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방송된 KBS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 출연한 KBS 강병수 기자.

지난 30일 방송된 KBS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 출연한 KBS 강병수 기자. ⓒ KBS

 
설 연휴 마지막날이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4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던 지난 27일 저녁, <남산의 부장들>을 관람 차 직접 방문한 CGV 왕십리와 엔터식스 역시 사람들로 붐볐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있었지만, 크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다.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KBS 기자의 눈도 다르지 않았던 듯 싶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3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26일, 당직 근무 중이던 KBS강병수 기자는 어느 보도국 간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시민들이 많은 공공장소에 가서 취재해 보라"고. 30일 공개된 KBS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서 KBS 강병수 기자가 직접 취재하고 확인한 서울 번화가 분위기는 이랬다.

"(간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3번째 확진자가 나왔고, 사람들 불안감이 커진 거 아니냐. 실제로 커져서 밀집한 공간에 (사람들이) 없고, 의심을 해 볼만 하잖아요. 그걸로 기사를 써 보자. 현장에 나갔더니, 어우! 지나치게 사람이 많더라고요. 영등포 타임스퀘어나 CGV 극장이나 사람이 진짜 많았어요. 설대목이라 사람이 정말 많더라고요.

기사를 쥐어짜낸다면... 마스크를 쓴 사람이 있었어요. 근데 추워서 썼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불안해한다고 끼워 맞출 순 있지만, 그럼 욕먹잖아요. 취재한 바로는, 그런 불안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실제로 인근 약국도 마스크가 많이 팔리나 돌아다녀 봤는데, 한국 분들이 많이 이용하는 약국은 그런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인 밀집지역은 마스크가 동 날 정도로 많이 사간다고는 하는데."


강 기자의 위 취재는 결국 '킬' 당했다고 한다. "쥐어 짜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게 맞지 않겠는가. 언론의, 기자의 '쓰지 않을' 권리 혹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불과 며칠 전 얘기다. 중국 우한과 비슷한 인구 천만을 자랑하는 서울에선 큰 불안감이 감지되지 않았다. 지난 20일 중국인 여성이라 확인된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오고 설 연휴를 맞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사실 정부 대응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3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여행객이나 방문 귀국자의 수가 많기 때문에 정부는 설 연휴 기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24시간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통해 국민들에게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마실 것"을 당부했다.

같은 날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역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중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를 통한 국내 유입 환자가 증가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정부는 방역역량을 총동원해 대비하고 있고 단계적으로 대응조치를 강화하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민들의 경각심은 커져도 불안감은 커지지 않도록 방역당국은 정부 대응절차, 정보를 신속·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라면서.

그랬던 분위기가 연휴 직후 급랭했다. 물론 별다른 이슈가 없던 설 연휴 기간 지상파 방송을 필두로 3, 4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추이를 눈여겨보긴 했다. 뜨거웠던 것은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에 대한 열기였다. 지난 23일 올라온 이 청원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6일 20만을 돌파했고, 28일 50만을 돌파하며 국민들의 불안을 입증하는 듯 보였다.

25일 이후 폭증한 이 청원은 설 연휴 SBS와 <연합뉴스>를 필두로 적지 않은 언론들이 '경마장식' 보도를 통해 앞다퉈 기사화한 바 있다. 그 기간 3, 4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근래 들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한 청원이기도 했다.

적지 않은 언론이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SBS도 26일 이 청원을 기사화했고, 페이스북 페이지의 문구가 문제시되자 같은 날 오후 기사와 페이스북 게시글을 삭제했다(관련 기사 : 신종 코로나에 한국 언론이 먼저 쓰러지나 http://omn.kr/1meje).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둘러싼 한국 미디어의 부화뇌동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만했다.

물음표의 증거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 ⓒ 뉴스공장


"다른 재난과 달리 감염병 보도는 좀 달라요. 산불 같은 경우는 아무리 저쪽 지역에서 확대가 되고 크게 번져도, 그걸 뉴스나 SNS 등 그 어떤 플랫폼을 통해 건너 듣는 사람들이 자기 일은 아니라는 선이 있어요. 근데 감염병은 (다른데), 중국에서 몇 명 늘어나는데 서울에 있는 제가 불안하게끔 만들 수 있는 게 미디어에요.

미디어는 그런데 대중의 영합을 하려는 속성이 있잖아요. 공포심과 '이게 남의 일이 아니야'라고 당신의 일일 수도 있음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려는 경향이 높아요.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발표 신속한 정보공개, 이런 것들에 대한 발표와 공신력 있는 채널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지켜봐 주시는 게 조금 더 객관적이고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거죠)."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 출연한 박광식 의학전문기자는 감염병 보도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원론'이다. 그러면서 박 기자는 최근 급속도로 퍼진 정체불명의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영상에 대해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올라온 개인 영상들이 얼마나 검증이 됐는지 저도 물음표"라고 덧붙였다.

