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회 내내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바로 '병역혜택' 문제였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 남자 선수들은 4주 기초군사훈련만으로 병역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몸이 재산인 데다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은 체육인들에게는, 경력의 단절 없이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병역혜택은 국제대회 수상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게 사실이다.

금메달 목에 건 오지환 1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한국 오지환(오른쪽)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 금메달 목에 건 오지환 1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한국 오지환(오른쪽)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축구-농구 등 프로화가 되어있고 많은 팬들을 보유한 인기종목의 유명선수들을 중심으로 병역혜택 여부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축구의 손흥민과 야구의 오지환-박해민은 나란히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병역을 면제받게 되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이들 모두 이번 대회에서 우승에 실패했다면 당장 내년 입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손흥민이 팬들의 박수와 축하를 받은 것과 달리, 오지환과 박해민은 '무임승차'와 '합법적 병역기피'라는 식의 비판과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금메달을 따내고도 마음껏 웃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에서 병역혜택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70년대부터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금메달을 딴 양정모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900명 가까운 선수가 혜택을 봤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부를 거치며 국제대회 성적을 통한 '국위선양'과 '엘리트 체육 인재 양성'을 명분으로 병역특례 관련법이 개정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초창기만 하더라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무대에서 메달을 따내는 것이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고, 국민정서도 '국제대회 성적=국위선양'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강했던 시절이라 특혜라는 비판은 많지 않았다.

병역혜택 제도가 본격적으로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특히 국민적 관심이 높은 '양대 인기종목'인 야구와 축구를 중심으로 유명 선수들의 병역혜택 여부가 사실상 국제대회 성적 자체보다 더 뜨거운 관심사가 되면서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병역혜택 제도가 '합법적 병역기피의 창구'라는 지적 나오는 이유

병역혜택 제도가 왜곡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포퓰리즘'도 한몫을 담당했다. 축구가 2002 한일월드컵, 야구가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각각 4강 진출에 성공하며 돌풍을 일으키자 우호적인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당시 규정에도 없는 병역 특혜를 추진했다.

당시 축구대표팀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16강 진출 확정 이후 라커룸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병역 문제를 신경써달라"고 건의했던 장면은 지금도 유명하다. 지금 같으면 엄청난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놀랍게도 당시에는 지지하는 반응이 많았다. 결국 아마추어나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이듬해부터 월드컵 16강과 WBC 4강 진출은 병역 특례 대상에서 다시 제외되었다. 하지만 모든 국민들에게 평등해야 할 병역의 의무가 체육계에서 언제든 '포상' 혹은 '흥정'의 도구로만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운동선수들의 병역혜택 제도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부정적으로 돌아서게 된 계기는 2012년 '박주영 사태'와 2014년 '나지완 사태'였다. 축구대표팀 주장까지 역임했던 공격수 박주영은 유럽에서 활약하던 시절 모나코 영주권을 이용해서 병역 의무를 최대한 연기하려다가 '꼼수'라는 국민적 비난에 휩싸였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런던 올림픽에 가서 동메달을 따내며 병역 혜택을 받았지만 당시 박주영의 처신은 지금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나지완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수상하며 병역혜택을 받았지만, 대회 내내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데다 부상까지 숨기고 대표팀에 합류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어마어마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상대적으로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은 아시안게임에서 병역혜택을 노리고 군입대 시기를 늦춘 것 아니냐는 의혹 역시 당시 오재원, 2018년의 오지환-박해민 등과 함께 비판받는 부분이다. 이후 야구대표팀에게 아시안게임이 사실상 '합법적 병역기피의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왔고, 그 후유증이 바로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바라보는 여론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런 비판여론을 그저 '남 잘되는 꼴 못 봐서 배 아파하는 투정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반응도 있다. 지금까지 병역혜택을 받은 운동선수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어쨌든 규정에서 벗어난 불법으로 얻은 혜택도 아닌 이상 과도한 비난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병역혜택 제도를 바라보는 논란의 핵심은, 결국 절차의 '공정성'과 '형평성'이다. 축구의 박지성이나 손흥민, 야구의 박찬호 같은 유명 선수들도 모두 국제대회 수상을 통하여 병역혜택을 받은 사례들이지만 이들을 향한 비판 여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당당히 실력만으로 본인의 위상과 국가의 명예를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경기 외적인 사생활 면에 이르기까지 국가대표를 둘러싼 특혜나 자격 시비 등에 거의 휘말린 적이 없다.

