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인지라 국내 격투 팬들에게 UFC에서 활약하는 코리안 파이터들은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평소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던 언더카드 매치업에 메인이벤트 이상의 흥미를 쏟는가하면 지루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보기도 한다.

이유는 단 하나, 같은 국적의 선수가 UFC에서 타국 강자와 승부를 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어떤 이들은 '국뽕'이라는 말을 써가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하지만 스포츠 세계에서 누구를 응원하던 그것은 각자의 마음이다. 한국선수가 외국 상대와 경기를 가졌을시 누구도 국내파를 응원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자연스럽게 응원하고 싶은 쪽을 선택할 뿐이고 그 과정에서 코리안 파이터에 대한 비중이 많이 클 뿐이다. 이는 다른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다. 100%는 아니겠으나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의 팬들이 자신과 국적이 같은 선수에게 응원을 보낸다. 어찌보면 스포츠라는 분야 전체가 그러한 부분을 등에 업고 발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수 해외 선수 중에는 코리안 파이터와 경기를 치르고 난 후 국내 팬들에게 부쩍 더 알려지게 된 케이스가 많다. 인지도가 적은 선수는 적은 데로 높은 선수는 높은 데로 관심을 좀 더 받게 된다.

20일(이하 한국 시간) 칠레 산티아고 모비스타 아레나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129에서 경기를 가진 '닌자' 구이도 카네티(38·아르헨티나) 역시 그러했다. 카네티는 직전 경기에서 '미스터 퍼펙트' 강경호에게 1라운드에 서브미션으로 패한 바 있다. 때문에 이날 경기만큼은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연패를 당하게 된다면 옥타곤에서의 생존 자체가 위험할 공산이 컸다.

 카네티는 적지 칠레에서 난적을 상대로 어려운 승부를 펼쳐야했음에도 노련미를 앞세워 승리를 가져갔다.

카네티는 적지 칠레에서 난적을 상대로 어려운 승부를 펼쳐야했음에도 노련미를 앞세워 승리를 가져갔다. ⓒ UFC


적지에서의 혈투, 카네티는 흔들리지 않았다

카네티에게 '핏불' 디에고 리바스(26·칠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한창 젊은 선수인지라 매경기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이 쉽지 않거니와 경기가 펼쳐지는 무대 역시 리바스의 홈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를 입증하듯 경기 내내 칠레 관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싸워야 했다. 고환암 판정을 이겨낸 의지의 파이터로도 유명한 리바스는 홈팬들에게 영웅이었고 그로 인해 카네티는 본의 아니게 악역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리바스와 카네티는 공이 울리고 잠시 탐색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카네티는 닌자라는 별명처럼 원거리에서 기회를 엿보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들어가는 타격이 일품이다. 리바스를 상대로도 초반부터 기습적인 슈퍼맨펀치를 시도하며 허점을 노렸다.

투지가 좋은 리바스는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펀치와 킥으로 반격한 후 삽시간에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다. 카네티는 잽싸게 뿌리치고 일어났고 이번에는 자신이 역으로 테이크다운을 만들어냈다. 리바스는 암바를 시도했고 이에 카네티는 원초적 방어법인 슬램성 공격으로 기술을 떨궈냈다. 이후 파운딩을 치고 백포지션을 빼앗으며 압박했다. 양 선수 모두 탑과 하위에서 활발한 공격과 방어가 이뤄졌다.

2라운드에서도 거리를 좁히며 근접전을 시도하는 쪽은 리바스였다. 카네티가 왼발미들킥을 차자 리바스는 킥 캐치 후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카네티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고 리바스는 다시금 달려들어 또다시 카네티를 넘겨뜨렸다. 하지만 카네티가 금세 자세를 뒤집어버렸고 유리한 포지션을 빼앗아버렸다. 1라운드에서도 그랬듯 리바스 입장에서는 이른바 '눌러놓는 플레이'가 아쉬운 대목이었다. 넘기는 데까지는 잘 풀어 나갔으나 이후가 문제였다.

2% 부족한 리바스의 포지션 유지능력은 이어진 플레이에서도 계속해서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또다시 킥 캐치 후 슬램성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음에도 카네티에게 금세 스윕을 허용하며 거푸 상위를 빼앗겨버렸다. 하위에서의 적극적 서브미션으로 반격에 나서기는 했지만 탑을 제대로 차지했다면 더욱 유리한 상황에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컸다.

리바스와 카네티는 3라운드에 들어 좀 더 적극적으로 타격을 주고 받았다. 리바스가 압박을 하면서 날카롭게 주먹을 휘둘렀고 카네티 역시 밀리는 듯 하면서도 빈틈을 노려 위협적인 카운터를 장전했다. 리바스는 클린치 더티복싱 후 또다시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지만 이전 라운드에서 그랬듯 눌러 놓는 데는 실패한다.

안되겠다 싶은 리바스는 중반을 넘어가자 구태여 테이크다운에 집착하지 않고 타격 압박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가는 쪽을 택했다. 압박을 하면서 정타 횟수를 늘려가며 포인트를 쌓아나갔다. 카네티는 다소 지친 듯 1, 2라운드에 비해 움직임이 둔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판정단은 1, 2라운드에서 카네티가 앞섰다고 판단했고 최종적으로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칠레 관중들은 자신들의 홈 선수가 졌다는 사실에 인터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심한 야유를 퍼부어댔다. 담대한 카네티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아르헨티나 국기를 흔들어 보이며 적지에서의 승리를 자축했다.

한편 미녀 파이터로 유명한 알렉사 그라소(24·멕시코)는 타티아나 수아레즈(27·미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서브미션으로 무너졌다. 둘은 기량에서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났지만 상성적인 부분 역시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그라소는 복서 출신 아버지와 삼촌에게서 어린 시절부터 복싱을 수련하는 등 일찍부터 격투기가 익숙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이를 입증하듯 날카롭고 빼어난 타격이 일품이다. 하지만 갑상선암을 이겨낸 의지의 여성으로도 유명한 수아레즈는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의 강력한 그래플러다. 연승을 이어오는 동안 그녀의 레슬링을 제대로 감당한 선수는 없었다.

레슬링에 자신 있는 수아레즈는 펀치와 킥을 차면서 압박하는 듯하더니 이내 거리를 좁혀 달라붙은 후 목감아던지기로 첫 테이크다운에 성공한다. 그라소는 빠르게 일어났으나 수아레즈는 끈질기게 달라붙어 다시금 그라소를 넘겨 버렸다.

탑에서 날카롭게 파운딩을 치는 듯하더니 삽시간에 백포지션을 점령했고 이후 유유히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성공시켰다. 아직 경기운영이 완숙되지 않은 그라소 입장에서 수아레즈의 영역으로 끌려간 상태에서는 대응할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너무 쉽게 거리를 내준 것이 패착이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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