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크레더블 2>메인 포스터 _

▲ 영화<인크레더블 2>메인 포스터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14년 만에 <인크레더블>이 후속편으로 등장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유연했고, 강했습니다. 2편의 핵심으로 꼽히는 '워킹맘과 육아 대디'라는 설정 외에도 <인크레더블2>는 여러 면에서 시대의 흐름에 부합했고, 시대의 부름에 응답했습니다. 개봉 6일째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는 굳건함도 <인크레더블2>의 이러한 '섬세함'때문 아닐까요.

숨겨진 노동을 조명

<메리다와 마법의 숲> <모아나> 등 픽사 애니메이션 속 자주적 여성은 종종 등장했지만, 이번 <인크레더블2>는 나아가 가사노동에 대해 지금까지의 대중 애니메이션에선 볼 수 없었던 섬세한 전개를 꺼내 보였습니다.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헬렌이 처음 윈스턴에게 임무를 제안받았을 때 밥보다 더욱 고민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막내 잭잭은 어쩌며, 대쉬의 숙제는 또 어떡하냐고 걱정합니다. '가정'에서의 주요 업무가 헬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걸 보여주며, 이는 곧 대다수 가사노동 여성을 대표합니다. 여성일수록 가정의 기초적 업무(청소에서부터 시작되는), 아이들의 교육에 더 많이 귀속되어 있음을 헬렌을 통해 녹여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헬렌의 영화일까요?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가사노동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맞지만, 오히려 이 부분에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밥이었습니다. <인크레더블2>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전개를 이어가다 클라이맥스에서 만납니다. 하나가 일라스티걸로 대표되는 '바깥 일'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인크레더블로 대표되는 '집안에서의 일'입니다. <인크레더블2>는 밥을 통해 가사노동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편의 초강력 주인공이었던 밥에게마저 가사노동은 너무 어렵고 고된 일이었습니다.

산업화에 의한 발명품들(청소기, 세탁기 등)이 이제 많은 부분에서 가사노동을 돕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사노동에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가사노동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집 안은 이전보다 더욱 깨끗해야 하며,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 등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인크레더블2>는 밥을 통해 이러한 요소들을 영화 속에 섬세히 녹여냈습니다. 밥은 대쉬의 숙제를 위해 매일 밤 새로운 공부를 합니다. 거기에 자신이 망친 것 같은 바이올렛의 연애사까지 걱정하고, 호기심이 왕성한 잭잭을 위해 끊임 없이 책을 읽어줘야 하며, 17개에 달하는 무궁무진한 잭잭의 잠재력(능력)을 콘트롤해야 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사노동의 영역에 밥이 들어오게 된 겁니다. 가사노동은 집안에서의 기본적인 청소, 식사로만 완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완벽한 청소와 더 나은 식사, 아이들에 대한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돌봄이 가사노동의 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일들이 결코 쉽지 않음을 밥을 통해 보여줍니다.

사회학자 앤 오클리에 따르면 이러한 가사노동은 대단한 중요성을 지니지만, 잘 인식되지도 않고,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아 가사노동에 헌신하는 것은 고립되고, 소외되며 본질적인 만족감을 결여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사회학>, 앤서니 기든스, 필립 서튼)

영화 <인크레더블 2> 메인 예고편 _

▲ 영화 <인크레더블 2> 메인 예고편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히어로 일을 누구보다 원했던 건 밥이었습니다. 그는 헬렌이 임무를 멋지게 수행했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밥은 TV의 모든 채널을 장식해버린 헬렌을 보며 응원하는 마음 한편에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낍니다. 앞 부분에 분명 밥은 가사노동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이 밥의 성취를 충족해 줄 수는 없으며 멋지게 해내더라도 아무런 보상도 만족감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사 일이 끝나면 바로 다음 가사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이것이 지금까지 대부분 국가에서 다수의 여성들이 겪어온 삶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경력단절 여성도, 맞벌이 여성도 포함되어 있을 테죠. <인크레더블2>는 이를 헬렌이 아닌 밥을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혹은 세심하게 보여줍니다. 일라스티걸이 밖에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불의와 싸우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히어로였다면 밥은 안에서 사춘기 딸의 연애와 나날이 어려워지는 수학,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잭잭의 돌발행동과 집안일 앞에 전투적인 시간을 보내고 해결해 나가는 현대의 히어로였습니다.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영화는 일라스티걸은 일을 쉽게 쉽게 해결해나가는 반면, 인크레더블은 매우 힘겹게 집안일을 수행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가사노동 또한 바깥 일 못지않게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헬렌과 밥의 역할 바꾸기를 통해 숨겨진 노동을 조명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문장들을 영화 속에서 섬세하게 다뤄냈습니다. <인크레더블2>가 시대의 변화와 부름에 응답한 애니메이션이자, 히어로 영화라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히어로라고 예외 없다