병역혜택 논란, 병역 면제 이후의 행보가 더 중요하다

 2007년 7월 2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과 박지성이 20일 서울 상암월드컵구장에서 열리는 맨유와 서울FC의 친선경기에 앞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고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07년 7월 2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과 박지성이 20일 서울 상암월드컵구장에서 열리는 맨유와 서울FC의 친선경기에 앞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고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병역혜택을 받고 난 이후'의 행보도 중요한 차이가 된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로 병역혜택을 얻은 이후 유럽 축구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여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센츄리클럽 가입-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 등의 업적을 이뤄냈다. 사실상 200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주어진 일회성 병역혜택이 비록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박지성이라는 슈퍼스타를 배출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찬호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병역헤택을 받은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정상급 투수로 군림하여 FA 대박을 누리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미국무대에서 부상으로 오랫동안 부침을 겪고 내리막길을 걷던 시점에서도 2006 WBC 출전, 2007 올림픽 최종예선 등에서 활약하며 국가의 부름을 거부하지 않았다. 또한 불펜 출격도 마다하지 않는 등 2009년 대표팀을 은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헌신적인 모습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반대의 사례로는 박주영과 추신수가 자주 거론된다. 박주영은 2000년대 중반부터 병역혜택이 걸린 국제대회 참여에는 열성적이었지만, 정작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은 이후에는 불성실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공격수 부재로 박주영의 부활을 절실히 원하던 상황에서도 그는 당시 아스널에서의 벤치 생활에 안주한 듯한 모습으로 변화에 소홀했다. 결국 경기감각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월드컵에 승선했으나 '의리축구', '황제훈련' 논란에 휘말리며 최악의 부진을 보인 채 대표팀 몰락의 주범으로 지적됐다.

추신수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합류하여 병역혜택을 얻었지만 박찬호나 김병현과는 달리, 이후로 국가대표팀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 2013년 WBC에서는 FA 자격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였고, 2017년 WBC에서는 소속팀의 반대를 이유가 이유였다. 추신수는 고의로 대표팀을 기피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병역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일정기간 국가대표 차출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병역 혜택을 바라보는 국민 정서가 달라졌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병역혜택을 바라보는 국민정서가 가장 달라진 부분은 더 이상 '국제대회 성적이 국위선양'이라는 국가주의적인 발상이 많이 약해졌고, 결과보다 '과정과 절차의 투명성'을 더 강조하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스타라도, 실력이 출중한 선수라고 해도 국가대표에 걸맞는 자격과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팬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야구대표팀 오지환과 박해민을 향한 비판을 단지 선수 개인을 향한 것으로만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엄밀히 말하면 국가대표를 병역 면탈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종목들, 넓게는 체육계 전체가 맞아야 할 비판을 상징적으로 두들겨 맞는 것에 불과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병역혜택 제도의 개선과 야구계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없다면 4년 뒤 아시안게임에도 이런 논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금메달 깨무는 와일드카드 3인방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축구대표팀 손흥민(왼쪽부터), 황의조, 조현우가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뒤 해단식에서 금메달을 입에 물고 있다.

▲ 금메달 깨무는 와일드카드 3인방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축구대표팀 손흥민(왼쪽부터), 황의조, 조현우가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뒤 해단식에서 금메달을 입에 물고 있다. ⓒ 연합뉴스


축구의 손흥민도 이번 대회에서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기사회생했지만, 만일 병역혜택을 얻는 데 실패하고 다른 방식으로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면 그 역시 하루아침에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또한 이번 아시안게임으로 인하여 군문제를 해결하고 해외무대에서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병역혜택은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내려준 특권이나 포상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살려 병역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라는 국가의 배려다. 손흥민을 비롯하여 이번 대회에서 병역혜택을 입은 수혜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것이 국가대표에 대한 책임감이자 태극마크를 그저 병역혜택을 위한 도구로만 여긴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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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혜택 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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