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로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전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회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의 전술적 대응은 가볍게만 보였다. 러시아 월드컵 본선 리그에서 스웨덴-멕시코-독일 중 최소 두 팀의 발목을 잡아야하는 입장이기에 더 망설일 여유가 없다. 오스트리아 전지 훈련을 위해서도 더 분명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1일 오후 8시 전주성에서 벌어진 2018 러시아 월드컵 대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완패하며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스웨덴 대비 '쓰리 백 수비'

영광스러운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기록)에 가입하는 바로 이 경기에서 주장 기성용은 아주 오랜만에 센터백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그 자리에 뛴 경험이 있기에 낯선 역할은 아니었지만 왼쪽 오반석, 오른쪽 윤영선과의 조화는 매끄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급하게 빌드 업을 시도하다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공을 빼앗기는 위험 요소는 기성용 덕분에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능력은 전주성을 찾아온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해트트릭 기록하는 보스니아 비슈차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보스니아 비슈차가 세번째 골을 넣고 있다.

▲ 해트트릭 기록하는 보스니아 비슈차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보스니아 비슈차가 세번째 골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어쩌면 고맙게도 상대 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주장이자 간판 골잡이 에딘 제코가 한국 대표팀이 스웨덴과의 월드컵 첫 경기를 준비하며 들고 나온 쓰리 백 시스템을 간단히 흔들어주었다. 상대 팀의 원 톱 시스템에도 이렇게 쉽게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듯 말이다.

경기 시작 후 13분만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골잡이 에딘 제코가 동료 토도로비치와의 간결한 2:1 패스를 통해 위력적인 오른발 슛을 한국 골문 바로 앞에서 아찔하게 날렸다. 김승규가 지키고 있는 한국 골문 위를 살짝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러는 사이에 한국 수비의 중심 기성용은 물론 왼쪽 윙백 김민우, 왼쪽 수비수 오반석이 상대 선수들을 제대로 밀어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8분 뒤에는 반대쪽도 휑하니 뚫렸다. 상대 팀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인물인 에딘 제코를 완전히 놓친 것이다. 오프 사이드 함정은 무용지물이었고 에딘 제코가 골키퍼 김승규와 1대1로 맞섰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김승규 골키퍼가 각도를 빠르게 좁히며 제코의 발끝 슛을 막아낼 수 있었다.

쓰리 백 수비 시스템의 핵심은 이들 세 명의 수비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비 셋과 함께 양쪽 측면에 자리잡은 윙백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포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신태용 감독은 오른쪽 윙백에 이용, 왼쪽 윙백에 김민우를 경기 종료 시점까지 뛰게 했다. 하지만 이용의 경쟁력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정우영, '그냥 못 가!'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정우영이 수비하고 있다.

▲ 정우영, '그냥 못 가!'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정우영이 수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이지만 오른쪽 윙백 이용에 치우친 전술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용은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면서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감내하며 수비 가담은 기본이었으며 날카로운 크로스를 시도하는 윙백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나마 이용 덕분에 유럽의 강팀을 상대로 측면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팀에 유능한 윙백 혹은 풀백 자원이 있다는 것은 전술적 유연성을 말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좌우 균형이 깨진 측면은 상대 팀에게 어김없이 놀림감이 되고 만다. 월드컵 본선에 가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듯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선수들이 제대로 한 수를 가르쳐준 셈이다.

손흥민의 볼멘소리 "민우 혀엉!"

그나마 후반전에는 전반전에 엄청난 활동량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오른쪽 윙백 이용 대신 왼쪽 김민우에게 공격 연결 고리 역할을 몇 차례 맡겼다. 크로스가 필요했고 중앙 미드필더나 투 톱(손흥민, 황희찬)과의 연계 플레이가 필요했다.