앞서 언급했듯 <인크레더블2>는 '워킹맘과 육아 대디'라는 설정 외에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모든 히어로 영화가 그러하듯, 불의와 싸우는 과정에선 시내가 뒤죽박죽이 됩니다.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건물이 파괴되며 부서집니다. 울적하게도 히어로와 악당의 싸움에서 도심 속 한 사람 한 사람은 개미 목숨과 다를 게 없어집니다. 그래서 악당을 잡기 위해 건물을 부수고, 자동차를 날리는 히어로 또한 악당 못지않게 무서웠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 영화의 축을 이루는 '히어로 금지법'은, 아무리 히어로라 할지라도 이들로 인해 발생하는 무고한 피해를 국가도 그냥 넘어가 줄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같은 히어로물인 어벤저스(시빌 워)의 '슈퍼히어로 등록제'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히어로 금지법'은 정치적 셈법에 의해서가 아닌, 기본적인 옳고 그름, 혹은 정의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악당을 잡을 수도, 범죄를 막을 수도 없다면 이들이 어마 무시한 힘을 이용하며 굳이 세상에 나와야 할 이유 또한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 '개미 목숨'들에겐 악당이나 히어로나 위협이 되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키지 않으면 혼동뿐이다"라는 헬렌의 말은 정의에 가까웠습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히어로가 법을 지켜야 하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물론 이것이 히어로를 억압하고, 능력을 숨겨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닐겁니다. '배려해서 사용하는 능력'을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라스티걸이 무고한 피해와 파괴 없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시민들은 환호했고, '히어로 금지법' 폐지 여론이 모아졌습니다. 윈스턴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일러스티걸을 일의 적임자라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헬렌은 '여성'이기에 <인크레더블2>의 주인공이 된 게 아니라, '배려해서 사용할 줄 아는' 그녀의 능력이 일라스티걸을 이번 화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히어로 금지법'이 생겨날 만큼 이들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배려하는 것입니다. 히어로들이 시민들에게 할 수 있는 배려는 악당을 물리치는 것 이전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상황에서의 적절한 능력입니다. 히어로라고 예외 없는 시대에, 일라스티걸은 넘치는 파워를 배려해서 사용할 줄 아는 훌륭한 적임자였던 것입니다.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지금까지 히어로들에게 시민은 '지켜야 할 대상'인 동시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일라스티걸은 같은 모순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히어로가 활동하는 데 있어, 시민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미디어의 범람과 히어로의 존재 이유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인크레더블2>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에블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에블린은 <인크레더블2>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철학적 영화로 만들어준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녀가 스크린 슬레이버를 만들어 히어로의 합법화를 방해하려 한 이유는,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가 인류 절반을 없애려 한 이유와 맥을 같이 합니다. 과정이 어떠하든, 두 인물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본인들만의 철학을 가지고 악역을 자처했습니다.

에블린은 '스크린 슬레이버', 즉 스크린의 노예라는 현대인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용하여 일라스티걸과 대적합니다. 미디어를 이용한 가짜 뉴스와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조작이 쉬워지며 '속이기 위한 작업'들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슬레이버의 말처럼 '소중한 경험까지도 멀리서 지켜보는'세상이 됐습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행복은 '하는 것'에서 '보는 것'이 되어버리기도 했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을 차지하게 된 스크린이 영화 속 악당으로 등장했기에, 에블린의 말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유효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에블린은 또한 히어로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슈퍼히어로는 우릴 나약하게 만들어." 즉 자신들의 안위를 히어로에게 의존하며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마저 위임한다고 꼬집습니다. 히어로의 탄생에는 정의의 실현과 악의 처단을 바라는 우리의 욕망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 우리는 아직도 히어로를 바라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히어로가 없기에,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차가운 겨울, 뜨거운 여름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에블린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영화 <인크레더블 2> 스틸 이미지 _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이 외에도 유쾌하고 통쾌한 액션은 인크레더블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관객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어떤 액션 영화랑 비교해도 손색없는, 가슴이 뻥 뚫리는 액션이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응하되, 그 본분은 잊지 않았습니다. 3편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인크레더블 2 픽사 일라스티걸 브래드버드 현재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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