적지 않은 방송이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크'를 보도 중이다. 공신력 있는 기성 언론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음표가 필요한 것은 비단 소셜 미디어 속 가짜뉴스들 뿐일까. 앞서 언급한 청와대 청원을 둘러싼 경마장식 보도처럼, '신종 코로나' 사태를 둘러싼 전통 미디어의, 각 방송사의 보도는 의혹들을 해소하고 국민 불안을 줄이는 쪽으로 향했던 것이 맞을까.

30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이 와중에 '반중 혐오' 부추겨 조회수 올리는 언론들>이란 언론 모니터링에서 예로든 21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보자. 중국에서 거주하며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이 교민 학부모의 인터뷰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동시에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중국인 혐오'성 '카더라' 발언을 고스란히 내보낸 셈이 됐다.  

"저희 아이가 이제 국제학교를 다녀서 학교 모임이 있었어요. 부모가 중국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그 사람들이 폐렴 환자 얘기가 나오니까 하는 말이 자기들은 문제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한국이 너무 가까운데 비행기 값만 내면 한국 가서 다 치료가 가능한데 중국에 왜 있냐는 거예요(중략).

('이번에 우한에서 넘어온 분도 일부러 왔다는 얘기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에서 걸릴 정도면 비행기 거리 시간 얼마 안 되는데. 병원은 낮 시간에 갔을 거고 비행기는 아마 당일 아니면 그다음 날 탔을 텐데,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그냥 일부러 갔다고 다 그래요."


27일 채널A의 <약국에 줄선 중국인들, 마스크 싹쓸이>나 <우한에서 6천4백명 입국… 제주 비상> 보도는 전형적인 '중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였다. 채널A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마스크 사재기가 폭증하는 사례는 외면한 채 중국인들의 마스크 구입만을 문제 삼았고, 6천여 명의 중국인 입국자가 어느 지역으로 이동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가 비상 상태"라고 무책임하게 보도했다.

29일 우환에서 소환된 교민들이 격리될 지역으로 결정된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 주민들의 반발을 전하는 JTBC <뉴스룸>도 눈에 띄었다. 이날 주민들이 촛불시위 중인 진천을 현장 연결, 취재 기자가 '밀착카메라'식으로 현장을 훑는 리포트를 방송한 JTBC는 관련 내용을 비교적 차분하게 전달한 지상파 3사와 비교해 한껏 격양된 분위기였다. 자칫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논조와 그림을 어떻게든 자제할 수 없었을까. 

강조되는 언론의 역할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의 한 장면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의 한 장면 ⓒ SBS


이러한 문제점을 의식한 듯,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30일 각 언론사와 조합원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보도·방송에서 혐오 및 인종차별적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각 당부하는 긴급 지침을 통해 "인권을 존중하고, 차별과 혐오표현에 대해 더욱 신중해야 하는 언론의 책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역시 이례적으로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종합 점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확산하는 신종 감염병에 맞서 범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 불신과 불안을 조장하는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포는 방역을 방해하고 국민의 안전을 저해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며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송 외에 일간지 및 각종 매체들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참담한 보도가 끊임없이 양산되는 중이다. KBS 의학전문기자의 당부와는 다르게 공신력 있는 미디어들이 갈등과 불안 증폭시키고, '중국인 혐오'를 부추기며, 보수야당의 정치공세를 거르지 않고 보도했는지 스스로 물음표를 던져 볼 일이다.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상공에서 찍은 360도 드론 사진입니다.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진원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돌아오는 교민들이 2주 동안 격리되는 곳입니다(중략) 사진을 찍은 이명익 기자는 방역 통제가 충분히 가능한 시설로 보인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직접 보고 판단하시죠."

30일 <시사IN>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360도 각도의 드론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그저 진천‧아산 주민들의 격한 반발만 전하는 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해당 사진을 본 시민들은 분명 "귀국 교민들의 안전은 물론, 완벽한 차단을 통해 지역사회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던 정부의 설명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지금일수록 공신력 있는 매체가, 파급력 큰 방송들이 국민적 불안감을 줄여나가는 방향의 보도에 힘을 쏟아야 할 때가 아닐까.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의 가파른 증가와 함께 그 배경을 파헤치고, 바이러스만큼 무서운 차별과 혐오, 배제에 대한 거부의 목소리에 더 주목해야 하면서. 국민 생명과 안전이 걸린 만큼, 정부의 미흡한 대응이나 실책이 발생한다면 그 역시도 날카로운 질타를 가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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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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