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작품 포스터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작품 포스터 ⓒ 도쿄 애니메이션

 

눈을 감고 고등학교 때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기억이 잘 안 난다. 분명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닐 텐데도 머릿속이 새까맣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다는 건 기억이 나는데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마도 내가 과거를 잊고 현재를 산다는 증거일 것이다. 헤어진 연인과의 연애에서 어디를 갔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어떻게 설레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려면 과거는 필연적으로 잊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라는 점에서, 대학생이 되기 바로 직전 단계라는 점에서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는 청춘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것 같다. 분명 거리를 돌아다니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사복을 입었을 때는 대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수능이라는 거대한 의무를 짊어지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학교에서 지내는 게 고등학생이니 그다지 자유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한 장면 ⓒ 도쿄 애니메이션

 

그렇지만 아무래도 옆 나라 일본의 고등학생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본도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고는 하나 우리나라만큼은 아니고,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나름의 자치 생활을 누린다. 물론 일본 친구들도 입시 공부에 열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아리 활동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동아리 활동이 청춘의 상징이 되어버린 일본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학생은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일본과 한국의 고등학생 시절이란 사소하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게 바로 '동아리' 활동이다.

 

일본의 청춘이 대학생보다 고등학생으로 기억되는 건 아무래도 그런 특수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지만, 나름의 자율성으로 동아리를 이끌어 나가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모호함이 강조된다. 어쩌면 앞으로 그들이 마주할 사회를 예행연습한다는 점에서 '동아리'라는 작은 사회가 유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지만 명확하게 상하관계와 역할이 부여된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그들이 얻는 게 무엇일지는 그 누구라도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일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아왔고 그중에는 고등학생이 나오는 청춘물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울려라! 유포니엄>은 아무쪼록 기억에 남을 만한 애니메이션이었다. 클래식 + 청춘 + 고등학생 조합의 이 애니메이션은 '쿄토 애니메이션'에서 만들었는데, 1기와 2기를 통틀어 각각 13화 총 26화의 분량이다. '취주악부'라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1학년생 오마에 쿠미코(쿠로사와 토미요 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물 간의 관계는 음악의 선율만큼이나 무척 섬세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나는 이 섬세함이 고등학교 시기의 아이들만이 꿈꿀 수 있는 미래, 어른이 되기 전의 여러 가짓수처럼 느껴져 꽤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취주악부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한 장면 ⓒ 도쿄 애니메이션

 

취주악부는 대략 수십 명이 모여 오케스트라 연주를 목표로 하는 동아리이다. 그렇기에 보통 동아리보다 인원이 많고 또 인물 간의 유대가 중요하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인물 간의 유대를 보여주는 동시에 '각각의 인물'의 상황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케스트라는 파트가 모여 합주를 이루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품은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진행되지만 그녀가 마주하는 인물들의 단면만을 보여주지 않고 여러모로 둘러본다. 관객은 그것을 통해 개인의 시점에서 보는 타인이 아니라 '타인을 개인의 시점에서' 보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작품 밖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만큼 전지적 시점을 취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는 주인공을 내세우고 주인공의 입장에서 상황을 정리해보겠지만 우리는 이 작품에서 오마에 쿠미코를 통해 취주악부 전반을 둘러보게 된다. 취주악부 인원이 64명으로 거대한 만큼 부원 모두를 일일이 알 수 없다는 건 애니메이션 전개의 분량적 한계이겠지만, 그럼에도 핵심 인물 몇몇의 색이 뚜렷하기에 우리 주변의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의 과거를 대입해볼 수 있다는 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주인공 오마에 쿠미코는 이 동아리에 친구 3명과 함께 들어오게 되는데, 작품의 전반부가 이 친구들과의 유대를 보여준다면 후반부는 동아리 전반에 걸친 유대를 쌓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이 1학년 입학에서 시작해 2학년 승급까지를 다루기에 전반부는 봄부터 여름이고 후반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물의 관계와 심리는 파종의 봄부터 수확의 가을까지 계절적인 성장을 거두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하복에서 동복으로 바뀌는 복장과 계절 변화에 따른 배경 이벤트들은 작품을 보는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덧붙여서 계절에 상관없이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들은 클래식 음악 마니아든 아니든 간에 심미적인 편안함을 준다.
 
