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가 2019시즌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김태형 감독과 재계약했다. 계약조건은 3년 총액 28억 원(계약금 7억 원, 연봉 21억 원)으로 KBO리그 역대 최고 대우다. 김 감독은 2015년 부임 후 5년 동안 매년 팀을 한국시리즈 무대로 이끌었고 이중 3번이나 정상에 올라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감독들의 교체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KBO리그에서 김태형 감독의 장수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현재 프로야구에서 김 감독보다 더 오랜 시간 한 팀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는 감독은 전무하다.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과 염경엽 SK 감독은 김태형 감독보다 사령탑 경력에서 앞서지만, 모두 팀을 옮긴 케이스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다른 구단보다 많은 '장수 감독들'을 배출해왔다. 두산에서 김태형 감독보다 더 오랜 기간 팀을 이끌었던 인물은 김인식 감독(1995-2003), 김경문 감독(2004-2011), 김성근 감독(1984-1988) 등이 있다. 김태형 감독이 2022년까지(최대 8시즌) 계약기간을 모두 채울 경우, 김성근과 김경문 감독의 기록을 뛰어넘게 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두산에는 '김 감독 징크스'라는 도시전설이 있다. 두산은 원년 사령탑인 초대 김영덕 감독을 비롯하여 10대 현 김태형 감독까지 김씨성의 감독만 무려 6명이나 팀을 거쳐갔다. 공교롭게도 두산이 기록한 6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모두 김감독들(1982 김영덕 - 1995, 2001 김인식 - 2015,2016,2019 김태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만 하기에는 기묘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김씨 성이 아니었던 이광환(3대)-이재우(4대)-윤동균(5대)-송일수(9대)까지 나머지 역대 감독들의 재임기간을 모조리 합쳐도 우승은 커녕 포스트시즌 진출만 달랑 1번 뿐일만큼, 두산과는 궁합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비김계 감독 중 유일하게 두산을 포스트시즌에 올렸던 윤동균(1993년 3위) 감독은 이듬해인 1994년 성적부진과 함께 '선수단 항명 파동'이라는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흑역사를 남기고 불명예 퇴진했다.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KBO 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정규시즌 우승을 거머쥔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이 우승 트로피를 건내받고 있다.

진나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KBO 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정규시즌 우승을 거머쥔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이 우승 트로피를 건네받고 있다. ⓒ 연합뉴스

 
김태형 감독이 두산에서 이룬 업적만 놓고 볼 때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다. 최장수 감독인 김인식 감독의 경우, 우승은 2회에 그쳤고 연속 우승은 한번도 없었다. 김경문 감독은 팀을 가을야구에는 꾸준히 진출시켰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준우승만 3번 기록했다. 김태형 감독은 재임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 100%에 구단 역사상 최초의 백투백 우승(2015-16)과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역대 사령탑 최다우승(3회), 2019시즌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연속 역전 우승 드라마 등으로 이미 두산 사령탑 역사상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세웠다.

두산이 올시즌 우승으로 2010년대 중후반기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왕조'로 자리매김하면서 김태형 감독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KBO리그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왕조라 불린 팀에는 그 전성기를 함께한 '장수 감독'들이 있었다. 김응용 해태 타이거즈 감독, 김재박 현대 유니콘스 감독,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KBO 역대 최장수-최다우승 감독은 단연 김응용이다. 전설의 해태 왕조를 무려 18년간(1983~2000년)이나 지휘하며 한국시리즈 우승 9회, 승률 100%라는 대업을 이룩했다. 이후 2001년부터는 삼성으로 자리를 옮기며 1회의 한국시리즈 우승, 2회의 준우승을 추가했다.

