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축구의 영원한 라이벌이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9회 연속 본선행에 성공했고, 일본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참가하기 시작해 한국과 6회 연속 동반으로 본선 무대를 밟고 있다.

한일 양국 축구 팬들에게도 서로의 성적은 관심사다. 물론 월드컵 본선에서 직접 맞붙을 일은 거의 없지만, 자국의 성적 다음으로 상대 국가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은근한 경쟁심리가 작용한다.

월드컵, 동반 활약하거나 동반 탈락하거나

기자회견 하는 신태용 감독 신태용 남자축구대표팀 감독이 27일 오후 대구스타디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기자회견 하는 신태용 감독 신태용 남자축구대표팀 감독이 5월 27일 오후 대구스타디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재미있는 사실은 첫 동반 출전이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두 팀은 월드컵 본선 마다 성적의 사이클이 묘하게 비슷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일본이 16강에 올라 나란히 사상 최초로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하지만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두 팀 모두 조별리그의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각각 국내파 감독 체제로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하며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웠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또 동반 탈락의 아픔을 함께 겪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도 두 팀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일단 한국과 일본 모두 중간에 외국인 감독이 국내파 감독으로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국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최종예선 과정에서 성적부진으로 교체되며 신태용 감독 체제로 어렵게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일본은 지역예선을 통과시킨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이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두고 경질되며 니시노 아키라 감독에게 지휘봉이 돌아갔다. 대표팀 감독교체가 빈번한 한국에 비해, 월드컵이 열리는 4년 주기로 되도록 감독의 임기를 보장하던 일본으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일이다.

두 팀 모두 감독이 교체되며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신태용 감독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U-20 대표팀, 올림픽팀 등 각급 대표팀 감독과 코치를 두루 역임한 베테랑 지도자다. 국내파 감독으로는 드물게 과감한 공격 축구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한국대표팀은 신감독의 부임 이후, 손흥민의 최전방 기용과 4-4-2 전술의 가능성, 동아시안컵 우승 등 나름의 성과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불안한 수비 조직력과 핵심 선수들의 연이은 줄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키라 감독은 나이 차를 제외하면 '일본판 신태용'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경력의 인물이다. 일본의 명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지만 선수와 지도자 모두 클럽에서의 경력이 더 화려하고 상대적으로 국가대표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대표팀을 맡기전에 U20과 U23대표팀을 모두 지휘해 본 경험이 있는 것도 신태용 감독과 비슷하다.

니시노 감독은 감바 오사카와 가시와 레이솔 등을 이끌며 자국 J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대표팀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강호 브라질을 1대 0으로 제압하는 '마이애미의 기적'을 연출한 것이 그의 대표팀 지도자 경력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골득실 차이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당시 일본과 한조에 속했던 나이지리아와 브라질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팀이었으니 니시노 감독 입장에서는 불운이었다고 할만하다.

역대 최고령으로 라인업 꾸린 일본

 일본 축구 선수들이 30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진행된 가나와의 경기를 마치고 서로 다독이고 있다.

▲ 일본, 니시노 감독 데뷔전서 가나에 0-2 패 일본 축구 선수들이 30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진행된 가나와의 경기를 마치고 서로 다독이고 있다. ⓒ 연합뉴스/EPA


니시노는 2016년부터 현장을 떠나 행정가로 변신해 일본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 활약해왔다. 그러다가 2018년 갑작스레 경질된 비하드 할릴호지치 감독의 후임으로 일본 대표팀 감독에 전격 취임했다. 일본축구계 입장에서는 풍부한 지도자 경력에 최근까지 기술위원장으로 대표팀의 상황이 가장 가까이서 파악하고 있었던 니시노 감독을 선택함으로서 감독교체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니시노 감독이 현장을 떠난지 3년이 돼 가는 데다 2010년대 이후로는 변변한 경력이 없다는 점이다. 선수와 지도자를 통틀어 월드컵 본선을 겪어본 경험도 전무하다. 이점은 신태용 감독도 마찬가지지만 최종예선 막바지인 지난해 7월부터 지휘봉을 잡은 신감독은 어느 정도 선수를 파악하고 자신의 축구를 시도할 여유가 있었다. 본선 확정 이후에는 스페인 출신의 하비에르 미냐노 코치 등 국제 경험이 많은 스태프들을 추가 영입하며 본인의 약점을 보완했다.

이에 비해 말 그대로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지휘봉을 잡은 니시노 감독에게는 모험을 하거나 자신의 색깔을 내세울 여유가 없었다. 자연히 최종명단도 익숙하고 검증된 선수들 위주의 보수적인 라인업이 꾸려질 수밖에 없었다. 니시노 감독은 최종명단에서 할릴호지치 감독 체제에서 홀대받던 가가와 신지, 혼다 케이스케, 오카자키 신지 등 베테랑 멤버들을 대거 발탁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니시노 감독이 러시아에서 이끌게 될 일본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8.2세로 역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서는 일본 대표팀 중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30대를 넘긴 선수들만 해도 무려 7명이다.

일본 축구가 이번 월드컵에서 니시노 감독에게 원하는 역할은 분명하다. 바로 전통적인 일본축구 스타일로의 회귀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패싱축구와 점유율에 기반한 아기자기한 축구를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며 '스시타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할릴호지치 전 감독은 이러한 일본 축구의 스타일을 벗어나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직선적인 축구를 도입하려 했으나 많은 시행착오에 부딪혔고 일본 축구계와 갈등을 빚었다. 일본이 지향하는 스타일과 맞지않았던데다 불화설이 잦았던 할릴호지치 감독을 월드컵을 앞두고 교체하는 강수를 뒀지만 무리수였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월드컵 앞둔 한국-일본, 기대감은 낮지만

파이팅 외치는 태극전사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전지훈련 캠프인 오스트리아로 출국하기 전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2018.6.3

▲ 파이팅 외치는 태극전사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전지훈련 캠프인 오스트리아로 출국하기 전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2018.6.3 ⓒ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 두 팀 모두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은 편이다. 한국은 독일-멕시코-스웨덴과 한 조에 편성되며 이번 대회 아시아팀을 통틀어 가장 험난한 죽음의 조에 속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년 전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홍명보호보다 대진운이 더 나쁘다는 평가다. 홍명보 전 감독과 마찬가지로 신태용 감독도 본선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에서 지휘봉을 잡은 데다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여러 악재로 인해 대표팀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가 낮은 상황이다.

니시노의 일본은 폴란드-세네갈-콜롬비아와 함께 상대적으로 그나마 무난하다고 평가받는 H조에 편성됐다. 나름 각 대륙을 대표하는 강호들이기는 하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할만한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월드컵 우승국이 한 팀도 없는 유일한 조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조편성이 한국과 엇갈렸다는 점에서 국내 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일본도 최근 감독 교체와 월드컵 최종명단을 둘러싼 잡음, 평가전에서의 부진이 겹치며 불안한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아시아 팀은 총 5팀이다. 4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아시아팀은 총 4팀을 합쳐 조별리그 통과는커녕 단 1승도 거두지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 회복을 노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아시아 축구를 대표해 온 한국과 일본이 활약을 펼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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