아무래도 이 작품이 청춘을 다루는 만큼 등장인물이 어떤 꿈을 중심으로 뭉쳤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주제의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특히나 그 주제의식이란 게 '고등학생'이라는 삶의 도입부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평생 간다는 말이 있듯이, 고등학교 때 꾸던 꿈이 대학 전공으로 이어져 삶의 목표로 이어지는 건 흔하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삶의 의미나 내면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꿈이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구체적인 것으로 뭉쳐진다. 취주악부인 만큼 취주악 연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게 목표이다. 그리고 이는 대다수 청춘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이 채용하는 전개 방식인데, 이를테면 <슬램덩크>와 <공포의 외인구단>정도가 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는 '스포츠'라는 분투적인 모습을 그들의 대립관계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포츠가 갖는 파워풀한 힘을 인물에 부여하고, 그 힘의 줄다리기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인물 성장의 주요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울려라! 유포니엄>의 매력은 스포츠가 아닌 '동아리'를 다룬다는 점이다. 스포츠가 아닌 동아리에 방점이 찍힌 이 작품은 개인의 성장이 동아리의 성장과 매치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동아리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전국대회우승은 그저 서사적으로 제시된 목표일 뿐 인물 자체의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전국대회우승에 대한 인물들의 생각을 주인공이 보조하는 형태로 짜여있다. 오마에 쿠미코는 주인공임에도 특출난 실력을 갖추지도 않았고 리더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엿보고 심리적인 도움을 줄 뿐이다. 나는 이런 부분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울려라! 유포니엄>은 현실적인 상황과 현실적인 성격의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동아리'가 아닌 '청춘'의 모습을 조명한다. 오마에 쿠미코는 여느 뚜렷한 성장도 없고 특출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시기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진 여고생이라는 점에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이른바 '청춘물'이라 불리는 장르에서 '성장하는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관객의 성취욕을 대리만족시키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현실적인 모습으로 '고민하는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관객의 '삶'을 선택지 위에 올려 두는 것도 좋다.
 

구석에 자리 잡은 유포니엄이라는 악기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한 장면 ⓒ 도쿄 애니메이션

 

동아리는 명확한 '꿈 공동체'이기에 결과적으로는 '같은 꿈'을 꾼다. 마찬가지로 <울려라! 유포니엄>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은 개인의 사정을 품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개인의 사정에서 익숙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인물이 꿈을 대하는 방식, 인물이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니 어느 인물 하나쯤은 감정 이입이 될 것이다. 작품은 관객을 향해 선택지를 펼쳐 둔다.

 

물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개인의 삶이 정당화 (또는 희생) 될 수는 없다. 동아리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선택일 뿐 동아리의 권위가 삶에 침투하는 순간 그건 더는 동아리가 아니다. 말하자면 타인에 의해 강요받는 순간 그건 더는 꿈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 그러한 강요는 없다. 등장인물은 주변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싸우고 해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면은 작품의 인물들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외부로부터의 갈등이 아니라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동아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강요로 동아리에 얽매이게 된다. 입시를 위해 공부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동아리 활동을 한다며 구박을 받거나, 이것이 과연 자신의 진로가 될 수 있을지 간략하게 고민해보기도 한다. 혹은 동아리 내에서 권위와 맞서 싸우며 실력 위주로 팀을 짜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며, '내면의 갈등'이자 '개인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품을 보다 보면 이 귀여운 여고생들의 대화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아무래도 이들이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울려라! 유포니엄>의 소녀들은 청춘이라는 점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지만 그들이 진정 빛나는 건 청춘에게 주어진 꿈의 특권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캐릭터 특징을 요약하자면 시대적 배경에서 캐릭터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 상상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작품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관객은 지금 자신이 속한 사회에 존재하는 인물의 설정에 이입하게 되고, 그들의 현실적인 선택이 자신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하며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나는 여타 청춘들을 다룬 작품들이 같은 목표를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 내는 방식에 불만이 있었다. 그런 작품들은 보통 '얼마나 더 열심히 하는지'만을 주목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물의 목표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변질된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목표는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만큼 꿈이 확고하다는 것이겠지만, 나는 '청춘이 청춘인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기로에 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그 자체로 개인의 발전 가능성을 제약하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그런 면에서 <울려라! 유포니엄>의 주인공들은 삶의 한복판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더불어 용기를 얻게 된다. 우리는 26화로 분리된 애니메이션 세계의 그녀들을 관찰하며 '감정이입'은 가능하되 그들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녀들로부터 무언가 교훈을 얻을 수는 있어도, 그에 따른 행동은 결국 현실의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더욱 응원하고 싶어진다. 유포니엄은 지금 당신이 속으로 질문하듯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이기 때문이다. 울려라! 유포니엄. 언제가는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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