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광주FC와 성남FC의 경기에서 성남 김남일 감독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다.

9일 오후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광주FC와 성남FC의 경기에서 성남 김남일 감독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2020시즌 K리그 개막전의 중요한 관전포인트 중 하나는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신임 감독들의 데뷔전이었다. 올시즌 K리그 1,2부리그 총 22개팀 중 무려 9개팀의 사령탑이 바뀌었다. 이중 처음 프로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초보 감독만 5명이었다.

가장 돋보이는 신고식을 치른 인물은 역시 김남일 성남 감독이다. 올시즌 K리그1(1부리그) 유일의 초보 사령탑인 김남일 감독은 데뷔전에서 승격팀 광주를 2-0으로 제압하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김길식 감독이 이끄는 K리그2 안산(안양 1-0 승)과 함께 데뷔전에서 승리를 맛본 초보 감독은 이들 두 사람뿐이다.

이날 선수 못지않게 주목받은 것이 바로 김남일 감독의 존재감이었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적인 이미지로 유명했다. 데뷔전에서 성남의 팀 색깔에 따라 검은색 정장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흡사 '저승사자'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나왔다.

역시 카리스마로 유명하며 검은 옷을 즐겨입기로 유명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을 떠올리는 팬들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성남 선수들 역시 사령탑과 비슷하게 강인한 인상을 가진 선수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정작 터프한 이미지와 달리 그라운드에서 구현되는 김남일 축구는 오히려 섬세하고 치밀한 스타일에 더 가까웠다. 공격에서는 3년 만에 K리그로 복귀한 베테랑 장신 공격수 양동현의 킬러본능이 빛났지만 그 이전에 공격 작업에서 여러 차례의 약속된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선수들의 활동량이 더 돋보였다.

수비에서도 지난 시즌 K리그2 득점왕 펠리페와 코스타리카 대표 출신 마르코를 앞세운 광주의 강공을 스리백과 포백을 넘나드는 유기적인 팀플레이로 무력화시켰다.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벌써 올시즌 성남 축구를 가리켜 과거 김남일 감독의 인터뷰 발언을 패러디한 '빠다볼'(버터+빠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년 만에 K리그로 돌아온 황선홍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도 수원 FC를 2대 1로 격파하고 첫 승을 거뒀다. 황 감독은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한 대전의 지휘봉을 잡아 올시즌 처음으로 K리그2에 도전장을 던졌다.

대전은 전반 17분 만에 수원FC 안병준에게 프리킥 골을 내주며 리드를 허용했으나, 전반 35분 안드레 루이스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춘 뒤 후반 추가시간 박용지의 극장골이 터지며 황선홍 감독에게 짜릿한 역전승을 선물했다. 반면 이날 패배한 수원의 김도균 감독은 데뷔전을 치른 초보 감독중 유일한 개막전 패배의 주인공이 됐다.

U20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 정정용 감독은 이랜드를 이끌고 '프로 무대 데뷔전'에서 제주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제주 역시 지난 시즌 2부 강등 이후 남기일 감독으로 사령탑이 교체된 팀이었다. 선제골은 홈팀 제주가 먼저 기록했으나 이랜드가 후반 원기종의 값진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2부리그 우승후보로 꼽히는 제주보다는 원정에서 지고 있는 경기를 극복하고 승점 1점을 획득한 이랜드가 더 실리를 챙긴 경기라고 할 수 있다. 막판 VAR(비디오판독)로 골취소만 되지 않았다면 이랜드가 역전승까지 노릴 수 있었던 흐름이었다. 지난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이랜드의 지휘봉을 잡은 정정용 감독은 역시 전력상 전체적인 주도권 싸움에서 제주에 밀렸지만, 특유의 끈끈한 수비 조직력과 뒷심을 선보이며 앞으로 발전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높였다.

'2002 한일월드컵 세대'의 또 다른 영웅 설기현 감독이 이끄는 경남FC는 전남과의 대결에서 0-0 무승부에 그쳤다. 설기현 감독은 첫 경기부터 공격적인 4-2-2-2 전술을 가동했다. 경남은 홈의 우위를 앞세워 주도권을 잡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마무리 능력에서 부족함을 드러냈다. 

승패를 떠나 개막전에서 눈여겨볼 점은 감독교체를 단행한 팀들이 첫 경기임에도 비교적 뚜렷한 고유의 색깔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남일의 성남, 김길식의 안산 등 승리팀들은 물론이고, 무승부를 기록한 설기현의 경남, 정정용의 이랜드 역시 점유율-수비-역습 등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심지어 패배한 김도균의 수원도 경기 내용 면에서는 짜임새 있는 모습으로 오히려 황선홍의 대전을 시종일관 강하게 밀어붙일 정도였다.

오히려 K리그2에서 가장 두터운 선수층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무승부에 그친 남기일의 제주, 외국인 선수 안드레 루이스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드러낸 황선홍의 대전은 승점은 따냈지만 내용상으로는 오히려 패배를 면한 게 다행일 만큼 숙제를 남겼다. 

저마다의 개성과 축구관으로 무장한 감독들의 지략대결을 감상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진 새 시즌이 될 전망이다. K리그 1,2 모두 올 시즌 경기 수가 줄어들고 팀간 전력차가 크지 않은 만큼 이변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감독들의 빠른 적응과 냉철한 위기관리 능력이 어느 때보다 시즌 농사를 가늠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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