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는 이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대표하는 클럽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EPL 중·상위권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지난 몇 년 간 강력한 모습으로 안정적으로 상위권에 안착한 토트넘이다.

2016-2017 시즌 준우승을 기록한 토트넘은 지난 시즌에는 3위에 위치하며 계속해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우승 타이틀은 아쉽게 놓쳤지만 꾸준함은 EPL 클럽 중 최상위다. 최근 세 시즌 간 토트넘의 평균 순위는 2.3위인데, 같은 기간 EPL 클럽 평균 순위 중 가장 높다.

이번 시즌도 이러한 기조는 여전하다. 시즌 초반 기복이 있었던 토트넘은 어느덧 경기력을 회복하며 무섭게 치고 올라가고 있다. 최근 리그 8경기에서 토트넘은 7승 1패를 기록하며 승점을 21점을 쓸어담았다.

토트넘의 가파른 상승세는 25일 오전 2시 30분(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2019 EPL 13라운드 첼시FC 경기에서도 이어졌다. 리그에서 무패(8승 4무)를 달리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첼시는 토트넘의 강력한 압박과 속도감 넘치는 공격에 크게 휘둘렸다.
 
 11월 25일 오전 2시 30분(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와의 리그 경기에서 토트넘의 손흥민이 득점에 성공했다.

11월 25일 오전 2시 30분(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와의 리그 경기에서 토트넘의 손흥민이 득점에 성공했다. ⓒ EPA/연합뉴스


결과는 델리 알리와 헤리 케인, 손흥민이 골을 엮어낸 토트넘이 올리비에 지루가 1골을 터뜨린 첼시를 3-1로 눌렀다. 스코어 차이는 2점밖에 나지 않았지만, 실제 경기력의 격차는 더 컸다. 케인과 손흥민의 골 결정력이 좀 더 좋았다면 3점 차 이상의 대승도 가능했던 흐름이었다. 그만큼 첼시전 토트넘의 퍼포먼스는 치명적이었다.

포체티노의 탁월한 용인술

토트넘의 최근 성적에서 이 사람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이다. 2014년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은 포체티노 감독은 탁월한 전술과 선수단 관리로 팀의 고공행진을 이끌고 있다.

매 시즌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포체티노 감독이지만 이번 시즌은 더욱 놀랍다. 지난 여름 이적 시장에서 토트넘은 새로운 선수를 한 명도 영입하지 않았다. 신구장 설립 문제로 팀이 재정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탓이 컸다.

당연히 토트넘을 향한 시선은 불안감이 가득했다. 수백억이 넘는 선수를 마구 영입하는 경쟁자들에 비하면 초라한 이적시장을 보냈다. 게다가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온 점도 고민거리였다. 4위 진입도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토트넘에는 포체티노 감독이 있었다. 이미 고가의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 없이도 호성적을 일궈냈던 포체티노에게 '영입생 0명'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기존의 침체됐던 자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시즌 초반은 지난 시즌까지 부진했던 에릭 라멜라와 루카스 모우라를 적극 기용해 승리를 챙겼다. 포체티노 감독은 라멜라와 모우라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남미 선수 특유의 부드러움과 폭발력을 이용한 간결한 축구로 재미를 봤다. 덕분에 컨디션 난조를 겪던 알리와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충분한 휴식 속에 에너지를 비축했다.

지난 첼시전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포체티노의 '용인술'의 백미였다. 적절한 로테이션으로 주전급 선수들의 체력적 준비와 컨디션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포체티노는 첼시와 경기에서 그간의 노력을 폭발시켰다.

오랜만에 '판타스틱 4(케인-손흥민-알리-에릭센)'을 동시에 출격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각자의 선수들이 자신이 최대 장점을 살릴 수 있게 만들었다. 에릭센은 자유롭게 공을 잡고 패스를 뿌렸고, 알리는 중원과 패널티 박스를 넘나들며 공격 재능을 뽐냈다. 손흥민은 폭발적인 속도와 슈팅을 선보였고, 케인은 뛰어난 포스트 플레이로 공격 최선두에 섰다.
 
