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를 앞두고 야구 관련 원로 인물 한 명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메이저리그 투수로서 가을야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돈 라슨이 2일(이하 한국 시각) 식도암을 앓다가 타계했다. 향년 90세.

1929년 8월 7일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난 라슨은 1947년부터 1967년까지 메이저리그 투수로 활약했다. 통산 누적 기록이 많지 않을 뿐더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라슨이 야구 역사에서 유명한 이유는 단 한 경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 야구 포스트 시즌 역사를 통틀어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유일한 투수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에서 노 히터 게임으로 범위를 확대하더라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로이 할러데이(2010 NLDS 1차전) 뿐이다.

농구 장학생 출신 투수, 한국 전쟁 참전 용사가 되다

인디애나 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라슨은 학생 시절에는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다. 농구 실력으로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대학에 진학했지만, 1947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볼티모어 오리올스 전신) 스카우터에 의해 투수로 계약하게 됐다.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투수로 활약했지만 처음에는 평범한 투수였다. 그러던 중 라슨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군에 지원하면서 한국 전쟁 참전 용사가 됐다. 휴전 이후 전역하면서 마이너리그 팀에 복귀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전역한 뒤 후반기에 메이저리그 콜업까지 받은 라슨은 1953년 시즌 선발 등판 기회도 얻었다. 그 선발 등판 기회에서 호투했던 라슨은 메이저리그 데뷔 승리의 영광도 누렸으며 1954년 시즌까지 브라운스에서 활약했다.

이후 라슨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이 때부터 본격적인 선발투수로 활약하게 됐다. 메이저리그에서 자리잡은 이후 한동안은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는 정도로만 활약했던 라슨이었지만, 그에게 역사적인 기록을 남길 기회가 찾아오게 됐다.

1956년 월드 시리즈 5차전, 가을의 사나이가 된 라슨

1956년 라슨은 양키스에서 풀 타임을 치르면서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다. 투수이면서도 대타로 여러 차례 출전했는데, 1956년에는 투타에서의 고른 활약으로 그랜드 슬램을 날리기도 했다. 라슨이 선수로 활약하던 시대는 지명타자 제도가 시행되기 전이었다.

1956년 개막전 선발 라슨의 활약으로 양키스는 포스트 시즌에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당시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브루클린 다저스로, 당시 연고지를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하기 전이었다.

양키스와 다저스의 대결로 기대를 모은 1956년의 월드 시리즈는 팽팽한 접전 속에서 서로 2승 2패로 호각세를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5차전 양키스의 선발투수로 예고된 선수는 라슨이었다.

그리고 라슨은 이 월드 시리즈 5차전에서 인생투를 기록하게 됐다. 다저스의 타선을 상대로 단 한 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97구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라슨을 상대로 타석에서 3볼 이상을 얻어낸 선수도 피 위 리즈가 한 차례 기록했을 뿐이었다.

양키스의 타선에서는 스위치 히터 미키 맨틀이 솔로 홈런을 날렸다. 행크 바우어가 1타점 적시타를 추가하면서 2점을 지원했다. 보통 경기 같았으면 포스트 시즌에서 2점 지원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라슨이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면서 득점 지원 2점이면 충분했다.

라슨의 퍼펙트 게임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나온 퍼펙트 게임이었다. 이후 정규 시즌에서는 몇 차례 퍼펙트 게임이 나왔지만, 포스트 시즌에서의 퍼펙트 게임은 지금까지도 라슨의 경기가 유일하다.

라슨의 퍼펙트 게임으로 인해 먼저 3승을 기록한 양키스였지만, 6차전 경기를 다시 다저스가 승리하면서 이 월드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7차전 경기를 다시 양키스가 승리하면서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5차전에서 퍼펙트 게임으로 가장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라슨은 월드 시리즈 MVP까지 수상했다.

라슨의 뜨거웠던 가을, 그 이후...

1956년 월드 시리즈 MVP로 뜨거운 가을을 보냈던 라슨은 그러나 그 다음 시즌부터 다시 평범한 투수로 돌아갔다. 1957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활약을 보이면서 양키스의 월드 시리즈 진출에 기여하기는 했다.

