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찬(LG)과 우규민(삼성)은 지난 2016 시즌 종료 이후 쟈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프로 데뷔 이후 줄곧 같은 팀에서만 활약해왔던 두 선수는 차우찬 4년 95억 원, 우규민 4년 65억 원이라는 대박 계약을 터뜨리며 사실상 트레이드처럼 팀을 맞바꾼 모양새가 됐다.

LG와 삼성이 나란히 거액을 들여 두 선수를 영입한 목적은 분명했다. 바로 선발진 강화였다. 차우찬과 우규민은 KBO리그에서 나름 검증된 선발 투수로 통했다. 수 년째 KBO리그를 강타하고 있는 '타고투저' 흐름 속에서 위력적인 토종 선발투수가 드문 한국야구에서 두 선수는 '오버페이' 논란을 감수하고라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투수자원으로 기대를 모았다. LG와 삼성 입장에서는 두 투수가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선발로테이션의 한 축을 맡으며 이닝이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차우찬, FA 이후 첫 시즌에는 10승 달성했는데

LG 선발 차우찬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과 LG의 경기. LG 선발 차우찬이 역투하고 있다. 2018.4.25

▲ LG 선발 차우찬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과 LG의 경기. LG 선발 차우찬이 역투하고 있다. 2018.4.25 ⓒ 연합뉴스


하지만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두 투수의 영입은 LG와 삼성 양쪽 모두에게 승자 없는 씁쓸한 거래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차우찬은 FA 계약 첫 해인 2017년 나름 제몫을 했다. 28경기에 등판해 10승 7패, 평균자책점 3.43을 달성했다. 자책점은 규정 이닝을 소화한 투수 중 리그 4위였고 총 175.2이닝을 책임지며 프로 데뷔 후 개인 최다 이닝 기록을 소화했다. 하지만 차우찬에게 들인 '역대 FA 투수 최고액'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조금은 아쉬운 성적이었다. LG도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차우찬의 영입에 따른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LG 2년 차인 올 시즌 차우찬은 부진하다. 7경기에 출전해 3승 4패에 그치는 동안 평균자책점은 8.42까지 치솟았다. 지난 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4.1이닝 동안 9실점을 허용하는 난조를 보이며 5회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LG는 믿었던 차우찬마저 또 다시 무너지며 지난주 8연승의 상승세를 순식간에 날리고 속절없는 7연패 늪에 빠졌다. 이날 한 경기 13피안타는 차우찬의 프로 데뷔 이래 최악의 기록이었다. 9자책점은 지난 4월 19일 기아전(5이닝 8실점)의 기록을 뛰어넘은 올 시즌 한 경기 최다자책점이다. LG에게도 차우찬에게도 악몽 같은 하루였다.

차우찬은 올 시즌 7번의 등판에서 퀄리티스타트는 단 2회 뿐이고 5실점 이상의 대량실점을 내준 경기는 벌써 4번이나 된다. 더 심상치 않은 것은 차우찬의 시즌 피안타율이 .329, 피장타율은 .594까지 치솟았다는 것. 직전 등판이었던 1일 대전 한화전(5이닝 6실점)에서 피홈런 3방을 내줬던 차우찬은 홈으로 돌아와 열린 이날 두산전에서도 피안타 13개 중 장타만 4개를 허용했다. 올 시즌 차우찬의 원정 평균자책점은 14.00이나 된다. 투수 친화적이라는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면서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장타허용률은 구위 하락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올 시즌 불펜 전환한 우규민, 2이닝 무실점 호투했지만

 지난해 부진에서 벗어나 FA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는 삼성 우규민

삼성 우규민 ⓒ 삼성 라이온즈


우규민은 삼성 소속 첫 해였던 2017 시즌 27경기에 등판해 133이닝 7승 10패 평균자책점 5.21에 그쳤다. LG로 떠난 차우찬의 선발 공백을 메워줄 것이라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구위 저하도 뚜렷했다. 삼성은 지난해 2시즌 연속 9위에 그쳤다.

2018 시즌에도 우규민은 컨디션 회복이 늦어지며 4월까지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2일에야 뒤늦게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실전 등판은 선발이 아닌 불펜이었다. 우규민은 현재 불펜에서만 2경기에 출전하여 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은 우규민을 당분간 불펜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우규민은 통산 65세이브 25홀드를 기록했을만큼 불펜 경험이 풍부한 투수다. 2007년에는 30세이브를 기록한 적도 있다. 우규민이 불펜에서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삼성은 선발진 전원의 평균 자책점이 5점대를 넘길 만큼 선발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13승 23패로 리그 최하위에 그치며 창단 이후 첫 꼴찌의 불명예를 달성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삼성은 선발이든 불펜이든 우규민 활용법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무리한 FA 영입 배경은 한국 야구 투수 기근?

2016년 겨울 'FA 대박의 최대 수혜자'였던 차우찬과 우규민의 현재는 한국 프로야구의 FA 거품과 투수 기근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우려는 2년 전에도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차우찬은 삼성 시절(2006~2016년)까지 통산 평균자책점이 4.44에 이르렀고, 한 시즌 최다승이 13승이었을 만큼 압도적인 활약과는 거리가 있는 투수였다. 우규민은 LG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6 시즌에도 이미 6승 11패. 평균자책점 4.91로 적나라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대한 우려도 안고 있었다.

또한 두 투수 모두 불펜에서 활동하다가 뒤늦게 선발로 전환하며 정작 풀타임 선발 경험은 2~4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렇기에 FA 대박 이후 급격한 하락세가 올 수 있다는 위험부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무리한 오버페이를 감수하며 이들을 영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상 전력보강을 위한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국내 구단들은 무리한 FA 영입 투자보다 내부 '육성'에 무게 중심을 두는 방침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였다. 이에 차우찬과 우규민 등 고액 FA들의 현 주소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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