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적지에게 kt에 연승을 거두며 후반기를 산뜻하게 출발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LG트윈스는 2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kt 위즈와의 원정경기에서 홈런2방을 포함해 장단 11안타를 터트리며 10-1로 승리했다. 이틀 연속 kt를 꺾은 LG는 5위 NC다이노스와의 승차를 6경기로 유지하며 이날 비로 경기를 치르지 않은 3위 두산 베어스와의 승차를 3경기로 좁혔다(54승1무42패).

LG는 선발 케이시 켈리가 5이닝9피안타2사사구8탈삼진1실점 호투로 10승 고지에 올랐고 채은성이 9회 만루홈런을 포함해 4안타6타점2득점으로 원맨쇼를 펼쳤다. 하지만 이날은 패한 kt에도 매우 의미 있는 하루였다. KBO리그에서 20년 동안 활약하며 통산 타율 .305 2125안타를 기록했던 '국민우익수' 이진영의 은퇴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은퇴식 소감 말하는 이진영 2019년 7월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t 위즈 경기에서 은퇴식을 갖는 이진영이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진영은 1999년 쌍방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SK 와이번스와 LG를 거쳐, 2016년 kt로 이적해 지난해까지 총 20년간 선수로 뛰며 통산 2천160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5, 169홈런, 979타점을 기록했다.

▲ 은퇴식 소감 말하는 이진영 2019년 7월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t 위즈 경기에서 은퇴식을 갖는 이진영이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진영은 1999년 쌍방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SK 와이번스와 LG를 거쳐, 2016년 kt로 이적해 지난해까지 총 20년간 선수로 뛰며 통산 2천160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5, 169홈런, 979타점을 기록했다. ⓒ 연합뉴스

 
인천과 서울 넘나들며 3할 타율을 보장하던 '국민 우익수'

이진영은 '비운의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 유니폼을 입었던 마지막 선수다. 군산상고 시절부터 투·타에서 모두 재능을 보이던 이진영은 1999년 쌍방울에 입단해 1년을 보낸 후 2000년부터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활약했다. 2002년 타율 .308 13홈런40타점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폭발시킨 이진영은 2003년 타율 5위(.328), 2004년 타율 2위(.342)에 오르며 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로 명성을 날렸다.

이진영의 이름이 야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역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었다. 이진영은 일본과의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그림 같은 다이빙 캐치로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냈고 야구팬들로부터 '국민 우익수'라는 애칭을 얻었다. 이진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도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 후지카와 큐지(한신 타이거즈)로부터 극적인 동점 적시타를 터트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7년과 2008년 각각 .350과 .315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SK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크게 기여한 이진영은 2008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어 동갑내기 정성훈(KIA 타이거즈)과 함께 LG로 전격 이적했다. LG에서도 이진영의 뛰어난 기량은 여전했다. 이진영은 계약 기간 4년 동안 3번이나 3할 타율을 기록하며 FA 선수로서 제 몫을 톡톡히 했다(하지만 LG는 이진영과 정성훈을 영입한 후에도 4년 동안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2012시즌이 끝나고 4년 34억 원에 LG와 두 번째 FA계약을 체결한 이진영은 2013년 타율 .329 3홈런62타점의 뛰어난 성적으로 LG를 11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이진영은 2014년에도 .325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2015년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며 타율 .256로 부진했다. 이에 LG에서는 '세대교체'를 이유로 이진영을 40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고 '2차 드래프트의 거물' 이진영은 전체 1순위로 kt의 지명을 받았다.

이진영이 두 번이나 FA계약을 맺으며 7년 동안 활약했던 LG를 떠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 입단 후 17년 동안 10번이나 3할 타율을 기록한 이진영의 '실력'은 팀을 옮긴다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 이진영은 이적 첫 시즌 kt에서 115경기에 출전해 타율 .332 10홈런72타점으로 맹활약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진영이 한 시즌에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것은 LG이적 첫 해였던 2009년(14개) 이후 7년 만이었다.
 
 이진영 선수(자료사진)

이진영 선수(자료사진) ⓒ 연합뉴스

 
본인이 만든 '야잘잘'이란 명언(?)에 가장 잘 어울리던 이진영

2016 시즌이 끝나고 세 번째 FA자격을 얻은 이진영은 2년15억 원에 kt와 FA계약을 체결했다. 이진영은 주전 우익수 자리를 유한준에게 내주고 주로 백업이나 지명타자, 대타요원으로 활약했다. 2017년 103경기에 출전한 이진영은 타율 .289 2홈런31타점으로 주춤했지만 6월 1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통산 2000경기 출전과 2000안타 기록을 동시에 달성했다. 2000경기, 2000안타 기록은 박한이와 박용택(LG)보다 빠른 역대 5번째 기록이었다.

작년 시즌 이진영은 kt 타선에서 더욱 입지가 좁아졌다. 한국 나이로 39세가 되면서 풀타임 외야를 소화할 만한 체력은 되지 못했고 지명타자 자리에는 2017년 3할20홈런100타점 시즌을 만든 윤석민을 포함해 '슈퍼루키' 강백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진영은 작년에도 시즌 개막부터 한 번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지 않은 채 풀타임 시즌을 치렀다.

이진영은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된 작년 시즌 110경기에 출전해 타율 .318 3홈런39타점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물론 주전으로 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은퇴 직전 시즌에 100경기 이상 출전해 3할 타율을 기록한 것은 고 장효조나 양준혁,이승엽 같은 '달인'들도 해내지 못한 영역이다. 선수 생활 말년으로 갈수록 통산 타율을 까먹는 여느 선수들과 달리 이진영은 마지막까지 '국민우익수'로서 자존심을 지킨 셈이다. 

1999년 쌍방울에서 데뷔한 이진영은 SK에서 9년, LG에서 7년, kt에서 3년 동안 활약해 KBO리그에서 정확히 20년을 채웠다.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과 한 번의 골든글러브 수상, 올림픽 금메달 등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지만 자의 혹은 타의로 여러 차례 유니폼을 갈아 입으면서 특정팀의 '레전드'가 되기엔 조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진영은 kt구단의 배려로 환하게 웃으면서 현역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다.
 
은퇴식 앞두고 포즈 취하는 이진영 2019년 7월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t 위즈 경기에서 은퇴식을 갖는 이진영이 경기 전 팬 사인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진영은 1999년 쌍방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SK 와이번스와 LG를 거쳐, 2016년 kt로 이적해 지난해까지 총 20년간 선수로 뛰며 통산 2천160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5, 169홈런, 979타점을 기록했다.

▲ 은퇴식 앞두고 포즈 취하는 이진영 2019년 7월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t 위즈 경기에서 은퇴식을 갖는 이진영이 경기 전 팬 사인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진영은 1999년 쌍방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SK 와이번스와 LG를 거쳐, 2016년 kt로 이적해 지난해까지 총 20년간 선수로 뛰며 통산 2천160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5, 169홈런, 979타점을 기록했다. ⓒ 연합뉴스

 
이진영은 SK시절 후배 박재상(SK 타격 보조코치)과 대화를 나누며 "야구는 원래 잘하던 사람이 잘해"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진영의 이 말은 소위 '야잘잘'이라는 야구계 은어로 자리 잡았고 부진하던 스타 선수들이 이름값을 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야구 선수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은퇴할 때까지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던 이진영이야 말로 '야잘잘'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던 선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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