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트트릭 기록하는 보스니아 비슈차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보스니아 비슈차가 세번째 골을 넣고 있다.

▲ 해트트릭 기록하는 보스니아 비슈차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보스니아 비슈차가 세번째 골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호가 러시아 월드컵 본선 출정식을 앞두고 국내에서 치른 마지막 평가전에서 불안감만 남겼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A매치 평가전에서 상대 공격수 에딘 비슈차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는 졸전끝에 1-3으로 완패했다. 전반 30분 빠른 역습에 이은 이재성(전북)의 슈팅으로 영패를 면한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보스니아전은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유럽팀, 특히 스웨덴전을 위한 가상의 스파링 파트너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날 경기는 스웨덴에 대한 공략법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상대국들에게 한국 공략법만 똑똑히 가르쳐준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스리백 전술 구현 위해서는 뛰어난 윙백이 있어야 하는데...

신태용 감독은 이날 예고한 대로 스리백을 가동하는 3-5-2(3-4-1-2)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중앙미드필더에 익숙한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을 스리백의 중앙에 세워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를 오가는 포어 리베로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전술 실험을 단행했다. 정우영(빗셀 고베)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에게 더블 볼란치로 중원을 책임졌다. 최전방에는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잘츠부르크) 투톱을 가동하며 이재성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뒤를 받쳤다. 중앙에서 미드필드와 수비 숫자를 늘려 상대의 공격 기회를 최대한 차단하고 빠른 역습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신태용호는 부임 이후 4-4-2를 플랜 A로 가동했을 때 성적과 내용이 모두 가장 좋았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상대팀에 따른 맞춤형 전술의 필요성과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라는 변수에 대처하기 위하여 줄곧 변형 스리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최대한 다양한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도 자체는 해볼 만했다.

문제는 1년 가까운 시간이 되어가는 동안 거듭되는 실험에도 불구하고 스리백의 완성도와 효율성이 모두 기대 이하라는 사실이다. 신태용호는 스리백을 가동한 경기에서 결과도 결과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강팀을 상대로 수비를 강화하겠다고 스리백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수비 뒷공간을 내주거나 최전방과 2선의 간격이 벌어지며 중원싸움에서도 주도권을 뺏기는등 약점만 두드러졌다. 감독의 머릿속에 아무리 그럴듯한 전술이 있어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구현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보스니아전도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리백을 중앙을 두텁게 하는 대신 좌우 측면에서 공수를 모두 넘나들어야 하는 윙백의 비중이 크다. 한국이 스리백 전술로 최대의 성공을 거둔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이영표와 송종국이라는 비록 이 대회 한정이지만 '월드클래스' 수준의 활약을 보여준 윙백들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선수구성상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한 윙백이 없다.

보스니아전에서 신 감독은 김민우(상주)-이용(전북) 콤비를 좌우 윙백으로 기용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공수 양면에 걸쳐 균형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나마 이용이 전반까지는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공격적인 면에서 기여했다면 왼쪽의 김민우는 심각할 정도로 부진했다. 상대 수비를 허물 수 있는 예리한 크로스나 빠른 돌파도 보여주지 못했고 수비 전환시에도 몸싸움이나 위치 선정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스리백의 특성상 강한 체력과 활동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윙백이지만 오히려 보스니아는 역습 상황에서 우리의 윙백들이 전진하며 발생한 빈 공간을 놓치지 않고 공략을 시도했다. 동료 선수들이 빈 자리를 커버해줘야 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오반석-윤영선이나 센터백 역할이 익숙하지 않은 기성용에게는 그 정도의 수비 센스가 없었다.

보스니아가 이날 기록한 3골 모두 비슷한 패턴으로 실점을 허용했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왼쪽 측면에서 대각선 방면으로 길게 올려준 크로스가 아무런 저지를 당하지 않았고 비슈차의 슈팅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신태용식 스리백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한 장면이기도 했다.

이제 실험이 아닌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이재성의 동점골 장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한국 이재성이 보스니아 토니 슈비치를 피해 드리블 후 슛하고 있다.

▲ 이재성의 동점골 장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한국 이재성이 보스니아 토니 슈비치를 피해 드리블 후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성용의 수비수 기용도 사실상 실패했다. 기성용은 특유의 장거리 오픈 패스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수행하는 플레이메이커다. 기성용은 패스에 따라 대표팀의 경기력이 달라질 정도다. 하지만 그는 일대일 수비력이나 제공권이 뛰어난 전문 수비수는 아니다.

보스니아전만 놓고보면 기성용 개인의 큰 실수는 없었지만 전반 오반석-윤영선이나 후반의 권경원-정승현과 함께 호흡을 맞춘 스리백의 안정감은 기대에 못 미쳤다. 당초 장신 공격수 에딘 제코를 비롯한 보스니아의 제공권을 가장 경계했지만 오히려 수비수들의 협력플레이와 공간 이해도가 떨어져 상대의 후방 침투를 더 자주 허용한 것이 대량 실점의 빌미가 되었다는 것은 3월 폴란드나 북아일랜드전과는 또 다른 불안감을 키웠다.

그나마 공격진에 대해서는 손흥민-황희찬의 투톱 조합이 안정궤도에 접어들었고 부상을 덜고 돌아온 이재성까지 가세하며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온두라스전에 이어 활기 넘치는 플레이로 가능성을 보여준 이승우 역시 최종엔트리까지 승선했다. 하지만 측면지원이 빈약한 스리백에서는 손흥민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어렵다는 전술적 약점과, 장신 공격수 김신욱에 대한 활용법을 찾지못했다는 문제점은 이번에도 개선이 되지 않았다.

신태용호는 이로써 유럽팀을 상대로만 3연패 포함 역대 전적에서 2승 1무 4패에 그치는 부진을 이어갔다. 그나마 지난 1월 터키 전훈에서 약체로 꼽히는 몰도바와 라트비아에게만 승리했을 뿐, 본선진출국이나 그에 준하는 수준의 러시아, 세르비아, 북아일랜드, 폴란드 등에게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신태용호의 '유럽 공포증'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보스니아는 지난 온두라스전에 비하면 한국에게 있어서 좋은 평가전 파트너였다. 최선을 다한 경기로 한국이 처해 있는 현 주소와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될 상대는 모두 보스니아보다 뛰어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팀들이다. 신태용 감독에게는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보스니아전 패배로 출정식 분위기마저 찬물을 끼얹은 가운데, 이제 실험이 아닌 성과로 증명해야 할 신 감독이 과연 통쾌한 반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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