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노도희 선수가 지난해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동료 선수 임효준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이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임효준은 지난해 6월 17일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훈련 도중 대표팀 후배 A씨를 성희롱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결국 임효준은 지난해 8월 빙상연맹으로부터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임효준 측은 이에 불복해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그 역시 11월 기각됐다. 임효준은 다시 동부지법에 빙상연맹의 징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징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소송 1심 판결까지 징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일단 임효준에게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은 열린 셈이다.

이와 별개로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강제추행 혐의로 임효준을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임효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받았고 선고 공판은 오는 5월 7일에 열린다.
 
 쇼트트랙 임효준

쇼트트랙 임효준 ⓒ 연합뉴스

 
징계와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서도 임효준은 피해자인 A씨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앞서 3월 공판에서 임효준 측은 "장난을 치다 바지가 벗겨지긴 했으나 고의가 없어 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임효준 측은 진지한 반성과 사과 없이 장난이었다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임효준은 합의를 시도한다는 명분 하에 피해자 가족들의 의사에 반해 주거 침입을 하고, 새벽에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다"고 비판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노도희는 27일 <아시아뉴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세간과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른 증언을 내놓았다. 노도희는 "당시 A 선수의 성기는 노출되지 않았다. 바지가 조금 내려가 엉덩이가 조금 보인 정도였다. 제가 봤을 때는 임효준이 A의 바지를 벗기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도희는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도 "위험하거나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엔 일이 이렇게 심각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으며 "A 선수가 임효준의 사과를 받아줬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부터 둘이 친하게 지냈고 훈련도 같이 했는데, 좋게 끝나서 모두가 예전처럼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해당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성추행 논란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도 임효준의 선처를 위한 의견제출서를 작성했다. 여기에도 노도희 선수의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허위 사실이 너무 많다", "A 선수를 비롯한 모두 웃고 있었다",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커진 것이다" 등 사건을 가벼이 여기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도희의 인터뷰가 보도된 뒤 여론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목격자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상황에도 용기있는 고백을 했다는 격려도 있다. 하지만 가해자의 잘못을 축소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가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노도희가 동고동락한 팀 동료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이 여기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노도희의 증언이 순수한 선의였다고 할지라도, 가해자 중심의 해석이라는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사안은 이미 당사자들끼리의 우발적인 장난이나 해프닝으로 무마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성추행은, 무엇보다 피해자의 입장이 우선시 돼야 한다. '장난이었다', '정작 현장 분위기는 좋았다'는 노도희의 주장은 이 사안의 본질과 처음부터 무관한 것이다. 여기에 노도희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바지를 고의로 벗기려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주관적인 해석까지 내놓았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해야 할 제3자로서 선을 넘은 언행에 가까워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처음부터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적절한 행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하여 피해자가 큰 수치와 모멸감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객관적으로 인정되어 연맹과 대한체육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징계를 확정한 것이다.
 
 노도희 선수

노도희 선수 ⓒ 연합뉴스

 
'그때는 함께 웃고 장난치는 분위기였는데 왜 뒤늦게 문제를 삼느냐'는 주장은 피해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결여된 해석이다. 오히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그동안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식의 사건이 쇼트트랙 대표팀 내에서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졌는지다. 내부 기강에 대한 비판이고 노도희 본인도 여기엔 일정한 책임이 있는 당사자에 포함된다. 집단 내부의 성 의식과 보편적 인권감수성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 없이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거나 대변하는 것은 무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용서와 화해는 피해자의 자발적인 의지에 달린 것이다. 가해자나 제3자가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집단 내부에서 벌어진 성희롱이나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것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임효준에 대한 선처를 명분으로 내세운 노도희의 발언은 그 자체로 A씨에게는 큰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사안일수록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혼동하는 것이다. 사건의 책임이나 해결을 오히려 피해자 측의 문제로만 떠넘기는 접근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다. 어쩌면 빙상계만의 문제를 넘어, 아직 피해자 보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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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준 동료선수성추행 노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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