하지만 1957년의 라슨은 우리가 생각하던 1956년의 그 라슨이 아니었다. 월드 시리즈 7차전 선발로 등판했지만, 이 때는 2.1이닝 만에 강판되면서 전혀 다른 투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1957년 월드 챔피언은 양키스가 아닌 밀워키 브레이브스, 현재 애틀랜타에 연고를 두고 있는 그 팀이 차지했다.

이후 양키스에서 점점 존재감이 줄어들던 라슨은 1959 시즌을 마친 뒤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전신)로 트레이드됐다. 1961 시즌을 마친 뒤에는 다저스처럼 뉴욕에서 캘리포니아 주로 연고지를 옮겼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됐다.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 뒤 라슨은 선발투수에서 구원투수로 전환하면서 다시 한 번 불꽃을 태웠다. 1964년에는 당시 내셔널리그에 있던 휴스턴 콜트 45s(현 애스트로스 전신)로 트레이드되어 다시 선발 기회를 얻었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동안 라슨이 데뷔했던 브라운스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볼티모어로 연고지를 옮겨 팀 이름도 오리올스로 바꿨다. 라슨은 친정 팀인 오리올스로 복귀했지만 오래 있지 못했다. 1967년에는 시카고 컵스에서 뛰었지만 그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도 기회를 잃었다.

결국 1968년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머물던 라슨은 은퇴를 선택했다. 은퇴 이후 메이저리그 프런트에서도 잠깐 일했지만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나 생활이 여유롭지 못하여 자신이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1956 월드 시리즈 5차전 때 입었던 유니폼을 팔아 손자 대학비에 보태기도 했다.

역사적인 기록 남긴 라슨, 역사의 흐름과 함께 떠났다

1999년 7월, 양키스에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던 요기 베라를 기념하는 행사에 라슨을 초청했다. 공교롭게 라슨이 퍼펙트 게임을 달성할 때의 포수가 베라였고, 라슨이 기념 행사에서 시구를, 베라가 시포를 맡았다.

그 1999년 요기 베라 데이 행사 때 메이저리그 16번째 퍼펙트 게임이 탄생했다. 당시 양키스의 선발투수였던 데이비드 콘이 이 날 경기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 전신)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해 양키스는 또 하나의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추가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그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통산 기록에서 돋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라슨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진 못했다. 더구나 저니맨이었기 때문에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구단도 없었다.

라슨의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 통산 성적은 81승 91패 평균 자책점 3.78이었다. 대신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투수이면서도 타격에 상당한 능력이 있어서 그랜드 슬램을 기록했을 정도다. 통산 타율 0.242로 투수 치고 좋은 편이며, 대타 출전 66회에 홈런이 14개나 된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야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은 확실하다. 포스트 시즌에서 개인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선수는 지금까지 라슨 뿐이며, 노 히터 게임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할러데이 뿐이다. 생애 첫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노 히트에 성공한 할러데이는 2010년 정규 시즌에서의 퍼펙트 게임도 달성하며 사이 영 상을 받았다.

메이저리그가 아닌 다른 리그의 포스트 시즌을 보더라도 KBO리그 1996년 한국 시리즈 4차전 정명원(kt 위즈 투수코치)의 노 히터 게임 정도다. 배영수(두산 베어스 코치)가 2004년 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 히트를 기록한 적은 있지만 연장 12회 0-0 무승부로 끝나는 바람에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2007년 일본 시리즈 5차전에서 합작 퍼펙트 게임(패전투수 다르빗슈 유)이 나온 적은 있지만 일본은 포스트 시즌이나 합작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 선발투수였던 야마이 다이스케가 1점 차 리드 상황에서 손가락 물집이 터지는 바람에 9회에 이와세 히토키(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 패전투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라슨은 포스트 시즌 투구 대기록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투수였다. 그리고 라슨은 흐르는 역사와 함께 역사 속의 이름으로만 남게 됐다. 월드 시리즈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을 때 공을 받았던 베라는 먼저 떠났고, 라슨도 그의 뒤를 따라가게 됐다. 그러나 라슨과 베라가 달성했던 퍼펙트 게임은 여전히 야구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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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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