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에서 계급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며 대립과 전복의 역동성을 다루었다. 반면 <기생충>은 비슷한 계급이 파편처럼 분절되어 경쟁하는 구도이다. 이들이 통합하여 유대를 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분히 지루할 수도 있지만 두 개의 장르를 적절히 활용하며 극을 매끄럽게 전개하고 있다. 블랙코미디와 서스펜스를 조화시킨 관록이 돋보인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겹친 것은 한국 영화사에 값진 수확이다.

전반부에서 두 가족의 터전은 상당히 큰 간극을 보여준다. 기택(송강호)의 반지하방은 골목길을 수평선처럼 바라보는 구조인데 창문으로 오물이 넘쳐 들어올 것 같은 형태다. 취객의 노상방료가 빈번하고 이 때문에 고성과 다툼이 벌어진다.
 
반면 박 사장(이선균)의 대저택은 명성 있는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다. 햇볕 좋은 날에 오르막길조차 걷기에 적당하다. 거실 넓이만큼의 창과 정원이 조성되었고 비 오는 날도 낭만과 운치로 수놓아지는 풍경이다.
 
비천하게 살아가던 기택의 가족에게 어느 날 행운이 찾아온다. 아들 기우의 명문대 친구 민혁이 영어 과외자리를 물려준 것이다. 간단한 서류조작으로 무난하게 취업을 하게 된다. 이렇게 물꼬를 트자 계획적이며 비열한 방식을 동원해서 가족 모두가 취업을 하게 된다.
 
전반부에서 제시되는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특정한 하위 계층을 모티브로 그들의 생존 방식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이 경쟁과 대립 과정에서 획득한 물질적인 풍요는 상대를 밀어내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른 하나는 박 사장 부부가 신뢰하는 구조성에 대한 평가를 내포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관계망이 부실하고 허접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명문대 출신이거나 유학파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스펙이 보증하는 관계를 신봉하는 사회적 풍토를 꼬집는 것이다.

동질성을 자각하지 못한 채 공멸하다    
 영화 <기생충> 스틸 컷

영화 <기생충> 스틸 컷 ⓒ CJ 엔터테인먼트

  장르의 변곡점은 공간 지형도가 바뀌면서 시작된다. 해고되었던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느닷없이 방문했을 때 기택 가족의 불안한 징조는 지하벙커가 확인되면서 명확해진다. 확실히 구분되는 계급으로 배치된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동질적인 계급이 출몰하면서 갈등이 한껏 올라간다.
 
가정부 문광은 불우이웃끼리 돕자며, 남편 근세(박명훈)가 예전처럼 벙커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간청한다. 그러나 기택의 부인 충숙(장혜진)은 같은 계급이라는 진단을 완강히 부정한다. 그런데 둘은 박 사장의 부에 기생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무언가 다르다는 차별의식과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착각일 뿐이다.
 
지하벙커에 거주하는 근세를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충숙, 모두가 기택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려는 문광. 이들은 상대의 약점을 기반으로 경쟁자를 몰아내려 했다. 박 사장의 저택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동일한 처지와 계급이면서도 공생하기 위한 가능성을 찾지 못한 것이다.

결론은,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하여
 
이제 기택은 지하벙커로 숨었고 바뀐 주인의 패턴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우는 아버지를 구하겠다며 저택을 구매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물론 망상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박 사장 저택에서 지하방으로 가던 길은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내려간 만큼이 현실적인 차이와 위계이다. 그리고 지하방은 침수되었다.
 
기택이 흔들리던 결단으로 박 사장을 살해한 연유가 더없이 황망하다. 근세의 역겨운 냄새에 환멸적인 반응을 보였던 박 사장의 태도 때문이다. 기택은 바로 자신을 향한 것으로 인지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이다. 정작 기택과 근세는 자신들의 동질성을 너무도 늦게 인지했다.
 
과연 우리는 어느 부류에 속해 있는가. 그나마 동질의 계급성이 확인된 후 거행된 박 사장의 살해는 올바른 판결이었을까. 영화는 이 두 개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택과 근세 가족은 언제부터 벌레였을까.
 
영화를 봤다면, 이제라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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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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