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3차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기. 1-0으로 승리한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3차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기. 1-0으로 승리한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학범호가 '급조된 팀'의 한계를 드러내며 고전하고 있다.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조별리그를 통과하는데 고전하는 대표팀의 모습을 보며 팬들의 반응도 우려에서 점차 냉소로 변하고 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한국 축구대표팀은 20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E조 최종 3차전 키르기스스탄과의 경기에서 후반 18분 터진 손흥민의 결승골로 1-0으로 신승을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2승1패(승점 6)를 기록해 말레이시아와 2승1패로 동률을 이뤘지만 '승자승 우선' 원칙에 따라 조 2위로 밀렸다. 말레이시아는 2차전에서 한국에 2-1로 승리한 바 있다.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경기력만 놓고 봤을 때 한국이 과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기대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만 남았다. 1차전에서 1.5군 전력으로 바레인을 6-0으로 대파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복병 말레이시아와의 2차전에서 의외의 덜미를 잡히는 '반둥 참사'를 당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섣부른 자만심이 불러온 로테이션의 부작용이었다. 말레이시아전을 잡았더라면 한국은 조기에 16강 진출과 조 1위를 확정짓고 한결 편안한 분위기에서 키르키스스탄과의 최종전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전 패배로 한국은 키르키스스탄전에서 손흥민 등 주축 선수들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쳐야했다. '수비의 핵' 김민재는 경고누적으로 16강 진출이 불가능해졌다. 사실상 로테이션의 가치가 무의미해진 결과였다. 바레인전 대승이 오히려 독이 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조별리그 이후 대진운도 꼬인 한국 대표팀

 2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3차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기. 손흥민이 문전으로 드리블하고 있다.

2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3차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기. 손흥민이 문전으로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키르키스스탄전도 이기기는 했지만 내용은 명백한 졸전이었다. 한국은 이날 26개의 슈팅을 난사했지만 유효슈팅은 불과 8개였고 그나마 골문을 가른 것은 손흥민의 한 골이 유일했다. 말레이시아전에서도 드러났듯이 라인을 내리고 밀집수비를 구사하는 팀들을 상대로 효율적인 공격루트가 부족했다. 측면 공략을 통하여 수비의 간격을 흐트릴수 있는 움직임이나 문전에서 피지컬로 상대 수비수들을 압박할수 있는 타깃맨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더구나 최종전을 이기고도 조 1위를 놓치면서 한국은 토너먼트 이후의 대진운도 꼬였다. 23일 열리는 16강전에서 만나게 된 이란(F조 1위)은 아시아 무대에서 여러 차례 한국의 발목을 잡아온 강적이자 아시안게임 상대 전적도 3승 2무 4패로 열세다.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는 전력차를 떠나 항상 어려운 경기를 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있다. A대표팀 상대 전적도 9승 8무 13패로 밀리고 있으며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1년 이후로는 1무 4패에 그치며 7년째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란을 넘더라도 8강에서는 또 다른 우승후보 우즈베키스탄을 만나게될 확률이 높다. 그 뒤에는 베트남-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안게임 역대 최악의 토너먼트 대진운을 맞이하게 될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모두 말레이시아전 패배가 불러온 나비효과다.

물론 김학범호에게도 나름의 변명거리는 있다. 김학범 감독은 지난 AFC U23 챔피언십에서의 성적부진으로 사임한 김봉길 전 감독의 뒤를 이어 3월 부임한 이후 이번 아시안게임이 국제대회 첫 데뷔 무대이고 대회 직전까지도 20인 엔트리가 모두 함께 모여 훈련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조별리그가 실전이면서 사실상 훈련의 의미를 겸하고 있던 상황에서 선수들의 조직력이 완벽하게 맞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회 현지의 열악한 잔디상태나 경기 환경, 상대의 극단적인 밀집수비도 김학범호를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정도 애로사항은 이미 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때부터 당연히 예상되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에서의 성과를 통하여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공언한 것은 바로 김학범 감독 본인이다. 잔디 상태나 상대의 밀집수비 역시 역대 아시안게임 대표팀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왔던 문제였고 어느날 갑자기 새롭게 발생한 일은 아니다.

코칭스태프의 준비 부족과 판단 착오가 문제

현재 김학범호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건 결국 코칭스태프의 준비 부족과 판단 착오 때문이다. 한국을 이긴 말레이시아는 1차전에서 한국에 6골차로 진 바레인에 2-3으로 덜미를 잡혔다. 베스트멤버의 변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한국은 경기력의 편차가 너무 컸다. 설사 로테이션을 가동하는 게 불가피했더라도 선수들이 일관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감독의 책임이다. 바로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이 한국에 패하여 탈락한 장면에서 보듯 국제대회는 한 번의 실수로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수선발과 활용에 대한 문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당초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손흥민-조현우-황의조의 와일드카드 3인방은 자신들이 이번 대표팀에 뽑혀야했던 이유를 어느 정도 증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팀의 주축을 이루는 23세 이하 선수들의 기량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데서 발생했다.

말레이시아전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백업 골키퍼 송범근을 비롯하여 황현수, 김정민, 김건웅 등은 조별리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A대표팀 출신으로 기대를 모았던 황희찬, 이승우, 김민재 등도 롤러코스터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진가를 다 보여주지 못했다. 유럽파와 A대표팀 출신들로 인하여 선수단의 '이름값'은 높아졌지만 역할이 중복되는 선수들이 많고 다양한 스타일과 포지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앞으로도 김학범호가 안고가야할 불안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냉정히 말하면 현재로서는 김학범호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당연히 기대할 만한 자격을 보여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많은 팬들과 상대팀조차도 한국을 아시안게임 축구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손흥민을 일부 스타 선수들의 병역혜택 문제와도 맞물려 사실상 아시안게임은 '무조건 금메달 아니면 실패'가 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이러한 압박감 속에서 김학범호는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불안한 경기력까지 겹쳐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토너먼트에서는 이제 더 이상 실수나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정상에 등극할 수 있다면 지금의 김학범호를 바라보는 비판과 우려의 시선도 모두 찬사로 바뀔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위기라면 결자해지도 스스로 이뤄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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