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레지던트 명은원(김혜인 분)은 말을 참 예쁘게 한다. 담당이 아닌데 수술실에 들어온 것을 의아해하는 산부인과의 양석형(김대명 분)에게 배우고 싶은 수술이어서라고 설명한다. 왜 이리 일찍 왔느냐는 이어진 물음에는 도와주려고 한다고 대답한다. 엷은 미소를 띤 차분한 얼굴과 낭랑한 목소리의 은원의 말본새는 그녀의 마음본새 역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은원이 수술실을 일찍 찾은 진짜 이유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까다로운 도재영 산모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말은 추한 본심을 아름답게 꾸미기도 한다. 그러나, 행동이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탄로가 나기 마련이다. 산부인과 간호사 한승주(김지성 분)는 말과 마음이 다른 은원의 이중성을 간파하고 은원을 '여우'라 부른다.

매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요리조리 피해가는 은원의 행동으로 동기 레지던트 추민하(안은진 분)는 늘 일복에 시달리는 중이다. 일에 치인 민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잠수까지 탔던 은원에게 건네지는 교수들의 배려와 걱정의 말들이다. 은원을 챙겨주라는 말까지 듣게 되자 민하의 의욕과 사기는 저 바닥으로 떨어진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8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8회 한 장면 ⓒ tvN

 
매일밤 사직을 고민하던 민하에게 건내진 위로

매일밤 사직을 고민하던 민하는 도재영 산모와 태아의 위급상황에 맞닥트린다. 거의 패닉 상태에 가까운 민하의 전화를 받은 석형은 강한 어조로 민하를 다그치며 수술을 시작하도록 지시한다. 휴대전화 너머 "환자를 죽일 거야?"라고 호통치는 석형의 외침에 민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수술을 마친 후 감사 인사를 전하는 산모에게 민하는 감사하다는 말을 되돌린다. 만약 산모와 아기가 무사하지 못했다면 민하는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의사에게 더욱 괴로운 것은 까탈스러운 환자의 백마디 말보다 그 말을 아예 듣지 못하게 되는 상황일 것이다.

석형은 그간 민하의 수고를 알았으나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음을 사과하며, 그녀가 좋은 의사가 될 것이라며 응원한다. 민하 역시 석형이 몰래 보내준 야식 등에 감사를 표하며 자신이 힘들었음을 토로한다. 숱한 말들이 머리에 있어도, 숱한 염려가 마음에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은 말을 대신할 모종의 제스츄어가 따르거나 전적인 신뢰가 쌓인 관계에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그 제스츄어나 믿음도 헷갈리기 십상이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염려한다면 쉽지 않더라도 말로 표현하면 더 좋다. 서운함이 쌓이면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고, 풀리지 않는 매듭만 거듭된 관계는 결국 흔들리게 된다. 힘겨운 상대를 향한 염려의 마음은 숨겨진 것보다 진심을 담은 말로 드러날 때 훨씬 더 아름답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8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8회 한 장면 ⓒ tvN

 
좋은 의사는 책임감 있는 의사라 전하는 석형의 말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은원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책임지지 못한 빈자리를 듣기 좋은 말로 채우려는 사람이다. 알맹이가 없는 은원의 말은 결국 그녀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게 할 것이다. 다소 거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나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는 민하의 말은 예쁘게 꾸민 말보다 진심을 담은 투박한 말의 가치를 제대로 상기시킨다.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준완

율제종합병원 병원장 주전(조승연 분)은 병원 게시판에 올라온 불만글로 인해 골치가 아프다. 흉부외과 레지던트 도재학(정문성 분)은 환자의 가족에게 말실수를 하고, 외과 레지던트 장겨울(신현빈 분)은 마약성 진통제를 요구하는 환자에게 단도직입적인 말로 중독이냐고 힐난한다.

