대급 우승경쟁을 펼쳤지만 단 1점차로 아쉽게 리그 우승 트로피는 내줘야했다. 올시즌에는 일찌감치 개막 이후 선두를 독주하고도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리그 중단으로 하마터면 자력 우승 '2승'을 남겨놓고 시즌이 무효화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시간과 고비를 거쳐 힘겹게 확정된 우승이기에 '콥(COP, 리버풀 서포터의 애칭)'들에게는 더욱 값진 시간일 수밖에 없다.

리버풀 재건의 중심에는 역시 독일 출신의 명장인 '노멀 원' 위르겐 클롭 감독이 있다. 그는 독일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2015~2016시즌 도중 리버풀 지휘봉을 잡으며 EPL에 진출했다. 클롭은 특유의 게겐프레싱 전술과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탕으로 약 5년 만에 리버풀은 유럽 최강의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클롭의 리버풀은 2018-19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오랜 무관의 사슬을 끊어내며 아쉬움을 달랬다. 올시즌에는 개막 이후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로 승점을 쌓으며 1888년 시작한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로 가장 빠른(31경기) 시점에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기록을 세웠다. 독일 출신의 감독이 EPL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은 클롭이 최초다.

공교롭게도 리버풀은 다음달 3일 맨시티와 맞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리버풀의 조기우승이 확정되면서 리버풀은 맨시티 선수들로부터 경기전 가드 오브 아너(Guard of Honour)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가드 오브 아너는 유럽축구에서 정규리그 조기 우승팀이 확정되면 해당 팀의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할 때 상대팀이 양쪽으로 도열해 박수를 쳐주며 예우하는 존중의 세리머니다. 물론 의무는 아니고 관행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거부할 수도 있다. 스페인 축구의 대표적인 앙숙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2018년 클럽월드컵 우승에 대한 해석 차이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서로 가드 오브 아너를 거부한 바 있다.

맨시티로서는 첼시전에 패하면서 리버풀의 우승을 조기 확정시켜준 것도 모자라, 바로 다음 경기에서 숙적을 위하여 가드 오브 아너를 하게 되는 것은 이중의 굴욕인 셈이다. 클롭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부임 이후, 매년 EPL 우승을 다투는 라이벌 구도를 그리는 두 팀의 관계를 감안하면 미묘한 장면이다. 다만 두 팀의 관계가 맨유-리버풀이나, 레알-바르샤같은 전통의 라이벌만큼 심각한 악연이 있는 것은 아님을 감안할 때, 무난하게 가드 오브 아너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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