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은총으로> 포스터

<신의 은총으로> 포스터 ⓒ 찬란

 
1970년부터 약 40년간 리옹 교구의 프레나 신부가 보이스카웃 그룹에서 가한 아동성범죄 사건을 바탕으로 한 <신의 은총으로>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가톨릭의 위선에 대해 말한다. 침묵과 용서,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주께서 다 바라봐 주시고 있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 침묵의 대화를 나누며 인간의 구원을 위해 피를 흘린 예수 그리스도처럼 타인을 용서할 줄 아는 관용의 자세를 갖추라 이야기한다.
 
독실한 신자 알렉상드르(멜빌 푸포)는 이런 가르침 앞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성적으로 괴롭혔던 프레나 신부가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에 그는 교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식으로 항의한다. 하지만 돌아온 건 침묵하고 용서하라는 대답뿐이다. 알렉상드르가 원하는 건 두 가지다. 프레나 신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그의 사제 자격 박탈.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프레나 신부와 오래전 일이니 용서하고 침묵하길 바란다는 바르바행 추기경을 비롯한 이들의 말은 알렉상드르를 더욱 괴롭힌다.

작품은 알렉상드르와 그 피해자들이 '라 파를 리베레(해방된 목소리)'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교구와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변형과 심화를 통해 담아낸다. 만약 이 작품이 시험지라 한다면 높은 완성도를 지녔다 할 수 있다.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 찬란

 
먼저 변형의 지점에서 살펴본다면, 이 작품은 고발영화가 지니는 전형적인 패턴을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매력적으로 비튼다. 알렉상드르에 이어 또 다른 성범죄 피해자로 등장하는 프랑수아(데니스 메노체트)는 그와는 다른 성향을 지닌다. 점잖게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알렉상드르와 달리 잊고 싶었던 기억을 끄집어낸 프랑수아는 폭주기관차처럼 달린다. 말 그대로 불도저 같은 그의 성향으로 사건은 급격한 진전을 이룬다.
 
이런 진전은 여전히 종교 내에 속하며 프레나 신부에게만 적대를 품은 알렉상드르와 달리 현재는 무교이며 자신의 고통에 침묵한 리옹 교구 전체를 고발할 계획을 지닌 프랑수아의 성향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세 번째 주인공 에마뉘엘(스완 아르라우드)은 그때의 기억 때문에 엉망이 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프레나 신부의 기사를 보고 발작을 일으키는 등의 모습으로 그때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준다. 그도 '라 파를 리베레'에 합류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알렉상드르-프랑수아-에마뉘엘 순으로 주인공이 바뀌는 전개는 호기심을 더한다. 아울러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이는 하나의 사건을 깊게 파헤치며 미스터리의 실상을 알아내고 기나긴 법정 싸움을 통해 분노를 유발해내는 기존 고발영화와는 다른 진행이다. 여기에 문제를 바라보는 이 세 인물의 다소 다른 시각은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 찬란

 
프레나 신부는 자신의 죄를 부인한 적 없다. 범죄 사실이 걸릴 때마다 죄를 인정했으며 그때마다 잠시 교단 외곽에 나가 있다 다시 돌아온다. 이런 점에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지는 부분에서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이에 감독은 서로 다른 성향의 세 주인공을 통해 왜 그의 범죄가 40년 간 은폐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폐쇄적인 가톨릭의 성향 때문만이 아니다.
 
피해자들의 제보를 받던 알렉상드르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과거 교단에서 일했던 여성은 조카들이 성범죄의 피해자란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조카들은 가족이 이 사실을 알고 상처받고 무너질까봐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실을 숨겼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프랑수아의 것이기도 하다. 
 
프랑수아가 성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자 그의 부모는 보이스카웃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과 캠프에 가고 싶었던 프랑수아의 형은 화를 내며 신부는 어린 아이들만 건드리니 자신은 괜찮다 말한다. 이날 이후 형은 부모가 프랑수아만 신경 써주고 있다는 생각에 오랜 시간 피해의식을 지니며 가족 사이에 균열을 낸다. 또 알렉상드르의 부모는 '이미 30년 전 일인데 지금 꺼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란 말로 문제를 외면하려 한다. 종교를 향한 가족의 믿음과 가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은 침묵과 용서의 강요로 이어진다.
 
'라 파롤 리베레' 안의 갈등 역시 이런 부분이다. 처음에는 프레나 신부를 고소한다는 같은 목적으로 모인 이들은 그 방식에 있어 갈등을 겪는다. 교회 전체를 상대하려는 프랑수아의 과격한 방법은 반감을 사고 여전히 종교에 속해 있는 알렉상드르는 그 진심을 의심받기도 한다. 이외에 여러 가지 모습들은 과연 프레나 처벌 이후 이들이 진정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스스로 '얼룩말(지능이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에마뉘엘은 프레나 때문에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 말한다. 하지만 같은 피해자인 알렉상드르와 프랑수아는 건실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 차이는 프레나 신부 처벌 이후 에마뉘엘의 삶에 미묘한 영향을 끼친다. 다른 피해자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면 되지만 에마뉘엘은 '라 파롤 리베레'가 삶의 전체이며 자신이 찾은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갈등을 겪으며 에마뉘엘은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반복한다.  
 
<신의 은총으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종교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다. 과연 침묵과 용서는 개인의 삶에 있어 도움이 되는 것인가. 정의와 진실은 이루기 힘든 것이지만 그 앞에는 해방과 치유라는 빛이 있다. 그 길을 막는 게 종교가 말하는 침묵과 용서가 아닐까, 영화는 되묻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신의 은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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