김재박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를 11년(1996~2006년)간 이끌며 구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기록한 4회 우승을 모두 이끌었다. 김성근 감독은 다른 감독들에 비하여 한 팀에서 오래 머문 기간이 짧지만 SK시절(2007-2011) 3회의 한국시리즈 우승, 1회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류중일 감독은 2010년대 삼성(2011-2016) 왕조를 이끌며 한국시리즈 4연패, 정규리그 5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모두 한국야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장들이지만 구단의 전성기가 끝나고 쇠락의 시기가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감독들도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중 팀을 옮겨서도 정상에 오른 경우는 김응용 감독이 유일하다. 하지만 김응용 감독도 해태 시절에는 80-90년대 풍부했던 호남의 유망주 인재풀, 삼성에서는 2000년대 파격적인 투자와 스타 싹쓸이의 수혜를 입었다는 평가다. 고령의 나이에 현장으로 복귀한 한화 시절에는 약팀 전력의 한계와 시대 흐름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말년에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김성근(한화), 김재박(LG) 감독도 팀을 옮긴 이후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여 지금은 현장에서 밀려난 상태이고, 역대 왕조 감독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현장에 남아있는 류중일 LG 감독도 삼성 시절만큼의 고평가는 받고 있지 못하다. 프런트와 시스템을 중시하는 현대에서는 흔히 이야기하는 '명장론'을 두고 감독의 영향력이 실제보다 과대평가 되었으며 요즘에는 이들을 팀을 잘 만난 '복장'이나 '운장'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많아졌다.

역대 왕조를 이끈 감독들이 특정 팀에서 유독 빛을 발하며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본인의 능력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넓게는 구단의 지원이나 선수층, 지도스타일, 시대의 트렌드 등 종합적인 면에서 궁합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김태형 감독 역시 두산의 내부사정과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으로서 해태 시절의 김응용이나 삼성의 류중일처럼 유독 '두산이라는 팀에 가장 최적화된 감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김태형 감독은 역대 왕조 감독들에 비하여 리더십이나 용병술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편이다.

두산은 2000년대부터 특유의 '화수분 야구'를 내세워 안정적인 스카우트와 내부 육성을 통하여 외부 영입이나 내부 FA에 과도한 투자를 하지 않고도 꾸준한 성적을 내는 팀으로 명성을 지켜왔다. 올해 핵심 포수 양의지가 NC로 이적한 상황에서 통합우승을 차지한 것은 두산의 저력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2010년대 전반기를 호령했던 삼성 왕조가 지금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라 예상한 이들이 거의 없었듯이, 두산도 언제까지나 화수분이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장 내년 시즌이 끝나면 이용찬, 유희관, 김재호, 오재일, 허경민 최주환, 정수빈 등 투타의 주력 선수들이 최대 7명까지 FA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구단 역사상 전례없는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로 인한 선수단 피로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으며, 최근 2~3년 전부터 두산의 2군 유망주 팜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형 감독은 그동안 주어진 선수단을 가지고 최상의 성적을 이끌어냈지만, 토종 선발 육성이나 불펜 혹사, 경기운영의 세밀함 부족 등 그동안 성적에 가려진 단점도 많은 편이다. 경기외적으로 욕설, 손찌검 논란 등 몇 차례 구설수도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올해 한국시리즈 4연승도 세 번이나 극적인 막판 역전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바꿔말하면 4연패를 당할 수도 있었을 만큼 경기운영 면에서 김태형 감독의 실책성 판단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마무리 헹가래 투수가 된 배영수의 등판 상황도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지, 만일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김 감독의 역대급 실책이 될 뻔했다.

어쩌면 김 감독이 훗날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으로 기억될지는 올겨울 이후의 행보가 중요하다고 볼수 있다. 두산의 최전성기에 지휘봉을 잡아 딱 주어진 전력만큼의 성과를 낸 운장이나 복장으로만 기억될 수도, 아니면 팀의 세대교체와 리빌딩을 대비하며 장기집권의 토대를 쌓은 명장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김태형 감독은 과연 매너리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운장의 선입견을 넘어선 한국프로야구의 진정한 '레전드 감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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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감독 두산베어스 한국야구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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