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대표팀 박지수가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귀국하고 있다. 이문규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10일(한국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끝난 2020년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3위를 기록하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에 복귀했다. 2020.2.11

여자농구 대표팀 박지수가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귀국하고 있다. 이문규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10일(한국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끝난 2020년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3위를 기록하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에 복귀했다. 2020.2.11 ⓒ 연합뉴스

 
선수는 문제가 있다고 고백했고, 감독은 현실은 부정했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협회 수장은 이번에도 눈과 귀를 닫고 침묵에 빠졌다. 벌써 몇 년째 계속되고있는 대표팀 논란에 대처하는 한국 농구계의 익숙한 풍경이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진출 티켓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금의환향했다. 축하를 받아야 마땅한 순간이지만 여론은 오히려 들끓고 있다 고생한 선수들에게는 박수가 쏟아졌지만 사령탑 이문규 감독과 대한민국 농구협회에 대해서는 팬들의 성토만 가득하다. 급기야 귀국 기자회견장에서는 선수와 감독이 대표팀의 현 주소에 대해 각기 딴 소리를 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한국 여자농구의 기둥 박지수(KB)는 "이번 대회를 통해 문제가 있었던 것은 다들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뼈있는 발언을 남겼다. 박지수는 "승리한 영국전뿐만 아니라 중국전, 스페인전 모두 최선을 다했다"며 "1승을 목표로 하긴 했지만, 프로팀이 아니라 대표팀이기 때문에 12명 모두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는 의견을 밝혔다. 영국전을 6명으로 치른 이문규 감독의 '선수 혹사' 논란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박지수의 농구협회의 지원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이나 중국은 항상 비시즌에 모여 훈련을 하고 해외 평가전도 치른다"며 "우리는 국내에서 연습경기를 하거나 남자 선수들과 경기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이번에 12년만에 올림픽에 나가는데 아무 것도 못해보고 돌아오고 싶지 않다. 좋은 성적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며 오는 7월 개막하는 도쿄올림픽 본선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박지수는 한국 여자농구의 기둥으로 꼽히지만 아직 22세의 젊은 선수에 불과하다. 아무리 스타라고 해도 엄격한 권위주의가 만연한 한국 농구계에서, 젊은 선수가 감독과 협회의 운영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히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말이었고 대표팀 내에서 가장 인지도와 영향력 있는 박지수가 총대를 맨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박지수가 지적한 부분은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이미 박지수가 소신발언을 하기전부터 언론과 여론은 이문규 감독의 경기 운영과 농구협회의 지원에 대하여 비판적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농구협회의 무능하고 부실한 대표팀 운영이 지적된 것은 벌써 십여 년도 훨씬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죽하면 올림픽 티켓을 따내고 돌아온 선수의 입에서 다시 이런 말이 나오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한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그러나 어린 선수가 정말 어렵게 용기를 낸 것에 비해, '어른들'의 반응은 참으로 무책임했다. 같은 자리에서 이문규 감독은 혹사 논란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부정했다. "장기전도 아니고 도쿄올림픽을 위해 한 경기(영국전)를 이기려는 상황이었다. 대회 전부터 이미 영국을 타깃으로 훈련했지만 연습기간도 짧았고 부상자도 많았다. 그럼에도 하나가 돼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할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자신의 선수기용의 정당성과 올림픽 본선진출의 성과를 강조했다.

이문규 감독을 둘러싼 비판은 이번 최종예선 대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3년간 선수 선발과 훈련 과정, 전술 운용 등 모든 면에서 꾸준히 지적됐던 문제들이었다. 과도한 주전 의존도, 신인 선수 기용과 세대교체에 대한 인식 부재, 현대농구와 맞지않은 구시대적인 전술과 리더십, 여기에 구설수를 부르는 각종 문제적 언행들도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문규 감독이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선수 혹사 논란에 대해서 'WKBL에서도 40분을 뛴다', '부상자가 많아서 경기운영이 힘들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그가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개선할 의지가 있는 인물인가, 과연 2020년대의 한국농구에 어울리는 지도자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만을 들게 했다. 애초에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앞으로 이문규 감독이 계속 지휘봉을 잡아도 대표팀의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선수와 감독의 상반된 발언을 통하여 대표팀을 둘러싼 곪은 문제들이 터져나왔는데도 정작 대한민국 농구협회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한심하다. 귀국장에 참석했던 방열 대한농구협회 회장은 논란이 된 이문규 감독의 재신임 문제에 대하여 "이사회에서 회의를 거쳐 결정할 문제"라며 답변을 피했다. 확인결과 이사회 일정은 아직 잡히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 회장은 최근 농구 팬들의 여론이 좋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문제점에 대한 해명이나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방열 회장이 농구협회 수장으로 취임한 게 2013년이고 재임에 성공하며 햇수로 벌써 8년째다. 그런데 방 회장이 논란에 대처하는 방식은 늘 이런 식이다. 당시 전임 회장의 무능을 거침없이 질타하며 "한국농구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겠다"고 큰 소리쳤던 방 회장의 호언장담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하지만 방회장의 임기 내내 한국농구의 국제 경쟁력은 여전히 정체되어있고 대표팀 운영을 둘러싼 잡음은 매년 끊이지않는다. 비판 여론이 거세질 때마다 방 회장은 사과나 대안을 내놓기보다는 한발 뒤로 숨어버린다. 이번에도 그저 시간이 지나서 여론이 적당히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걱정스러운 것은 오히려 박지수만 농구계 관계자들이나 어른들에게서 공연한 이야기를 했다고 질타를 받지나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남자농구의 양동근, 은퇴한 하승진이나 여자배구의 김연경 등은 각기 자신이 소속된 대표팀이나 리그의 잘못된 부분에 거침없는 지적을 하는 소신 발언으로 큰 이슈가 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협회가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적극적인 공론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경우는 드물었다. 적당히 여론을 수습하는 미봉책으로 달래기를 하려들거나, 아니면 선수가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킨다고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식으로 문제를 덮으려고 했을뿐이다.

항상 이런 식으로 문제를 외면하려 든다면 리그나 대표팀의 발전은 없다. 선수가 한두번 용기내 조직의 내부 문제를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것이 공허한 메아리도 그치게되면 결국은 모두가 현실에 체념하고 침묵하게 된다. 간절하게 변화를 호소하는 젊은이와, 어느덧 '꼰대'가 되어버린 어른들, 과연 한국 여자농구의 발전을 위하여 진심으로 용기를 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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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소신발언 이문규감독 방열회장 대한민국농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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