짧게 주고받는 연계 플레이는 상대 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수비수들이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쉽게 차단되었고 크로스는 반대쪽에서 시도한 것만 못했다. 그 중 하나가 어이없게도 골문 뒤 관중석 방향으로 방향으로 날아가자 크로스를 기다렸던 손흥민의 입에서 "민우 혀엉!"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좌우 윙백의 균형 잡힌 전술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이 평가전 내용 몇 장면만으로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반면에 상대 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한국의 측면 대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원한 대각선 패스 세 개로 경기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그 주역은 간판 골잡이 에딘 제코가 아니라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에딘 비슈차였다. 28분에 엘다르 시비치의 왼쪽 측면 크로스가 자기 앞으로 흘러 넘어온 것을 잡아서 시원하게 오른발 대각선 슛을 낮게 깔아 성공시키며 골 결정력의 중요성을 한국 선수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 이전에 한국도 황희찬(7분)과 손흥민(27분)에게 각각 한 차례씩 결정적인 역습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터치가 거칠었고 연계 플레이 가능한 동료가 보이지 않아 슛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재성의 동점골 장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한국 이재성이 보스니아 토니 슈비치를 피해 드리블 후 슛하고 있다.

▲ 이재성의 동점골 장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한국 이재성이 보스니아 토니 슈비치를 피해 드리블 후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30분에 황희찬과 이재성의 부드러운 연계 플레이가 빛나며 멋진 동점골이 나왔지만 한국 대표팀의 기세는 딱 거기까지였다. 전반전 추가 시간이 표시되자마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에딘 비슈차에게 또 한 방을 제대로 얻어맞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베시치의 역습 대각선 패스 한 방에 한국 쓰리 백 너머가 휑하게 보였다. 이 평가전에서 한국의 왼쪽 측면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결승골 순간이었다.

골키퍼 김승규가 과감하게 각도를 줄이며 앞으로 나오려다가 멈추는 순간 에딘 비슈차의 오른발 슛이 골문을 갈랐다.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골키퍼 자리도 불안하기만 하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왼쪽 수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오반석 대신 권경원을 들여보냈지만 충분히 준비한 쓰리 백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한계는 여전했다. 79분에 후반전 교체 선수 리야드 바이치의 크로스를 받은 에딘 비슈차가 우리 선수들이 넘기 힘든 벽을 상징하듯 기막힌 오른발 발리 슛으로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74분에 가운데 미드필더 주세종이, 80분에 빠른 공격수 이승우와 문선민이 교체로 들어갔지만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전술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87분에 수비수 기성용을 대신하여 키다리 골잡이 김신욱까지 들여보냈지만 바로 그 전주성에서 익숙한 오른쪽 크로스가 김신욱의 머리를 한 차례 겨냥한 것 말고는 딱히 괜찮은 변화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종료 휘슬 소리를 들어야 했다.

국내 마지막 평가전 '의문 부호' 남긴 채 끝낸 신태용호

이제 한국 대표팀은 2일 23명의 최종 엔트리를 발표한 뒤 일요일에 월드컵을 대비한 마지막 전지 훈련 장소인 오스트리아로 날아간다. 7일에 볼리비아와의 마지막 공개 평가전을, 11일에 세네갈과의 비공개 평가전을 끝내고 러시아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신태용 감독은 출정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이 끝난 뒤 인터뷰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실수로 승리를 내줘 안타깝다"는 말을 했다. 우리의 대응 전술을 완전히 공개하면 안 되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이 모호한 표현처럼 의문 부호만 남은 국내 평가전을 씁쓸하게 끝냈다.

이제 단 두 차례의 평가전만 남았기에 전술면에서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스웨덴-멕시코-독일이라는 강팀들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승리라는 정답을 찾기는 힘들더라도 감독이 선택한 전술을 효율적으로 펼치기 위해 밸런스 유지는 필수다. 한쪽에 치우친 한국 포메이션을 두고 그 빈틈을 파고들지 않을 상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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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러시아 월드컵 대비 축구 평가전 결과(1일 오후 8시, 전주성)

★ 한국 1-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득점 : 이재성(30분,도움-황희찬) / 에딘 비슈차(28분,도움-엘다르 시비치), 에딘 비슈차(45+1분,도움-무하메드 베시치), 에딘 비슈차(79분,도움-리야드 바이치)]

◎ 한국 선수들
FW : 황희찬(80분↔문선민), 손흥민
MF : 김민우, 이재성(80분↔이승우), 구자철(74분↔주세종), 정우영, 이용
DF : 오반석(46분↔권경원), 기성용(87분↔김신욱), 윤영선(74분↔정승현)
GK : 김승규
- 경고 : 정우영(56분) / 토니 슈니치(17분), 엘리스 사리치(58분)
축구 월드컵 신태용 손흥민 에딘 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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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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