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지시하는 김학범 감독 22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랑싯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과 호주의 4강전. 김학범 감독이 선제골의 주인공 김대원을 교체시키며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작전 지시하는 김학범 감독. ⓒ 연합뉴스

 
'승부사' 김학범 감독이 한국축구사에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태국에서 진행 중인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 파죽의 5연승 행진을 내달린 김학범호는 사우디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이미 도쿄올림픽 본선진출을 확정했다.

9회 연속 올림픽 본선진출은 세계축구사에 유례없는 큰 업적이다. 김학범 감독으로서는 지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거둔 또 한번의 성공이기도 하다.

저니맨 이미지가 강했던 김학범 감독

김학범 감독이 2018년 김봉길 전 감독의 뒤를 이어 23세 이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만 해도 평가는 엇갈렸다. K리그에서는 나름 명성을 날렸지만 성남 1기 시절 이후로는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이미지가 강했고, 소위 말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지도자도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는 국내파 감독들에 대한 이른바 'FC 코리아' 팬들의 불신 여론이 한창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우려한 대로 김학범 감독은 사령탑 부임 초기부터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간판스타였던 주장 손흥민의 병역문제로 축구대표팀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어느때보다 뜨거웠고, 김 감독이 강력하게 원했던 공격수 황의조의 와일드카드 발탁을 둘러싸고 '인맥 축구'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선수단 소집 이후 평가전 한번 치르지 못하고 시작된 아시안게임에서는 조별리그 말레이시아전에서 충격 패를 당하며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특유의 뚝심으로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당시 조별리그에서의 부진으로 2위에 그치며 이란-우즈벡-베트남-일본 등 까다로운 팀들을 연이어 만나게 된 것과 살인적인 일정은, 오히려 김학범호의 위기의식과 집중력을 자극했고 선수단이 외부의 비판과 압박에 맞서 똘똘 뭉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황의조는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9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으로 득점왕에 오르는 통쾌한 반전으로 근거없는 비난을 퍼붓던 안티팬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김학범호는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정상에 오르며 2014년 홈에서 열린 인천 대회에 이어 2연패에 성공했다.

이번 AFC U23 챔피언십을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조별리그부터 중국-이란-우즈베키스탄 등 까다로운 팀들과 죽음의 조에 편성됐다. 이강인-백승호 등 유럽파들의 합류가 불발되며 김 감독이 원하는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도 못했다. 몇몇 스타 선수들을 제외하면 '골짜기 세대'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선수들의 이름값도 과거보다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학범호는 여전히 강했다. 조별리그를 3연승으로 가볍게 통과한 데 이어 토너먼트에서는 요르단(2-1)과 호주(2-0)까지 넘고 9회 연속 올림픽 티켓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8강전까지는 4경기 연속 아슬아슬한 한 골 차 승부가 계속됐고, 쉽지 않은 경기내용에 항상 아쉬움도 있었지만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매 경기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는 저력이 더 돋보였다.

유연한 리더십의 소유자
 
김학범 감독 이번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 보여주고 있는 김학범 감독의 로테이션 시스템과 용병술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김학범 감독 이번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 보여주고 있는 김학범 감독의 로테이션 시스템과 용병술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김학범 감독의 노련하면서도 유연한 용병술은 이번 대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보통 감독에게 소신과 아집, 융통성과 우유부단함은 종이 한창 차이가 되기 쉽다. 유능한 감독이라도 뚝심과 유연함을 동시에 갖추기는 어려운 일이다. 김 감독은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내린 결정에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결단력을 보여주면서도 상황에서 맞춰 적절히 변화를 주기도 하는 유연한 리더십으로 팀전력을 극대화했다.

이번 대회 김학범호의 최대 성공작은 역시 무한 경쟁과 로테이션을 꼽을 수 있다. 김학범호는 매 경기 상대마다 다른 선발라인업을 들고나오는 파격적인 경기 운영을 선보였고 이미 조별리그에서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필드플레이어들을 고르게 활용했다. 축구에서 단기간에 잦은 라인업 변경은 오히려 조직력에 혼란을 가져올 위험이 컸지만, 김학범호는 오히려 체력안배와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2주간에 5~6경기를 치러야 하는 빡빡한 강행군 속에서 김학범호의 로테이션은 선수들의 체력부담을 줄이고 건강한 주전경쟁을 통하여 동기부여와 집중력을 극대화시켰다.

또한 각 포지션마다 스타일이 다른 선수들을 폭넓게 선발하면서 다양한 전술적 변화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것도 김학범호의 성공 요인이다. 김학범 감독은 경기 내용상 밀리는 흐름이 찾아올 때도 적절한 선수교체와 전술변화를 통하여 위기 상황을 최소화했다. 중국전의 이동준이나 요르단전의 이동경처럼 결정적인 순간 극장골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것도 모두 교체선수들이었다.

알고 보면 김학범 감독은 여러모로 독특하고 흥미로운 축구 인생을 걸어온 인물이다. 현역 시절에는 크게 유명했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경력을 거쳐 지도자로서 뒤늦게 빛을 발했다는 점에서는 주제 모리뉴(토트넘), 박사 학위까지 따낸 '학구파' 이미지는 아르센 벵거(전 아스널), 감독으로서 준수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고 구단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저니맨'의 이미지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삼프도리아)를 연상시킨다. 또한 그의 가장 유명한 별명인 '학범슨'은 전성기였던 성남FC 감독 시절, 당시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꼽혔던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김학범 감독은 축구 지도자로서도 사회인으로서 누구보다 다양한 이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이런 풍부한 경험은 김학범 축구가 기존의 관행이나 고정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진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사실 지도자 경력의 전성기로 꼽히는 성남 시절만 해도 김학범 감독은 오히려 주전 의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외적으로는 선수들에게 엄격한 강성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이 23세 이하 대표팀을 맡은 뒤에는 대표팀과 국제무대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나 어린 선수들과의 소통 문제에 인한 불협화음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절친 박항서 감독도 그러했듯이, 지도자에게 성공과 실패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연륜이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학범 감독의 성공은 국내파 지도자들과 K리그 출신, 50대 이상 베테랑 지도자들의 역량에 대한 일부 축구팬들의 막연한 선입견을 극복했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나이가 많다거나 스타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국가대표팀이나 요즘 축구의 트렌드가 맞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내친김에 챔피언십 사상 첫 우승은 물론, 다가오는 도쿄올림픽에서도 김 감독이 홍명보 호가 이룬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업적을 뛰어넘는 도전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김학범호에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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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감독 도쿄올림픽 23세이하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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