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강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를 치르는 축구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18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모하메드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최종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남미 최강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를 치르는 축구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18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모하메드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최종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의 빌드업 축구가 한국 축구대표팀에 가장 적합하다."(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이 11월 A매치 2연전에서 레바논(월드컵 예선, 0-0), 브라질(친선경기, 0-3)을 상대로 1무 1패, 최근 A매치 3연속 무득점의 졸전을 펼치고 돌아온 뒤 연 귀국 기자회견에서 나온 벤투 감독 발언이다. 내용도, 결과도 모두 좋지 못했지만 벤투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축구철학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벤투 감독의 자신감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 그가 사령탑으로 취임한 지난해 8월 이후 한국은 A매치 21경기에서 12승7무2패의 호성적을 기록했다. 이중에는 콜롬비아, 우루과이 등 세계적 강호를 상대로 거둔 승리도 있다. 최근 북한-레바논 원정은 무관중 경기와 불안한 현지 정세같은 특수한 상황들이 있었고, 브라질전은 졌지만 한국보다 월등한 전력의 강호인데도 공격적으로 맞불을 놓는 등 점수차와 별개로 희망적인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투 감독의 축구에 대한 불안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악화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의 전술과 선수기용에 대한 경직성에 있다.

언론에서 벤투 감독의 축구를 정의하는 빌드업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전술이 아니라 이른바 점유율 축구를 위한 수단이다. 후방에서부터 안정적이고 정교한 패스를 통하여 볼소유시간을 늘리고 찬스를 만들어낸 것이 빌드업이다. 이러한 빌드업을 통하여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가 바로 점유율 축구다.

사실 빌드업은 벤투 감독만의 독특한 철학도 아니고 현대축구에서 대부분의 팀들이 보편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기초과정같은 플레이다. 과거와 달리 현대축구에서는 수비수나 골키퍼들에게도 기본적인 수비능력 외에 발기술과 시야를 갖춰서 후방에서부터 빌드업을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점유율 축구의 정점에 올라있는 맨체스터시티나 바르셀로나같은 팀들의 경기에선 이러한 빌드업을 통하여 아예 상대를 수비 진영에 가둬놓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장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빌드업이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선수들 각자가 다양한 빌드업 상황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패스능력이나 전술 이해도를 고르게 겸비하는 것, 그리고 상대팀들이 우리가 원하는 경기 템포나 스타일에 맞춰주는 경우다. 전자는 까다롭고 후자는 불가능에 가깝다.

점유율 축구가 이론적으로 훌륭한 전술임에도 실제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셉 과르디올라(맨시티) 감독은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를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일각에선 그가 지도했던 팀들이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시티 등 언제든지 당대 최고의 스타선수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빅클럽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쓴소리를 한다. 최고수준의 선수들이 모여서 매일같이 손발을 맞추는 클럽팀도 어려운데, 하물며 주축 선수들이 2~3일 짧게 모여 호흡을 맞추는 대표팀에서 점유율 축구를 완벽하게 구현하기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바르셀로나나 스페인 대표팀같은 경우, 선수들이 유소년 시절부터 성인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빌드업과 점유율 위주의 축구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이런 연속성이 없다. 연령대별 대표팀이나 각 프로팀만 해도 지도자에 따라 축구철학이나 전술이 모두 제각각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수준이 이러한 빌드업 축구를 소화할만한 기술을 갖춘 선수도 많지 않다. 한국보다 먼저 유럽식 패싱게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스시타카'라는 별명을 얻었던 일본축구도 정작 '원조' 유럽팀과 만나면 고전하기 일쑤다.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라는 전술이 보편화되면서 이제 그에 대한 공략법이 등장한 지도 오래됐다. 위르겐 클롭(리버풀) 감독을 통해 유명해진 '게겐프레싱'처럼 상대가 아예 빌드업을 구사할 틈도 주지 않고 전방위 압박을 가하거나, 아예 아시아팀들처럼 점유율에 연연하지 않고 라인을 내려서 침투할 공간 자체를 내주지 않는 밀집수비 앞에서는 점유율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벤투의 점유율 축구가 가장 비판받는 것은 '빌드업을 강조하지만 정작 빌드업이 없는' 모순 때문이다. 공을 오래 소유한다고 해서 그게 곧 빌드업이 아니다. 상대가 강하게 압박을 가하든, 아니면 후방에 웅크리고 내려앉아 밀집수비를 하든 그에 맞는 신속한 상황대처가 있어어 한다. 그런데 벤투호는 후방에서 볼을 돌리는 시간은 많아도 정작 상대 진영을 효과적으로 허물수 있는 '킬패스'나 '속공'의 빈도는 낮다.

현대축구에서는 전통적인 포지션의 개념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모든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에 가담한다. 최근 경기에서 브라질은 한국을 상대로 역습시에 미드필더와 수비진이 끊임없이 위치를 변경하며 한국 수비를 혼란스럽게 했다. 측면풀백이 중앙으로 이동하여 빌드업에 참여하거나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중앙수비가 최전방까지 침투하여 순간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모습 등은 상대 수비가 예측 불가능한 전술적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에 의미 잇었다. 

이에 비하여 한국의 공격 빌드업은 좋게 말하면 정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창의성이 없었다. 유효슈팅이 몇 차례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골키퍼 정면이었고, 패스플레이로 상대를 무너뜨렸다고 할 만한 장면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몇몇 선수들이 답답한 마음에 브라질 선수들도 거의 하지 않았던 개인 돌파로 공간을 만들어보려다가 수비에 둘러싸여 볼을 자꾸 빼앗기는 장면은 애처로움까지 느끼게 했다. 상대가 '예측가능한 뻔한 플레이'에 '속도감 없는 느린 템포'로는 브라질이 아니라 어떤 강팀을 만나더라도 빌드업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

축구에서 빌드업과 점유율은 정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이른바 축구팬들에게 '뻥축구'라고 폄하당하는 킥앤 러시 전술이나, '텐백 수비' 같은 극단적 수비 전술도 어느 팀을 상대로 어떤 상황에서 구사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전술이 될 수도 있다.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를 하지말라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라는 옷이 아니라, 그 옷을 한국축구의 몸에 맞게 만들어줘야 할 '재단사'에게 있다. 아무리 이상적인 전술, 훌륭한 명품이라고 해도 입는 이의 몸에 맞지 않으면 아이에게 어른의 옷을 억지로 입힌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고 만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소신이 아집이 아니라는 것을 내용과 결과로서 증명해야한다. 한국축구가 벤투 감독 개인의 축구철학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무대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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