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가을날 즐기기 좋은, 세대를 아우른 가족 뮤지컬 한 편을 소개한다. 바로 <창문너머 어렴풋이>가 그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의 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산울림, 그중에서도 리더 김창완의 곡들로 이뤄졌다. 이를 비롯해 젊은 세대에게는 아이유의 목소리로 익숙한 '너의 의미'로, 보다 윗세대에게는 당대 혁신적인 쓰리 코드 진행의 '아니 벌써', 사이키델릭 성향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가 귀에 들어올 듯하다.
 
 <창문너머 어렴풋이> 극 중 한 장면. 개성 강한 각 캐릭터들의 열연을 펼친다.

<창문너머 어렴풋이> 극 중 한 장면. 개성 강한 각 캐릭터들의 열연을 펼친다. ⓒ 극단 써미튠즈

 

#1. 퍽퍽하지만은 않은 유쾌한 성장 스토리

1980년대가 배경인 극은 서울 봉천동 음악다방을 중심으로 '창식'과 '종필', 그리고 그 친구들의 성장 이야기를 품는다. 창식은 과거 촉망받는 뮤지션이었으나 현재는 불의의 사고로 힘을 잃은 천재 음악가이고, 종필은 비틀즈 같은 음악을 하자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한쪽은 꿈을 잃고 또 한쪽은 꿈을 좇는 과정에서 이들이 겪는 좌충우돌 고생담은 지질하지만 유쾌하고 투박하지만 정겹다. 여기서 첫 번째 관람 포인트를 포착할 수 있다.
 
그건 바로 김창완의 노래를 알맞게 녹여냈다는 점이다. 많은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인 '노래를 재생하기 위한 각본'이 아니라, 극 속에 던져놓은 설정들을 통해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게 하는 식이다. 이런 통로는 뮤지컬의 집중도는 물론 흥미까지 단숨에 잡아낸다.

음악다방이 있기에 악기가 있고 또 종필 일당이 공간의 전속 밴드가 됨으로써 각 캐릭터들이 한 군데 모이게 된다. 여기에 한때 철부지처럼 재기발랄하던 주인공 창식이 사고 이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데, 다방 DJ라는 직책을 줌으로써 틈새의 유머와 노래 재생의 기회까지 건져 올렸다. 퍽퍽한 현실을 유쾌한 설정과 즐기기 쉽고 익숙한 김창완의 음악으로 연결하니 부드럽고 소화하기 좋은, '맛 좋은 뮤지컬'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창식이 능청스레 사연을 읽는다.

주인공 창식이 능청스레 사연을 읽는다. ⓒ 써미튠즈

  
#2. 산울림의 음악이라는 연결고리 : 나이의 간극을 무너뜨리다

이 같은 구성에 김창완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접착제다. 그의 노래가 이미 몇 세대에 걸쳐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또 늘 대중에 곁에 머물렀기 때문.

극에는 나오지 않지만 너른 애정을 받는 '산 할아버지'와 커튼콜 때 플레이 되어 분위기를 달군 익살스러운 '개구쟁이'의 멜로디를 모르는 이가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많지 않을 듯하다. 자극적이지 않은 사랑, 이별, 아픔, 도전의 스토리에 '너의 의미',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김창완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돋보이는 '그래 걷자' 등등의 스코어는 전 연령대가 부담 없이 즐기고 품을 수 있는 가족극의 외형을 갖는다.
 
만족스러운 건 외투 안 속내까지 탄탄하다는 점이다. 공연 시작 전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된 쪽지 쓰기는 극 중 창식의 DJ 속 사연으로 읽히고, 이 외에도 틈틈이 심어놓은 관객 참여형 코너와 뮤지컬 극에 빼놓을 수 없는 감초인 커튼콜은 올가을 <창문 너머 어렴풋이>를 강력 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젊음의 오늘을 사는 청년층에게는 여유를, 젊음의 그때를 살았던 중장년층에게는 오늘을 견딜 위로와 웃음을 건네는 뮤지컬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오는 11월 4일까지 대학로 예그린 씨어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산울림 뮤지컬 대학로 김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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