평소 소탈하고 꾸임없는 재학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 들었다면 전화 예절 운운하는 그에게 그저 웃었을 것이다. 전세 사기를 당해 황망한 재학의 개인적인 상황을 안다면 더욱 이해하고 지나갔을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무례한 표현에 대해 사과를 하려 했던 환자 보호자의 입장에선 수긍하기 힘든 말들이다. 더구나 부모에 대한 험담에는 누구나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던가. 생각없이 한 말들은 간혹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감봉 위기에 처한 재학을 구하는 것은 흉부외과의 김준완(정경호 분)이다. 준완은 처벌 위기에 놓인 재학을 위해 거절했던 '과장' 자리를 수락하고, 환자 보호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책임지겠다고 이야기한다. 준완은 수술 중 실수를 하는 재학에게 사적인 문제를 수술실에 가져 오지 말라고 차갑게 이야기했던 사람이다. 말은 하는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지만 감추는 경우도 그에 못지 않다.

준완은 건조한 어조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그는 차갑게 들리는 말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챙기는 사람이다. 준완은 자신의 마음씀을 굳이 알리려 하거나 생색내려 들지도 않는다.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까칠한 화법 탓에 접근하거나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지만, 준완의 이러한 사람됨을 안다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준완은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을 뜻하는 '진국'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익준이나 정원처럼 마음도 예쁘고 말도 예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든 사람이 같을 수만은 없다. 준완의 따뜻한 마음을 아는 순간, 그의 까칠한 말은 매력으로 다가온다.

거듭해 진통제를 요구하는 환자에게 겨울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다. 게시판에 올려진 환자의 불만 글은 정곡을 찔린 사람의 분풀이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에 성이 나 자신의 허물은 쏙 빼고 전한 음해에 가깝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의 겨냥된 말은 피하기가 쉽지 않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8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8회 한 장면 ⓒ tvN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부족함이 없지만, 매번 철두철미 완벽한 말이 나올 수는 없다. 좀더 주의를 다짐하고, 일회성의 일이라면 간담췌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의 말처럼 그냥 흘려보내는 수밖에 없다. 막무가내인 환자에게 겨울이 그리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의기소침해진 겨울을 더욱 아프게 하는 말은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의 '거짓말'이다. 익준이 전해준 정보에 의해 겨울은 정원의 선약이 실은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음을 준 사람이 건네는 거짓말은 그 어떤 말보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이다. 애정 관계에서 있어 사랑을 전하는 말은 더없이 달콤하지만 그에 반하는 말은 쓰디 쓸 뿐이다.

그 어떤 관계에 상관없이 말하는 사람도 기분 좋고 듣는 사람도 기분 좋은 말도 있다. 그것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다. 간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익준의 환자와 가족들은 함께 염려해준 병실의 다른 환자들에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라고 외친다.

감사의 말은 주고받는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감사의 순간은 서로를 생각해주는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의례적으로 쓰일 만큼 감사가 빠진 마무리는 어딘가 섭섭하다. 감사에 진심이 담긴다면 서로에게 기쁨은 배가 된다. 상관없는 제3자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말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말하고 들어도 질리지 않은 말 중 하나이다.

반면, 듣는 사람에게도 말하는 사람에게도 힘든 말도 존재한다. 준완의 어린 아기 환자는 끝내 회복을 하지 못한다. 슬픔에 빠진 부모에게 준완은 심장을 기증해 줄 수 없겠냐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그 말을 듣는 부모의 억장은 한 번 더 무너졌을 것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의사생활> 8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의사생활> 8회 한 장면 ⓒ tvN

 
그러나, 준완은 '다시는 같은 병으로 아이를 잃고 싶지 않다'고 진실되게 이야기한다. 그 말을 해야 하는 준완도 괴로웠으리라.

이처럼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8회엔 '말'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세상에는 해야 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될 말이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상처가 되는 말을 듣기도 하고, 말조심을 하지 못해 혼쭐이 나기도 한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기분 좋은 말이 있는 반면, 말하기도 듣기에도 괴롭지만 꼭 해야 할 말도 있다.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필요 없는 순간이 존재한다. 준완은 아이가 입관하는 자리에 함께한다.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그 자리에는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그 슬픔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때론 침묵이 천 마디 말을 대신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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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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