 손흥민 등 토트넘 선수들. 사진 속에선 케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 선수다.

에릭센-라멜라-손흥민-케인 등 토트넘 선수들. ⓒ AP/연합뉴스


'판타스틱 4'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원의 용인술도 빛났다. 포체티노 감독은 잉글랜드가 주목하는 젊은 재능 해리 윙크스 대신 무사 시소코를 선발 투입했다. 윙크스보다 패스 능력은 떨어지지만 속도와 피지컬에서 뛰어난 시소코를 기용해 첼시의 중원을 봉쇄하겠다는 복안이었다.

묘수는 적중했다. 시소코의 강한 전방 압박에 첼시의 장점인 패스 플레이가 실종됐다. 시소코는 기본적으로 상대 풀백들의 전진을 저지하면서 동시에 첼시 패스의 중심 조르지뉴도 괴롭혔다. 전형적인 윙도 아니고 중앙 미드필더도 아닌 '애매한' 시소코는 포체티노의 전략 아래에서 '확실한' 투사로 변신했다.
  
선수들에게 잘하는 것만 요구하는 포체티노

1972년생 포체티노는 젊은 감독답게 전술 능력이 탁월하다. 펩 과르디올라 같은 혁신가는 아니지만, 수준 높은 전술적 유연성을 갖춘 감독이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듯이 선수들의 강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데 능하다.

포체티노는 자신만의 전술에 선수들을 가두지 않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조세 무리뉴가 단단한 자신의 전술 틀 안에 선수들을 투입하는 반면 포체티노는 가지고 있는 자원의 능력 극대화에 집중한다.

포체티노의 가르침 아래에서 빛나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가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강점과 약점이 뚜렷한 선수다. 뛰어난 기동성과 위치와 거리를 가리지 않는 강력한 슈팅은 무기지만, 패스와 공을 유지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포체티노 감독은 굳이 손흥민에게 못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첼시전도 그랬다. 공격을 조립하는 패스는 에릭센과 알리가, 전방에서 공을 지켜주는 일은 케인이 도맡았다. 손흥민은 그저 빠른 발로 첼시 수비진의 뒷공간을 침투하고 공격을 마무리하면 됐다.

한국 팬들은 다소 불만이지만 보통 손흥민을 후반 25분 내외로 교체 아웃하는 점도 손흥민의 장점을 유지하기 위한 포체티노의 전략이다. 교체 아웃은 빠른 스피드가 생명인 손흥민에게 다음 경기의 체력적 여유를 주기 위한 방책이다. 당장 11월 A매치에 참여하지 않고 에너지를 회복한 손흥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첼시전에서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쉽다.

비단 손흥민뿐만이 아니다. 토트넘 선수들은 포체티노 아래에서 단점을 최대한 감추고 뛴다. 첼시전에서 공격력이 부족한 왼쪽 풀백 벤 데이스는 수비에 전념했다. 왼쪽 측면 공격의 공백은 다른 공격진들이 적절히 나눠서 메웠다. 수비 복귀 속도에 약점이 있는 서지 오리에의 빈 자리는 커버 능력이 뛰어난 시소코와 에릭 다이어가 번갈아 채웠다.

당장 첼시의 은골로 캉테는 토트넘과 경기에서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의 요구대로 캉테는 공격 작업에 가담했지만 비효율적이었다. 리오넬 메시의 드리블도 막을 수 있는 캉테의 수비력은 토트넘을 상대로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이제 포체티노는 전 유럽이 주목하는 감독으로 성장했다. 유럽 최정상의 클럽들이 그를 유혹하고 있다. 그 중에는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도 포함된다. 전술적 능력 외에도 젊은 재능을 발굴하고 큰 잡음 없이 선수단 기강을 유지하는 점도 고평가를 받고 있다. 토트넘과 포체티노의 동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포체티노가 있는 한 토트넘은 EPL의 강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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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홋스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손흥민 용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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